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지구 이야기] 하늘하늘 플랑크톤, 알수록 비상한 '지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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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지구 이야기] 하늘하늘 플랑크톤, 알수록 비상한 '지배자'

‘떠살이생물’. 말 그대로 물에 떠서 사는, 흔히 ‘플랑크톤’(Plankton)이라고 부르는 생물의 우리말 이름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바다생물 하면 고래나 상어를 떠올린다. 하지만 투명하게 보이는 바닷물 한 컵에도 무수히 많은 플랑크톤이 들어 있다. 


‘플랑크톤’은 그리스어 ‘플랑크토스’에서 나왔으며, 이는 ‘떠다니다, 표류하다, 목적 없이 헤매다’라는 의미다. 바로 물에 떠다니는 방랑자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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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크톤이 되기는 어렵지 않다. 그저 물이 움직이는 대로 물에 떠서 살면 된다. 때문에 물에 떠서 살기만 하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도, 식물이나 동물도 모두 플랑크톤이 될 수 있다.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까이 있는 생물. 우리가 지구에서 숨 쉬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생물. 물속 생태계의 기초가 되는 생물. 깨알보다 천 배, 만 배나 더 작은 마이크로 세계의 주인공. 이것이 바로 플랑크톤이다.


수많은 플랑크톤이 빗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에도 공원 연못에도 드넓은 바다에도 산다. 다만 대부분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작아, 눈앞에 두고도 무심코 지나쳐 버리기 일쑤다. 


‘물에 둥둥 떠다니는’ 생물이면 모두 다 플랑크톤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플랑크톤은 대체로 육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무척 작은 크기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플랑크톤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플랑크톤은 물속 먹이 사슬의 가장 기초가 된다. 플랑크톤이 없으면 그것을 먹고 사는 물속 생물들도 사라져 수중 생태계는 결국 무너지게 된다. 


특히 식물 플랑크톤은 지구 산소의 반 이상을 만들어 내는, 숲과 같은 ‘지구의 허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플랑크톤이 없으면 인간을 비롯한 육지 동물들이 숨을 쉴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 밖에 플랑크톤은 우리에게 원유나 천연가스를 제공한다. 최근엔 기능성 식품이나 의약품, 바이오 연료로까지 개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플랑크톤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생물인지 두말할 여지가 없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그동안 큰 관심을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대표적인 플랑크톤의 종류에 무엇이 있을까. 


먼저 식물플랑크톤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돌말이라고 불리는 규조류다. 규조류의 껍데기는 불과 수백분의 1밀리미터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곳에 온갖 정교한 무늬가 조각돼 있어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예술품이라 불린다. 


와편모조류 역시 중요한 식물플랑크톤이다. 수온이 높거나 영양염류가 많으면 대량 번식하여 적조를 일으키기도 한다. 


동물플랑크톤을 그 종류가 더 방대하다. 물의 움직임에 비해 운동할 수 있는 힘이 약해 물 흐르는 대로 떠다니는 동물은 모두 동물플랑크톤으로 분류해서다.


동물플랑크톤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바다에 사는 거의 모든 동물이 최소한 일생에 한 번은 플랑크톤 족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섬모충, 유공충, 방산충, 편모충은 세포 하나로 이뤄진 동물플랑크톤이다. 해파리, 빗해파리, 윤충류, 요각류, 지각류 등도 동물플랑크톤이다. 조개, 따개비, 성게, 불가사리처럼 바닥에서 사는 동물도 어린 시기에는 플랑크톤 생활을 한다. 


또한 어류의 알이나 어린 치어도 헤엄치는 능력이 없거나 약하기 때문에 플랑크톤에 포함된다. 때문에 바다에 사는 포유류, 조류 및 파충류를 제외한 거의 모든 동물이 동물플랑크톤에 속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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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크톤은 왜 그렇게 작을까, 왜 물에 떠서 살까.

 

수 미터가 넘는 대형해파리도 있지만, 대부분의 플랑크톤은 수 마이크로미터(1000분의 1밀리미터)에서 수 밀리미터에 해당해 ‘마이크로 세계’에 산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글씨가 작을 때 깨알만 하다고 표현하는데, 참깨는 아무리 작아도 1밀리미터쯤이니 플랑크톤이 얼마나 작을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플랑크톤이 이렇게 작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식물에게는 빛이 생명줄인데, 빛이 있어야 물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유기물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바다에서는 수심이 깊어질수록 들어오는 햇빛이 줄어들어 심해로 가면 결국 암흑세계가 된다. 


자연히 식물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하기에 충분한 빛이 있는 해수면 가까이에 살 수 밖에 없다. 작아질수록 몸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늘어나 물과 접촉하는 면적이 넓어진다. 이 경우 물에 대한 저항이 커지므로 그만큼 가라앉는 속도가 느려진다. 때문에 작을수록 빛이 충분한 표층에 오래 머물 수 있다. 

 

그렇다면 동물플랑크톤은 어떤 장점이 있어 물에 떠서 살까. 


우선 먹이가 되는 식물플랑크톤이 물에 떠 있어서다. 그런데 불가사리나 조개같이 바닥에 사는 저서동물조차도 어린 시기에 플랑크톤 생활을 하는 데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물에 떠서 사는 플랑크톤은 3차원 공간을 활용해 표층에서 바닥까지 층층이 살 수 있다. 마치 땅이 부족한 도시에서 고층 아파트에 층층이 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저서동물은 바닥에 붙어서 살거나 움직이더라도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습성이 있다. 살 수 있는 공간이 비좁은 만큼 늘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때문에 저서동물에게는 플랑크톤 시기가 새로운 장소를 찾고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하겠다.


플랑크톤은 육상 생태계로 치면 곤충에 해당한다 하겠다. 곤충은 작지만 종류와 숫자가 많아 사람과 더불어 땅을 지배하는 셈인데, 플랑크톤 역시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있는 바다 세계의 지배자다. 


플랑크톤은 범죄 수사에도 이용되는데, 일례로 물에서 발견된 시체의 죽음 원인을 알 수 있다. 검시 과정에서 시체가 물에 빠진 후 사망했는지 아니면 살해된 후 물속에 버려졌는지 판단하기 위해 플랑크톤을 분석하기도 한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버둥대다가 물을 마시게 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다. 물을 마시면 식도를 통해 위로 들어가는 것이 정상이지만, 물에 빠진 사람은 숨을 쉬려다 보니 물이 기도를 따라 허파로 들어가게 된다. 


때문에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허파 속에는 식물플랑크톤이 들어 있을 수 있다. 식물플랑크톤 가운데 규조류는 껍데기가 규소 성분이라 산성과 알칼리성 물질에 강하다. 허파 조직을 산이나 알칼리로 녹여 낸 뒤 용액을 원심분리해 농축하면 규조류 껍데기를 볼 수 있다. 죽은 후 사체가 물속에 버려졌다면 허파 속에 식물플랑크톤이 들어 있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크기와 달리 플랑크톤의 존재감과 중요성은 절대로 작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플랑크통은 순환한다. 수많은 플랑크톤이 태어나고, 먹이를 찾아다니고, 알을 낳고, 죽어간다. 조금만 관심을 두면 그동안 몰랐던 특별한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무척 흔하면서도 베일에 싸여 있는 생물이 바로 플랑크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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