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책] 진짜 궁금하다, ‘386’들은 뭐 하고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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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책] 진짜 궁금하다, ‘386’들은 뭐 하고 살지?

20대에 민주화운동을 이끌었고, 그 후광으로 30대에 정계에 진출했으며, IMF의 파고 덕분에 윗세대가 사라진 직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굳히고, 고임금과 부동산으로 빠르게 중산층으로 진입해 자식들을 원정출산, 사교육시장, 해외유학에 보내며 부의 대물림을 추구한 386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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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학번과 출신학교를 물으며 자신들만의 끈끈한 네트워크로 대한민국 각계각층을 이끌고 있는 그들은 이 유례없는 장기집권 과정에서 자신들이 꿈꿨던 공정하고 평등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왔을까.


386세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IMF 경제위기 당시 한국의 전체 실업률보다 훨씬 높은 실업률을 견디며 월급 88만원의 비정규직 인생을 사는 청년세대의 분노는 이제 암울한 대한민국을 만든 기성세대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때는 말이야”라는 명대사로 시작되는 그들의 찬란한 과거는 더 이상 자신들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알안다.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왜 우리를 낳았느냐고, 왜 세상이 이 모양이냐고 기성세대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가락은 기성세대 중에서도 ‘핵인싸’ 386세대를 가리킨다.


이는 1960년생이 정년을 1년 남긴 2019년, 정년연장 논의가 흘러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들에게 대한민국호의 지휘를 맡겨도 될 것인가이다.


지난 6월 영국에서는 <10년간의 도둑질(The Theft of a Decade)>과 '할머니 도둑질 좀 그만해요(Stop Mug -ging Grandma)>라는 책이 나와 화제를 모았다.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와 젊은 세대 간 벌어지고 있는 세대 전쟁의 전말과 해결책을 다룬 책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두 책에 대해 '세대 간 전쟁: 누가 밀레니얼세대의 미래를 도둑질해갔는가?'라는 제목의 서평 기사로 다루며, 과거에 계급이나 젠더, 인종으로 갈라지던 투표성향이 이제는 연령대로 확연히 갈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1970년대 영국의 노동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70대가 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보수당을 선택하고 있으며, 반대로 빈곤해진 젊은 세대에서 노동당 지지가 뚜렷하다는 주장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도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들이 대부분 20대였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세대 문제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베이비부머, 386세대를 향한 젊은 세대의 분노가 단지 386세대 인사를 등용한 집권 세력으로 귀결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부와 권력과 자원이 집중되어 생긴 사회문제와 세대 갈등은 이제 전 세계인이 풀어야 할 숙제이며, 이 문제의 한국화한 키워드가 바로 ‘386세대’라고 할 수 있다. 대학등록금의 가치, 청년실업률, 청년노동의 가치, 서울시 아파트를 사는 데 걸리는 시간 등은 세대 간 문제이며 앞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중요한 프레임이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과 서울역 회군으로 뼈아프게 무릎을 꿇었던 선배들이 사라지자 캠퍼스를 차지한 사람들이 바로 386이다. 1981년부터 늘어난 대학 입학정원은 ‘대오’를 이룬 학생운동권의 토양이 돼줬다.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한 암울한 시절이었지만 좌절의 경험이 없는 이들은 '승리에 대한 확신,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강고한 투쟁력, 타협하기 어려운 상명하복의 교조적 문화, 다른 목소리를 포용하지 않는 적대적 계파주의'라는 강력한 ‘386 DNA’를 탑재시켰다. 학생운동권에서 발원한 DNA는 80년대 청년 문화를 누리고 6월항쟁의 승리를 함께 경험한 386세대 전체에게 공통의 정체성으로 뿌리내렸다.


386세대는 더 이상 소수의 ‘엘리트 그룹’이 아니다. 하나의 연령 집단이 가진 공통의 경험과 정서라는 ‘코호트’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민주화 쟁취의 주역으로 지목받아 정치권에 입성한 일부 엘리트만이 아니라, 연말 회식으로 영화 '1987'를 관람하고 눈시울을 적시며 영화관을 나온 직장 상사들과 힘들었던 ‘우리 때’를 강조하며 아랫세대에게 손가락질하는 꼰대들 모두가 386세대로 묶인다. 이들에게는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쟁취했다는 특별한 자부심이 있다.


그렇다면 민주화 훈장이 386세대의 가슴팍에만 독점적으로 달리는 것은 정당할까. 재야 운동권과 광장을 메운 시민들, 노동자 대투쟁으로 불을 지핀 노동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오늘날 출신학교와 학번으로 줄 세우고 공고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이익을 주고받는 ‘386 독식사회’가 그들이 경험한 민주화 투쟁에 기원을 둔 것은 아닐까. 386세대가 사회 각계에서 ‘젊은 피’로 등장하여 일찌감치 의사결정권을 갖는 데 명분이 돼주었던 80년대 민주화 투쟁과 학생운동의 경험은 이제 재평가 받아야 한다.


한국 사회의 병폐들이 노골화되는 데 386세대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내수경제가 전성기에 오르고 불평등이 가장 낮아진 1988~1997년 사회에 진입한 이들 세대는 매년 높은 연봉 인상으로 시드머니를 손에 쥐었고, 청약통장을 가지고 부동산 안정기에 신도시 아파트를 매입했으며,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엄청난 시세차익을 누렸다. 한국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행운’을 누린 시기였고, 386세대는 그야말로 ‘로또’를 맞은 세대였다.


이들은 1997년 IMF 경제위기로 한창 일할 나이에 구조조정당한 윗세대, 그리고 높은 실업률로 공시생과 취준생으로 전전하는 아랫세대에 비하자면 놀라울 정도의 경제적 안정성과 자산축적의 기회를 누렸다. 여기에 386이 주도한 정규직 중심의 공고한 노동조합도 힘을 보탰다.


운 좋게 부의 추월차선을 타고 사다리를 걷어찬 386세대는 대학 서열화와 사교육 문제를 심화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빗대자면 사교육 시장을 팽창시켜 돈을 번 ‘김주영 샘’도, 사교육으로 자식을 내몰아 ‘혜나’와 ‘예서’ 같은 희생자들을 낳은 부모들 또한 386세대였다.


50대 꼰대들의 갑질 문화와 여성을 도구화하는 젠더 의식 또한 문제가 되며, 자녀의 대학 부정 입학에 대학원생을 동원한 갑질 교수나 법인카드로 방울토마토를 사고 내연녀와의 데이트 비용을 쓴 공공기관의 수장들, 공사 구분이 불확실한 꼰대들도 비판 대상이다.


물론 누군가는 억울할 것이다. 여전히 개인의 양심을 지키며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는 386도 많다. 그러나 386세대가 자의든 타의든, 적극적 가담자이든 소극적 방관자이든 사회 각 분야에서 잘못된 의사결정을 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헬조선이 되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386세대에게는 헬조선의 ‘미필적고의’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로 나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행했다. 한때 대의를 외쳤던 이들이 1년 11개월짜리 계약서를 만들어 내밀고 노동조합 가입을 방해하는가 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며 노노(勞勞) 싸움을 채찍질했다.


그들이 헬조선의 가해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를 특정 세대가 의도적으로 주도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대한민국의 제도는 386세대에게 유리하게 작동됐다. 비정규직보호법, 신도시 개발,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같은 제도가 386세대에게 맞춤형으로 제공됐다. 


지하철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 게임 삼매경에 빠진 채 배부른 임신부도 허리 굽은 노인도 안중에 없는 남녀노소들,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다. 약자들 사이에 자리 쟁탈전을 벌이는 풍경은 적은 수의 의자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툼을 벌이는 ‘의자게임’과 같다.


노인 절반이 빈곤의 늪에 빠져 있고 청년 취업자 절반이 비정규직인 우리 사회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 낀 채 모른 체한다면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이는 '게임의 규칙' 자체에 의문을 품어야 하는, 우리 모두가 게임판을 바꿀 ‘게임 체인저’가 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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