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과의 동행, 어렵고도 쉬운 길 [질문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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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저작

자식과의 동행, 어렵고도 쉬운 길 [질문하는 책]

앤절린 밀러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지데일리]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데이트를 즐기며, 일상의 소소한 고민을 나누는 모녀. 하지만 ‘친구 같은’ 딸에게는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한 고민이 있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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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엄마에게 폭력이나 학대를 당한 딸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하게 키운 딸이었다.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자란 딸들이 이토록 엄마로 인해 괴로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극히 평범한 엄마가 아들에게 상처를 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숨통을 틔워줄 거리가 필요한데, 엄마와 아들은 너무 가까운 관계이기에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잘못된 사랑이 오히려 상대를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식을 자신의 분신이라 생각한 엄마는, 자식의 인생에 사사건건 간섭하며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딸에게 투영한다. 자식만큼은 자신을 이해해줄 거라 믿으며, 하고 싶은 말을 여과 없이 쏟아내기도 한다. 자식은 이런 엄마의 말과 행동에 화가 나고 상처를 받지만, 그 마음을 엄마에게 전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온 인생을 걸었지만 결국 실패해버린 한 엄마의 이야기다. 초등학교 교사였고 상담 심리학을 전공한 앤절린 밀러는 자신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가족을 서서히 망가뜨렸는지 담담히 고백한다.


행복한 가정을 삶의 목표로 삼았던 저자는 유능한 남편과 바르고 똑똑한 아이들에 둘러싸여 즐거운 나날을 보낼 거라 자신한다. 늘 웃고, 친절하고, 관대하며, 문제가 생기면 척척 해결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이 오히려 가족을 망치고 말았다. 습관성 우울 증세를 보이는 남편, 분열 정동 장애 진단을 받은 아들, 불안증과 우울증을 겪는 딸.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가 ‘인에이블러’였기 때문이다.


인에이블러란 ‘잘못된 도움을 주어 상대를 해치는 사람’이란 뜻의 심리학 용어다. 특히 아이를 키울 때 부모에게 모든 걸 의존하게 함으로써 아이의 온전한 독립을 막는 사람을 말한다. 아이의 불완전함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 대신 문제들을 해결해주면서 아이의 자립을 방해하는 이 땅의 수많은 엄마들도 인에이블러에 속한다. 


‘인에이블러’는 종속적 인간관계에 있는 연인이나 친구 사이에도 적용되는 개념으로 정서적 불안정, 의존증, 심하게는 자기파괴적인 심리 상태를 불러오기 쉽다.


책은 인에이블러 엄마의 쓰라린 고백과 가슴 아픈 성찰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로, 담백한 글이 울림을 전한다. 더불어 심리적 관점에서 어떻게 인에이블러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경험에서 찾은 해결법을 전한다.


지독지애(舐犢之愛), 소가 송아지를 핥아주며 예뻐하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사자성어에는 ‘자식을 너무 사랑해서 오히려 그르친다’는 의미도 있다. 실제로 많은 부모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망치고 있다.  자식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보상 욕구가 강한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바치고, 어느새 자식은 부모의 부속물로 전락해버린다.


초등학교 교사였고, 가족 관계학과 상담 심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완벽한 가정을 꿈꾸며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인생을 바쳤다. 그렇지만 분열 정동 장애 진단을 받은 아들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남편, 불안증과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딸을 보며 절망을 느낀다. 이에 그 원인을 찾아 자신의 삶을 가족 관계의 역학과 심리적 관점에서 돌아본다.


결론은 자신이 ‘인에이블러’였다는 것이다. ‘인에이블러’는 사랑한다면서 망치는 사람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로, 우리말로는 ‘조장자’다. 상대를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상대가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들어 그 사람이 능동적으로 삶의 과업을 수행할 기회를 박탈하는 존재다. 인간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하지만 그 실수의 과정을 빼앗긴 상대는 성취감을 느낄 기회도, 배움의 기회도 놓쳐버린다.


가족을 잘 보살피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일을 도맡아 대신해주던 저자는 사랑의 이름으로 해왔던 많은 행동이 실은 가족을 서서히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편도 아이도 그녀의 엇나간 노력 덕에 사회에서 홀로 설 힘을 잃어버린 것. 심리적 의존은 물질적 의존보다 더욱 위험하다.


어설프다며 아이의 신발끈을 대신 매주고, 지각을 일삼는 아이의 핑계를 대신 대주고, 자식의 상사에게 아프다는 거짓말을 대신 해주고, 자식의 부채를 대신 갚아주는 부모들은 대표적 인에이블러다. ‘별것 아닌데’라며 행한 작은 도움은 점점 강도를 더해가며 기생적 의존 관계를 강화시킨다. 


‘인에이블러’는 친구나 연인,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개념으로, 상대적 개념인 의존자는 자신이 직면한 난관을 스스로 이겨낼 방법을 터득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게 된다.


마주하기 힘든 진실을 인정할 때, 변화는 시작된다. 저자는 자신의 가정에 닥친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며 알게 된 사실들을 이 책에 풀어놓는다. 뼈아픈 인정으로 시작해, 어떻게 하면 인에이블러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경험으로 얻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아이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여기고, 아이의 실패는 자신의 실패로 여기는 한국의 수많은 부모들도 인에이블러 개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도한 개입과 불필요한 돌봄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이뤄진다. 이런 이유로 자립하지 못한 채 부모 주변에 머무는 이들이 많다. 혹시 이 상황을 즐기거나 오히려 원하고 있다면 인에이블러일 수 있다.


진정으로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면, 아이의 온전한 자립을 원한다면 연약한 아이의 손을 놓고 저자의 고통스런 실패의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1988년 초판본 출간 이래 30년간 주목받은 이 책은 단순히 실패한 엄마의 고백을 넘어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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