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의 젠더풀월드] 그땐 다 그랬어, 근데.. 지금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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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영의 젠더풀월드] 그땐 다 그랬어, 근데.. 지금도 그래

젠더는 사랑, 결혼, 가족 구성, 출산, 양육, 노령화를 포함한 사적인 영역부터 경제, 종교, 정치, 미디어, 학교 등 공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강력하게 작동하는 ‘체제’다. 젠더는 인간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범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로도 작동한다. 이렇게 젠더 이분법이 만드는 사회가 성별화된 사회(gendered society)다. 본지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이러한 이분법에 의문을 던져보고,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젠더 관점의 고민과 방향을 담은 저작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대개 사람들은 페미니즘 하면 남자처럼 되고 싶은 한 무리의 성난 여자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페미니즘이 권리에 관한 것이라고, 다시 말해 여자들도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젊은 페미니스트들을 중심으로 다시 시작된 페미니즘 열기 속에서,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이라는 대립적 층위가 서로 충돌하면서 어떻게 여성해방투쟁의 길로 나갈 수 있을지, 바야흐로 예측이 어려운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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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feminism)의 사전적 정의는 “여성 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여성 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 운동 또는 그 이론”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수많은 여성들은 페미니즘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다.


물론 지난 수세기 동안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인권을 신장하고 사회 진출을 도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여성들은 페미니즘의 존재 이유에 대해 자문하고, 의심한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유는 아직까지도 ‘여성 해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양성평등이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지만, 현실적으로 가정과 직장, 일상생활 전반에서 더 큰 부담을 짊어지는 것은 여성인 것이다.


결혼 생활과 육아에 있어서 배우자와 동등한 지위를 누리는 여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여성들은 “도대체 페미니즘이 무슨 소용인가요?”하며 탄식하는 것이다.


가령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으로서 셰릴 샌드버그(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처럼 35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연봉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대부분의 여성들은 유리 천장(glass ceiling)을 경험하고 좌절한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의 저자 스테퍼니 스탈의 상황도 다른 여성들과 비슷했다. 미국의 명문 여대를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언론학 석사를 받은 스탈은 그야말로 ‘잘나가는 여성’이다. 유력 언론사의 기자로서, 그리고 유명 작가로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냉혹한 현실을 마주했으며 저자는 점차 자신이 꿈꾸던 삶으로부터 멀어졌고, 여성이라는 존재의 지위를 새삼 자각하기에 이른다. “어째서 여성만이 육아와 가사에 더 얽매여야 하는가. 왜 여성이라는 사실 자체에 부담을 느껴야 하는가.” 


이처럼 지구상의 모든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고, 진실로 궁금해하는 물음에서부터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성들의 삶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그녀는 ‘페미니즘 고전’을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과거 수천 년의 역사에서 여성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그들의 삶을 개선시켜 준 것은 오직 ‘페미니즘’이 유일하다. 이제 또다시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의 중심으로 들어가야 할 때다.


이 책은 육아와 사회생활을 병행하는 보통 여성의 치열한 수기인 동시에, 페미니즘의 지형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신화와 종교에 나타난 여성 이미지를 추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초기 페미니즘(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존 스튜어트 밀 등)을 다시 읽고, 버지니아 울프와 시몬 드 보부아르, 베티 프리단 등 걸출한 페미니스트들의 사상을 하나하나 깊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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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케이트 밀렛,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에리카 종 등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의 이론과 작품을 세부적으로 확인하고,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라캉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페미니즘도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서 말해준다. 


끝으로 캐럴 길리건과 케이티 로이프 등 비교적 동시대에 속한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훑고, 다학제적인 데다 난해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주디스 버틀러와 가야트리 스피박의 이론도 명료하게 요약해 들려준다. 

 

이처럼 저자는 철학과 문학, 정치학과 사회학 등 모든 학문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역사상 가장 중요한 ‘페미니즘 고전’을 꼼꼼하게 살펴준다. 


각각의 고전에 대한 개요를 살필 수 있고, 페미니즘의 개괄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어우러진 저자의 생생한 경험(한 아버지의 딸, 한 아이의 어머니, 한 남성의 아내, 그리고 커리어우먼으로서의 경험)은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강력한 설득력과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애초에 페미니즘은 타자에 대한 이해,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 상식에 내재한 억압을 들추어내는 일 바로 이러한 변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에서부터 생겨났다. 그래서 ‘페미니즘 고전 독서’는 성별과 국적, 세대를 초월해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경험이다. 우리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저자는 책을 완성해 가면서 자신의 꿈과 현실,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딸과 화해한다. 이 과정은 단지 스탈의 삶 만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었다. 그녀를 둘러싼 세계와 관계, 더 나아가서는 읽은 모든 독자들의 삶까지 바꿔 놓을 것이다.


페미니즘 덕분에 여성은 본디 타고난 그대로 사랑받고 추앙받을 만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고, 서로 평가하거나 경쟁하지 않고 각자의 다름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