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책 365] 인간 보살피는 '똑똑한 되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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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책 365] 인간 보살피는 '똑똑한 되살림꾼'

본지가 2022년 독서문화 진흥 캠페인 '미-친-책 365'를 진행합니다. 베스트셀러나 신간 도서에 밀려 독자들과 '미처 친해지지 못한 책'을 찾아 소개하고 일독을 권장함으로써 다채로운 독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나아가 다양한 콘텐츠와 온라인 플랫폼이 넘쳐나는 시대에도 책을 찾는 이유를 생각해보고 편독 없이 다양한 주제의 책을 제안해보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편집자 주>

  • 이은진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2.04.05
  • 댓글 0

[지데일리]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달콤한 영양 식품인 꿀. 꿀벌은 어떻게 꿀을 생산해 내는 걸까. 벌은 멸종의 위험에 처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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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면 벌이 전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다. <벌꿀 공장>(위르겐 타우츠·디드리히 슈텐 지음, 열린책들 펴냄)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양봉이 부업에서 취미로 변화하며 양봉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다만 집단생활을 하는 꿀벌과 달리 야생에서 단독으로 생활하는 벌들은 살아남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미국의 거대 농장에서 오직 작물 수분에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꿀벌을 이용해 꿀벌이 살아남지 못하는 현실이라 안심할 수는 없다. 

 

오래전 인류는 식량으로서 영양이 풍부한 꿀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채집으로 시작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꿀을 얻기 위한 양봉 기술이 발전했다. 꿀벌을 가축화한 것이다. 돼지나 소와 같은 가축이 야생에서 살아남기 어렵듯이 인간의 보살핌을 받은 꿀벌도 야생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강아지든 고양이든, 꽃이든 채소든, 생명을 돌보는 것은 애정을 쏟는 일이다. 애정을 쏟을 때 그 대상에 대해 잘 알게 된다. 양봉가에게는 꿀벌이 그렇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양봉가와 꿀벌은 꿀 생산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협력자'라는 점이다. 꿀벌이라는 작은 생명체와 손발을 맞춰 꿀을 생산해 내는 과정은 새로운 경험이자 기쁨이다.

 

이 책은 세계적인 꿀벌 생물학자 위르겐 타우츠와 25년 째 벌을 치고 있는 양봉가 디드리히 슈텐이 들려주는 꿀벌 생태 관찰기다. 

 

균일한 육각형 벌집을 짓는 건축 능력부터 난방벌, 월동벌, 유모벌, 수집벌, 경비벌, 정찰벌 등 역할 분담, 그리고 추운 겨울 서로 간에 식량을 무조건 내주는 걸 기본으로 하는 공동생활까지, 꿀벌이 꿀을 생산하는 과정은 마치 공장을 운영하는 것처럼 체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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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가들은 꿀벌들이 애써 식량으로 만들어 놓은 꿀을 훔쳐가는 존재일까. 슈텐은 처음에는 꿀을 얻기 위해 벌을 이용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여곡절 끝에 3년을 넘기고 나면 벌들과 입장이 뒤바뀐다고 말한다. 꿀벌이 오히려 생존을 위해 양봉가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양봉가는 어느새 꿀벌 군락의 매력에 사로잡혀 버린다. 달콤함과 향긋함, 윙윙, 붕붕 귀를 간질이는 날갯짓 소리, 따끔한 벌침과 벌꿀의 끈적임은 양봉가의 다양한 감각을 자극한다. 

 

양봉가는 꿀벌을 돌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는다. 어떤 나무, 어떤 꽃이 언제 꽃을 피우는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똘똘 뭉쳐 추운 겨울을 함께 나는 봉구를 보면서 삶의 희망을 보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양봉가는 단순히 꿀을 얻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꿀벌과 교감하는 사람이다.

 

육각형 벌집이 어찌나 정교한지,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꿀벌이 수학을 알고 있다고 믿을 정도였다. 동물학자 카를 폰 프리슈는 꿀벌의 언어를 처음 밝혀 낸 공로로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튼튼한 벌집을 만드는 건축 기술, 꽃이 있는 곳을 탐지하는 감각,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유도하는 의사소통 능력 등 꿀벌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곤충이다.

 

세계적인 꿀벌 생물학자 타우츠는 이 책에서 꿀벌에 관한 최신 연구 결과들을 소개한다. 꿀벌 연구자들은 이제 육안에만 의존하지 않고 열 적외선 카메라와 레이저 탐지기 등 최신 장비와 실험으로 꿀벌 군락을 관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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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적외선 카메라로 새로 지어진 둥그스름한 방에 난방벌이 들어가 온도를 40도 이상으로 높이는 현장을 포착할 수 있다. 열로 인해 밀랍이 부드러워지면 방이 장력을 받아 팽팽해지면서 반듯한 육각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눗방울 두 개가 만날 때 벽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꿀벌의 꼬리 춤은 레이저 탐지기와 광학 장비 등으로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다. 프리슈는 꿀벌의 꼬리 춤이 밀원이 있는 곳을 제시하고 직선 방향으로 바로 찾아간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꼬리 춤으로 널찍한 목표 지대를 제시한 뒤 근방에서 향기를 확산시켜 다른 꿀벌들을 정확한 목적지로 유인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인간은 벌꿀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제는 과거에 나무에 벌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양봉을 하던 방식에 대해서도 새롭게 논의되고 있다. 자연에서의 꿀벌 생태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엔 꿀벌 군락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는 과정과 '협동'하는 모습, 꿀벌의 다양한 감각, 꿀은 물론 밀랍과 프로폴리스 등 꿀벌이 우리에게 주는 '생산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아가 취미로서의 양봉, 야생벌과 벌통 속의 벌, 변화한 시골과 도시 환경 등 벌이 처한 현실을 살펴봄으로써 꿀벌과 인간이 오래도록 공존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지 생각해 볼 수 있게끔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