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확실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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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확실한 행복’

[질문하는 책]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
전지민 지음, 비타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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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극적이다. 아침의 온화한 분위기가 종일 이어지기 힘들고 절정으로 치닫은 상황이 갑자기 사랑과 감동의 순간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삶이 서정적인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 사실 나의 육아는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막장 드라마인 것이다. 몸만 자란 나를 뼛속까지 성장하게 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은. ‘육아’는 기를 육(育), 아이 아(兒) 한자를 사용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를 육(育), 나 아(我)로 적어야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처 다 자라지 못한 내 안의 나를 기르는 일이 결국에는 진짜 육아인 셈이다."

 

한 여성이 결혼을 했다. 사랑의 매듭이 반드시 결혼과 출산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던 여자는 연애 같은 결혼 생활을 이어가며 오랫동안 서로의 꿈을 지지하는 삶을 살길 원했다. 그런 여자에게 아이가 갑작스레 찾아왔다.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비타북스)은 계획에도 없던 아기가 뱃속으로 찾아와 온갖 변화를 겪으며 임신, 출산, 육아의 세계로 걸어 들어간 한 여자의 육아 기록이다. 

 

세 가족의 주 무대는 강원도 화천이다. 수도권에서 벗어나 조금이나마 맑은 공기, 파란 하늘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이었다.

 

딸 나은이에게 그 어떤 틀도 씌우지 않고 순수하게 자연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엄마 전지민은 예스럽고 느린 방식을 굳이 따르며 아이를 기르려고 애썼다. 육아의 편리를 돕는 장비나 기기, 아이의 발달에 필수라는 교구들을 마다했고 아이와 숲이나 들판, 장터를 거닐며 교감하는 시간에 더 집중했다. 

 

별 다른 도구나 시설 없이 아이와 자연을 누비는 저자와 아이의 일상은 SNS에 올라가며 더 큰 공감을 얻었다. 도심 속에서 아이를 키우며 이유 없이 조바심을 느끼던 엄마들은 어느 정도 죄책감을 내려놓고 편안함을 느꼈을 터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진심을 다해 저자와 나은이의 삶에 공감을 표했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 할 수 있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시골살이 속에서 감수성 충만한 소녀로 자라고 있는 네 살 나은이의 모습을 마주하면 저절로 이런 의문이 든다. 항상 더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라지만, 그것이 과하면 욕심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책에 실린 저자의 글들은 엄마로서의 욕심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육아로 지친 엄마들에게 ‘힘을 뺀 육아를 하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여자이자 작가, 환경운동가인 한 엄마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와 아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저자는 환경의 변화와 인간의 삶을 유심히 지켜보며 ‘건강한 마인드’를 제안하고자 했던, 독립잡지 <그린마인드>의 편집장이었다. 그녀가 남편의 근무지인 강원도 화천으로 터전을 옮긴 건 5년 전이다.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눈에 띄는 연예인도 등장하지 않은 매체를 신념으로 이어가다가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을 즈음, 잡지 휴간을 공표함과 동시에 서울과 화천을 오가던 주말부부의 삶도 정리했다.

 

저자는 아이가 태어나고도 그녀는 자신이 갈고 닦아온 삶의 가치관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엄마를 차지한 한 아이의 존재는 너무도 큰 것이었지만, 여자로서의 자신도 정체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이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을 중요하게 여기던 이 엄마는 아이를 도심이 아닌 이곳 화천에서 키울 수 있는 게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맑은 공기와 파란 하늘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데다 자연의 순리,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기에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히 인생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더 나은 엄마가 되고 싶은 욕심, 아이에게 좋을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지만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며 검소하게,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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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시골 동네에서 만난 수많은 엄마들은 내가 상상한 이미지의 아줌마가 아닌 제각각 환히 빛나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 아이가 있는 여자들이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엄마와 아이의 일상이 특별한 비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가 더 잘 자란다’ 식의 말을 건네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위적인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을 아이에게 더 먼저 알려줌으로써 아이가 편견 없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제 역량으로 판단하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새 옷 대신 헌 옷을 받아다 입는 아이, 어린이집 같은 기관 대신 엄마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는 아이. 나은이는 5일에 한 번 장이 서면 엄마와 함께 시장 구경에 나선다. 길거리 음식을 사먹고 동네 할머니들에게 인사하며, 자신이 기르고 싶은 꽃을 직접 고르기도 한다. 매일 아침 공공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빌려 읽고, 도감 대신 제 눈으로 곤충과 새, 갖은 식물을 바라보며 비교한다. 

 

이 모든 나날이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생활일 수도 있다. 아이의 재능과 신체발달을 제때 도와줄 수 없다며 걱정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바닷가 아이로 태어나 매일같이 맨발로 모래사장을 달리던 과거의 자신처럼 아이도 문제없이 잘 자라리라 믿는다. 아이는 누구보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 숨은 이야기를 잘 앍고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부모와 보낸 어린 날의 소소한 추억들이 결국 이 아이를 단단히 여물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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