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의 젠더풀월드] 신성과 혐오 사이 세 번 태어나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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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영의 젠더풀월드] 신성과 혐오 사이 세 번 태어나는 여성

젠더는 사랑, 결혼, 가족 구성, 출산, 양육, 노령화를 포함한 사적인 영역부터 경제, 종교, 정치, 미디어, 학교 등 공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강력하게 작동하는 ‘체제’다. 젠더는 인간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범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로도 작동한다. 이렇게 젠더 이분법이 만드는 사회가 성별화된 사회(gendered society)다. 본지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이러한 이분법에 의문을 던져보고,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젠더 관점의 고민과 방향을 담은 저작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지데일리] 엄마들은 세 번 태어난다. 여자아이라는 젠더로, 엄마라는 사회적 역할로, 그리고 차별과 혐오를 온몸으로 겪으며 젠더와 사회적 역할에 저항하는 인간 그 자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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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남자를 낳았다”는 언명은 동서양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신다”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가부장 문인은 하늘은 만물을 만들어 내고 땅은 그것을 기른다는 음양오행까지 불러와 기어이 ‘낳다’라는 동사를 남자의 것으로 가져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가부장 중심주의는 ‘성(姓)’이라는 가계도를 만들어 냈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아버지 성을 붙인 이름으로 호적에 올랐고, 그 성과 이름으로 태어나 숨을 받은 삶을 살기 시작했다. 여자인 사람은 낳기만 하고 족보에 기록되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가부장 의식과 악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는 비판 끝에 호주제가 폐지된 것이 2008년, 그 이후 엄마 성을 쓸 수 있는 제도가 생겼다. 하지만 엄마 성을 물려주는 일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아빠 성을 부여하는 건 절차조차 필요 없는 ‘원칙’이지만, 엄마 성을 물려주는 일은 여전히 ‘예외’가 된다. “아이를 둘이나 낳고도 이 집에서 나 홀로 권씨, 그나마 나의 성도 부계 내림”이라는 현실을 작가는 엄마가 되어 새롭게 체감한다.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권혁란 지음, 낮은산 펴냄)에서는 '아버지가 아들들을 낳았다는 기나긴 기록'으로 이루어진 성경의 창세기 구절을 꼬집는 최영미 시인의 시 <어떤 족보>를 인용하며 책을 연다. 


한국 여성들에게 ‘집’과 ‘밥’처럼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또 있을까. 엄마들에게 집과 밥은 은근한 자부심이기도, 도무지 털어지지 않는 죄책감이기도 하다. 


가족 중심주의가 유독 강한 우리 사회에서 ‘집’은 가정이라는 혈연 공동체 그 자체이며, 인사가 “밥은 먹었냐”이고 ‘식구’라는 단어가 이미 ‘밥’을 품고 있는 한국에서 먹는 문제는 고스란히 엄마들의 주요한 가치이자 의무로 부과된다. 

 

작가는 “특히나 엄마가 된 여자들은 스스로 장소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면서 “집사람”은 될 수 있어도 “집주인”은 되지 못하는 엄마들의 현실을 지적한다. 


예나 지금이나 “엄마의 역할을 밥상 차리는 것”으로 여기는 시선을 비판하면서도, “밥하는 게 지겨울 때”조차 식구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딜레마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엄마들이 집 안에서 집을 가꾸고 음식을 만들 땐 숭고하다는 말로 퉁치고, 집 밖에서 같은 일을 하면 보잘것없는 일로 치부하는 사회의 이중적 시선까지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숭고하다 칭송하는 일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돈 받고 하는 일엔 하찮다고 비난하니 무슨 일을 해도 유쾌하지도, 떳떳하지도 않다. 여자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스스로 가격표를 붙이지 못한다.”


오랜 과거부터 수많은 욕설이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내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새로울 것이 없지만, ‘엄마’를 욕의 소재로 삼는 최근의 교실 풍경은 가벼이 넘기기가 어렵다. 


반에서 서열이 낮은 아이를 엄마 이름으로 부르고, 누군가 실수하면 “애미 터졌냐”라고 말하는 등 십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패드립'에 저자는 무력감을 호소한다.


표준어라고 여성을 비하하고 왜곡하는 표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요망한, 간사한, 간특한, 발칙한, 추잡한, 방정맞은, 부정 타는, 잡스런, 교활한, 경망한, 수다스런, 꼬리치는, 배시시, 게슴츠레, 알랑알랑, 비죽비죽 등이 들어가는 문장의 주어 자리에 주로 여성이 온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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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관련된 충격적인 욕들이 많지만, 저자를 가장 서글프게 하는 욕은 ‘맘충’이다. 사람을 벌레로 비유해서라기보다는 '엄마의 노동을 완전히 무시라는 조어'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건 정작 엄마가 진짜 짐승 같고 벌레 같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는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목숨 걸고 피를 쏟아 내며 아기를 출산할 때, 잠 못 자며 밤낮으로 수유할 때, 아이 똥 기저귀 갈고 먹이고 씻기고 업어 재우며 서성일 때.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짜 벌레처럼 고군분투할 때는 잠잠하다가, 바깥세상으로 나와 당신들 눈에 뜨이는 순간 ‘벌레’라고 손가락질한다'

 

저자는 여자아이, 딸, 엄마, 할머니로 이어지는 여자들 삶의 경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동안 딸과 엄마가 어떻게 겹쳐지고 또 멀어지는지에 관한 책들을 써 왔다. 엄마가 되어서야 체감하게 된 여성을 향한 또 다른 혐오와 이중 기준에 관한 보고서와 같다.

 

모든 엄마는 딸이기도 하므로, 딸로서 바라본 엄마와 엄마의 눈으로 본 세상, 그 두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 책의 ‘한 글자’ 목차가 탄생했다, 

 

다채로운 주제를 관통하며 여자아이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고군분투 과정을 그렸다.


엄마인 여성은 물론 엄마가 아닌 여성, 그리고 남성들도 이 책을 통해 ‘엄마’라는 존재를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가장 극단적인 ‘신성’과 ‘혐오’의 대상으로서 ‘엄마’라는 사회적 기대를 넘어서기 위해 여성들이 어떤 분투를 하고 있는지도 말이다.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