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탄탄하며 조화로운 사회계약 [끌리는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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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탄탄하며 조화로운 사회계약 [끌리는 신간]

  • 이은진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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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무너져내린다. 중심이 지탱하지 못하니, ...어떤 계시가 임박한 것이 분명하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이 시를 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에 뒤이어 1918-1919년 사이에 대유행한 스페인 독감에 걸려 임신한 아내가 몸져누웠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2016년,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다'는 이 구절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자주 인용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사회가 품고 있던 균열을 가시화하며 기존의 세계를 유지해온 구성원 간의 합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드러냈다. 

 

저소득층과 저기술 노동자, 돌봄 노동을 떠안은 여성과 자활하지 못하는 노인, 일회용품 사용 증가로 인해 한층 심각해진 환경 위기와 커져가는 국가 부채 앞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우리의 안전이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사람들의 책임 의식에 달리고, 생존을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무를 다해야 하는 이때,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사회계약은 정치, 법률, 경제처럼 가정과 공동체 생활을 조직하는 여러 제도에 반영되며, 개인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새로운 사회계약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그 공동체가 합의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를 먼저 정해야 한다. 

 

<이기적 인류의 공존 플랜>(미노슈 샤피크, 까치)은 현행 사회 시스템이 자신들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며 좌절한 사람들이 다수 있음을 지적하며, 새로운 사회계약에 반영되어야 할 3대 원칙을 제시한다.

 

먼저 모두에게 최소한의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여기에는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 교육, 복리후생 보험금, 연금 등 인간다운 삶을 위한 조건들이 포함되며, ‘최소한’의 수준은 각 사회의 역량에 따라서 달라진다. 

 

다음으로 시민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 최대한 투자해야 한다. 인적 자본의 계발은 노동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일 뿐 아니라 생산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서 사회는 평생에 걸친 교육과 훈련을 보장하고, 보육 지원 사업을 통해서 여성의 노동을 장려해야 한다. 

 

이와 함께 위험은 효율적이고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은 생애 주기에 따라서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한다. 질병과 실직, 노화 등의 위험 요인은 개인과 가정 혹은 사업주보다는 사회가 분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는 편이 효율적이지만, 개개인 역시 자신의 소득을 일평생에 걸쳐 분배한다는 사고 안에서 보험가입 및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등을 통해 자신이 겪을 어려움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사회 구성원들의 최소한의 안전망을 누릴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면서도 비용효율성을 놓치지 않는다. 새로운 사회계약의 핵심은 모든 사회구성원이 최대한으로 사회에 이바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직접 잡아주는 대신 그것을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이러한 방식은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게 만들며, 각 분야의 숨겨진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생산성을 증대시킨다. 

 

2008년 금융위기와 팬데믹, 기후 변화를 거치며 우리는 모든 문제를 국가에 의존하는 시스템이 결코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처한 어려움을 노동, 교육, 건강, 고령화, 기후 위기 등 핵심 분야로 나누어 살피며 21세기의 사회계약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안한다.

 

세계은행과 IMF, 영국 중앙은행 등에서 다양한 직책을 수행하며 세계적 위기에 대응해온 저자는 특정 사회 혹은 국가의 사례에 집중하기보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거시적인 변화에 주목한다. 

 

이에 따라 사회학 고전과 정치경제학의 계보를 살피며 이론적인 근거를 마련한 뒤, 다양한 보고서를 참조하여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들을 살펴본다. 또 각국에서 실제로 시행되었던 정책들의 실효성과 다른 국가에서의 적용가능성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다. 객관적인 지표와 사례 연구 등은 공존 가능성을 탐구하는 저자의 논의에 신빙성을 더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미래의 사회계약은 유연노동자와 기술 발전에 의한 실업자,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 은퇴 후 일자리를 잃은 노인 등은 물론, 우리 세대의 선택으로 삶의 조건이 결정될 미래 세대 등 기존의 사회계약이 포용하지 못한 사람들의 문제를 함께 다룬다. 

 

각각의 문제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단일한 해결책으로는 결코 풀 수 없으며, 각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주될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서로에게 의무가 있음을 상기시키며 새로운 사회계약이 무엇보다 상호의존성을 인정하고 그 의존성이 상호이득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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