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인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끌리는 신간]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인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끌리는 신간]

  • 이종은 sailing25@naver.com
  • 등록 2022.03.27
  • 댓글 0

건강한 스무 살 청년이 어느 날 설사를 하기 시작한다. 괜찮아지겠지 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출혈이 시작된다. 무서운 병명을 알고 싶지 않아 병원에 가길 망설이는 사이 점점 체중이 줄고 통증이 이어진다. 고열과 복통에 괴로워하다 병원에 갔을 때 비로소 희귀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병을 진단받은 그날부터, 건강한 사람에서 희귀질환 당사자로 정체성이 완전히 뒤바뀐다. 아무거나 먹지 못하고, 아무 데서나 싸버릴까 두려워하고, 아무한테서나 병이 옮을까 걱정하는 삶을 살아가며 13년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다.

 

먹는 것과 싸는 것에 문제가 생겨서 괴롭기는 해도 죽을병은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잠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 일을 겪으며 저자는 예전과 같은 사회생활이 완전히 불가능해졌음을 깨닫는다.

 

<먹는 것과 싸는 것>(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다다서재)은 희귀질환인 궤양성 대장염으로 13년간 투병한 저자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 활동의 기본이자 궁극인 ‘먹는 것’과 ‘싸는 것’에 대해 탐구한 에세이다. 

 

저자는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든 질병으로 인해 먹고 싸는 것에 제약이 생긴다. 질병은 단순히 신체의 문제인 줄 알았지만, 이윽고 저자는 질병 탓에 자신의 사회적 삶이 모두 파괴되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먹고 싸는 행위가 인간의 건강뿐 아니라 인간관계, 경제, 문화, 종교생활 등 이 사회의 대부분 영역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달은 저자는 다양한 문학을 인용하며 그 이면에 숨은 비밀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우선 아무 데서나 변을 지릴까 봐 외출하지 못하게 된다. 병의 증상일 뿐이지만, 밖에서 변을 지린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사회생활을 끝내버릴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행위다. 그는 여러 생리현상 중 왜 배설은 홀로 숨어서 해야 하는 부끄러운 행위가 됐는지, 배설이 수치와 연관될 때 인간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변하는지를 살펴본다. 또 배설이 두려워서 오랜 세월 자발적 은둔을 선택했던 그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에 대해서도 당사자의 시선으로 분석한다.

 

배설과 반대로 식사는 꼭 함께하기를 강요당한다. 먹을 수 있는 게 한정된 저자에게 주변 사람들은 함께 음식을 먹자고 끊임없이 권한다. 병 때문에 먹지 못한다 해도 결코 봐주지 않는다. 끝내 음식을 거절하면, 비난하고 배제한다. 그저 음식을 거절했을 뿐인데 자신을 거부했다고 간주하고 함께 먹지 않는 사람에게 인격적 문제가 있다고 치부한다. 그는 먹지 않는 사람을 배척하며 함께 먹기를 강요하는 이 사회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 원인과 양상을 심도 깊게 파고든다.


이 사회는 낫지 않는 병을 불편하게 여긴다. 병은 회복돼야 마땅하고, 인간은 성장해야 한다고 여긴다. 현실에서는 모험을 떠난 주인공이 장애인이 돼 돌아올 수 있지만, 문학도 사회도 그런 현실을 외면하려 한다. 저자는 ‘낫지 않는 병’에 걸린 사람으로서 그런 세태에 의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엄연히 회복과 성장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낫지 않는 병에 걸려도 늘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지니면 병마를 극복할 수 있고 노력해서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극복 서사를 믿으며 병에 걸린 이에게 긍정을 강요하고, 아픈 이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고통을 참지 못하면 불편해하고, 나약한 마음가짐 때문에 병이 낫지 않는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 결과 아픈 사람은 몸의 고통만큼이나 마음의 고통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고독’ 속에 오랫동안 있었노라 이야기한다.

 

평범한 대학생에서 갑자기 희귀질환 환자가 돼 오랜 세월 병과 함께한 저자는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보편적 언어로 풀어낸 문학과 만나 비로소 구원을 찾는다. 문학자로 살게 된 저자는 카프카, 괴테, 호손, 카뮈, 쿤데라 등 여러 문호들의 작품과 개인적 기록에서 아픈 사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고독과 은둔의 문제, 사회적 모순, 인간의 폭력성 등에 대한 답을 찾아나간다.


저자는 오랫동안 자신의 질병을 감췄다. 아픈 사람이 된 뒤에야 비로소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깨닫게 됐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 등 이들은 대낮의 길거리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보이지 않는 사람을 상상하고 공감할 때 비로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크기변환]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