[GSEEK in BOOK] 그 나라가 반짝 빛났다 사라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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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EEK in BOOK] 그 나라가 반짝 빛났다 사라진 이유

비에른 베르예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형태의 우표가 처음으로 발명된 것은 1840년 영국의 교육자이자 발명가인 로렌드 힐에 의해서다. 세계 최초로 유통된 이 기념비적인 우표에는 당시 영국의 여왕이던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화가 도안돼 있었다. 

 

검은색의 1페니짜리 우표, 2007년에 40만 달러에 거래돼 화제가 된 우표, 바로 ‘페니 블랙’이다. 이후 우표는 서구 열강의 주도하에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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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이자 우표수집광인 비에른 베르예는 바로 이 우표라는 작은 종잇조각을 통해 근현대 세계사의 놀랍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 확장이 가장 빈번했던 시기,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전 세계 나라들의 경계선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지워졌다 그어졌던,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하면서도 드라마틱했던,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의 근현대. 이 시기에 불어 닥친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지도상에서 사라져버린 나라들에 대한 비밀스러운 기록이 바로 이 책에 담겨 있다.

 

전염병과 굶주린 아이들의 참혹한 모습으로 잘 알려져 있는 아프리카의 ‘비아프라’, 2800여 명이 사망하고 20만 명의 피해자를 낳은 희대의 가스누출사고가 벌어진 인도의 ‘보팔’처럼 다소 익숙한 나라도 있고, ‘오보크’, ‘써당’, ‘주비곶’처럼 처음 들어본 듯한 낯선 나라도 있다. 

 

1922년 소련–핀란드 전쟁 중에 세워졌다가 단 몇 주일 만에 사라진 ‘동카렐리야’처럼 단명한 나라도 있고, 1800년대 후반에 반세기를 버틴 보어인들의 독립 공화국 ‘오렌지자유국’처럼 장수한 나라도 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지금은 지도 어디에서도 그 이름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단 우표는 남아 있다.

 

이 책에는 역사에서 사라진 세계 50여 개의 나라들이 등장한다. 그 나라들은 도대체 왜 사라졌을까? 대항할 수 없는 강대한 다른 나라의 침입에 의해서? 혹은 내전으로 인한 자멸?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자연재해에 의해? 아니면 그냥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잊혀진 걸까?

 

비에른 베르예는 직접 수집한 희귀한 우표를 토대로 사라진 나라들이 표기된 과거의 지도,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기록, 훗날 정리된 역사가들의 해석을 광범위하면서도 꼼꼼하게 정리해냈다. 그 결과 격변하는 세계사에서 주목 받지 못했던 비극적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이 책 안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내전과 내전을 거듭하다 스스로 파멸한 왕국이 있고(보야카), 이제는 포격의 흔적 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는 나라(양시칠리야왕국)도 있다. 간유 공장으로 쓰이다 화산 폭발로 무인도가 된 나라(사우스셰틀랜드 제도)도 있으며, 주민들의 투표로 나라 자체가 양분된 곳(슐레스비히)도 있다. 열강의 교묘한 술책으로 수백 년 간 평화롭던 나라가 원주민들과 함께 사라져버린 경우도 있다.


우표는 어떤 사료보다도 우표를 발행한 나라가 존재했다는 생생한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표가 정말 역사적 진실만을 담아낼까? 우표는 정치적 욕망의 산물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오늘날에는 잘 사용되지 않지만, 한때 우표는 우편요금을 대신하는 본연의 용도 외에 한 국가의 건재함을 상징하는 수단이었다. 주권을 갖고 있는 국가라면 당연히 우표는 발행해야 한다고 여긴 국가들이 역사적으로 1000여 개가 넘는다. 

 

여기에는 다분히 정치적인 속내가 담겨 있다. 당시 패권을 쥐고 있던 권력가들은 우표를 발행함으로써 영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민족주의에 불을 붙였으며, 낙관적인 자국의 미래를 점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 자국의 이상화된 이미지를 선전하거나 국민들을 선동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우표는 통용되었다.


세계 최대의 초석 매장층은 아타카마 사막에서 발견됐다. 매장층은 페루, 볼리비아, 칠레에 걸쳐 있었지만, 오직 칠레 회사들만 채광에 참여하여 모든 수익을 쓸어가고 있었다. 이에 불만이 있던 페루와 볼리비아는 세금을 더 높게 부과하고 채광업을 국유화하겠다고 경고했다. 

 

분개한 칠레는 1879년 봄에 전쟁을 선포했다. 후에 ‘초석 전쟁’으로 불린 전쟁이었다. 페루와 볼리비아 군대는 부싯돌로 발화하는 구식 머스킷총으로 무장하고 있어서 칠레의 현대화된 군대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칠레는 군인들에게 ‘추필카 델디아블로’라는 약을 일률적으로 먹이기까지 했다. 화약과 독한 술을 섞은 이 약을 먹으면, 평범한 보병이 두려움도, 양심의 가책도 없는 광포한 괴물로 돌변했다.


지금은 사라진 나라이지만, 기억 속에서까지는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되는(역사적으로 심각한 해를 끼친) 나라에 대해서도 비에른 베르예는 언급한다. 

 

한때 영국은 한 나라를 침입해 3만 여 명의 여성과 아이들을 굶주림, 탈진, 질병으로 목숨을 잃게 했다(오렌지자유국). 독일은 해군 기지를 짓기 위해 군함을 이끌고 중국의 해안 도시를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았다(자오저우). 이탈리아는 식민지에서 상류층을 위한 국제항공기대회를 열었고(트리폴리타니아), 일본은 전 세계를 집어삼키겠다는 허황하지만 무시무시한 야욕으로 세균 기지를 건설했다.


불과 135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사라진 나라가 50개라는 건 이 시대(1840~1975)가 그만큼 격동의 시대였다는 것을 반증한다. 

 

하지만 역사 기록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진실은 파편적으로 흩어져 잘 알 수 없거나 승자의 논리에 따라 왜곡되거나 은폐되어 있다. 때문에 비에른 베르예는 이후의 역사에 대한 기록을 확인하는 것이 아닌 그 나라들이 사라지기 직전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이 책은 우표라는 작은 사물에서 시작했지만, 이어지는 역사의 이야기는 결코 작지 않다. 이 책 속 이야기는 샤흐라자드가 읽어주는 <천일야화> 속 범죄나 여행담, 연애 이야기, 동화처럼 다채롭고 때론 경이롭고 때론 충격적이며 때론 우스꽝스럽고 때론 슬프다. 역사는 태생적으로 과거의 일이지만 잊혀져버린다면 그것 역시 역사가 아니다. 

 

역사는 시대를 초월해 전해지며, 그 의미나 가치 역시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때문에 편협한 시각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역사는 단순한 연대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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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른 베르예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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