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의 또다른 희생물 '별이 빛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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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의 또다른 희생물 '별이 빛나는 밤'

[또 한 권의 벽돌]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마틴 베일리 지음, 아트북스 펴냄

[지데일리] “별을 보면 나는 늘 꿈을 꾼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89년 5월 8일부터 1890년 5월 16일까지 374일 동안 남프랑스 아를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생레미 마을 외곽에 위치한 생폴드모졸 정신 요양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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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스

 

 

반 고흐는 1888년 12월 23일 고갱과의 격렬한 말다툼 이후 자신의 귀를 절단하는 자해 사건이 있은 지 약 반년이 지난 시점, 여러 차례 발작과 정신적 혼란 상태를 겪으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 사이 아를의 이웃들은 점점 더 반 고흐에게 적대적이 됐고, 반 고흐는 자신의 인생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바로 정신 요양원에 스스로 입원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반 고흐의 삶을 그가 살며 일한 곳에 따라 여러 시기로 나눈다. 1889년 5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를 반 고흐의 ‘생레미 시기’라고 부르지만, 마틴 베일리의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따르면 이는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반 고흐는 생레미 마을에 거의 가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요양원과 인근 자연 풍광을 그리며 생활했다. 그는 이 고독한 안식처에서, 그 절망의 시간 속에서도 붓을 놓치않고 그림을 그려나가 종국엔 '별이 빛나는 밤', '아몬드꽃'과 같은 걸작을 남겼다.

 

1889년 4월 테오와 요하나 봉어르가 결혼했다. 한해 전 아를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은 빈센트가 예술가로서 새로운 삶을 찾고자 한 남쪽의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자발적으로 정신 요양원에 입원하기로 결심한 바로 그 때다.

 

반 고흐가 입원을 하게 된 곳은 아를에서 불과 15킬로미터 떨어진 생레미 인근 생폴드모졸이라는 사립 요양원. 이곳은 다른 공립 요양원과 달리 환자 수가 적었고, 비교적 자율적인 생활환경을 제공했으며, 담장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반 고흐는 아를의 사제 살 목사와 함께 1889년 5월 8일 길을 나섰고, 입원 수속을 마친 후 병실을 배정받고 짐을 풀었다. 비록 창살이 시야를 막는 작은 창이었지만, 그 아래 펼쳐지는 초록 밀밭과 근사하게 자란 나무들이 마음에 평온함을 안겨줬다.


생폴에서 지낸 1년 동안 반 고흐의 예술에 주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다. 아를 시기의 생동감 넘치던 색채가 차분하게 가라앉지만, 붓질은 더욱 힘차져 그만의 독특한 소용돌이치는 물결 같은 선들이 이 시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 고흐는 의심의 여지없이 예술을 향한 열정을 통해 요양원 생활을 견뎠다. 작품에 열중해 치욕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목적의식을 가지고 역경을 참아냈다. 정신질환이 심해지면서 작품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으리라 추측하는 이들도 있고, 실제로 전혀 그림을 그리지 못했던 기간도 분명 몇 주간 있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작품 중에 정신 불안의 증거를 감지할 수 있는 그림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생폴에서 지낸 시간 대부분 동안 그는 명징하고 차분한 상태를 유지했다. 

 

'반 고흐'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유명해지는 화가

 

그가 대단히 생산적이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소실된 작품 10~20여 점을 제외하더라도 150점이 넘는 그림이 현재에도 남아 있다. 이는 이틀에 한 점 꼴로 그려야 가능한 경이로운 작품 양이다. 반 고흐의 작품 가운데 걸작으로 꼽히는 '아이리스', '별이 빛나는 밤',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아몬드꽃', '소용돌이치는 배경의 자화상' 등이 모두 이 시기에 그려졌다.


마틴 베일리의 조사에 따르면 반 고흐가 입원한 시점에 요양원에는 18명의 남성 환자들이 있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반 고흐가 생폴 시기에 그린 초상화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인정받는 '정원사'의 실제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밝혀진 것이다. 그의 이름은 장 바랄이고, 빈센트가 요양원에 있던 시기에 스물여덟 살이었으며, 농지를 경작하면서 생폴에서 틈틈이 정원사로 일했을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

 

마틴 베일리는 또한 '별이 빛나는 밤'을 둘러싼 몇 가지 흥미롭고 놀라운 사실도 밝혀냈다. 우선 화가가 밤하늘을 그리던 그날의 풍경을 영국 왕립천문대에서 확인했는데, '별이 빛나는 밤'이 어느 특정 시간, 특정 장소의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닌 수많은 밤하늘을 바라본 화가가 상상력에 의지해 새롭게 창조한 세계라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 그림을 본 테오는 그림이 지나치게 장식적이라며 혹평을 하는데, 반 고흐 형제의 사망 이후 '별이 빛나는 밤'은 10년 동안 전시되지 않았고, 그동안은 매우 제한적인 사람들만이 볼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러시아의 붉은 군대의 장교가 독일의 카른초브성에서 '별이 빛나는 밤' 드로잉을 발견했다. 그는 이 그림을 곱게 반으로 접어 여행가방에 넣어 러시아로 가지고 왔고, 수십 년 동안 그 작품의 존재는 국가 기밀에 부쳐졌다. 

 

이 작품의 존재여부를 확인한 마틴 베일리는 1992년 9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예르미타시미술관 관장에게 반 고흐의 드로잉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고, 그동안 이념의 소용돌이에 갖혀 있던 작품의 실물을 확인하고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이 그림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채 러시아의 어느 미술관 수장고에서 퇴색되고 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또다른 희생물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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