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그린노트] 이토록 소중한 꿀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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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그린노트] 이토록 소중한 꿀벌이라니

[지데일리]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꿀벌이 사라진다면 4년 안에 인류도 멸종할 것이다.” 세계 환경단체인 어스워치Earth Watch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가장 대체 불가능한 생물 5종 가운데 벌이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한다. 나머지는 플랑크톤, 박쥐, 균, 영장류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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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6년, 일하러 나갔던 꿀벌들이 한꺼번에 실종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른바 ‘군집 붕괴 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 CCD’이다. 양봉가와 농부들이 당황한 것은 물론이고, 미국 굴지의 아이스크림 회사 하겐다즈는 꿀벌 연구에 25만 달러를 투자했다. 


꿀벌의 수가 줄어듦에 따라 아이스크림 재료로 쓰이는 달콤한 꿀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 많던 꿀벌은 다 어디로 갔을까.


꿀벌들이 갑자기 실종되는 현상, 즉 꿀벌의 군집 붕괴 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 CCD)은 곧 농업과 식량 위기로 직결된다. 꿀벌은 지구상에 출현한 생물 가운데 가장 열정적이고 조직적인 생활을 하는 떠돌이 농사꾼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왜 그처럼 많은 꿀벌이 필요한 것일까. 작물들은 꿀벌이 나서기 이전부터 존재해오지 않았던가. 1억 5000만 년간 곤충은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 짝짓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배달부 역할을 맡았다. 


곤충이 없다면 오늘날 지구상 식물들 대부분이 번식을 할 수 없다. 수천 종의 곤충들이 꽃꿀과 꽃가루를 먹고 살았으며 8000만 년 전쯤 곤충의 일종인 벌들이 특별히 그것을 주식으로 삼았다. 벌 2만 종(種) 가운데 오직 한 종만이 꽃꿀을 남달리 애용해왔으니 이들이 바로 양봉업을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영화 ‘워낭소리’에는 소를 자식처럼 여기는 할아버지가 소에게 먹일 꼴을 위해 끝까지 농작물에 약을 치지 않으려 고생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비단 소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몇몇이 살충제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옆집의 논밭이, 옆마을에서 쓰는 농약도 바람을 타고 땅이 머금고 흘러들 것이기 때문이다. 


레이첼 칼슨은 ‘침묵의 봄’에서 농약의 폐해가 세상에서 새소리를 잠들게 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아울러 가루받이가 이루어지지 않아 과일이 열리지 않을 때 바로 결실 없는 가을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2007년 양봉업자들이 벌의 수가 3분의 1(300억 마리)이나 이유없이 감소했다고 말했을 때 이 경고는 거의 현실이 되었다. 지난해 어린이 관객을 불러모은 애니메이션 ‘꿀벌 대소동’은 어떤가. 꿀벌들은 인간의 착취로 애써 모은 꿀을 빼앗긴다는 사실에 분개해 일손을 놓아 파업을 벌인다. 


그러자 세계 재앙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들이 예전처럼 다시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니 세상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꿀벌은 본래 섭씨 15도 아래에서는 잘 날아다니지 않으며 비가 올 때도 날지 않는다. 또한 비교적 다른 벌 종류에 비해서 늦은 아침에 활동하기 시작해서 초저녁에 활동을 멈춘다. 이 책에서는 꿀벌을 ‘노동조합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그날 일을 쉰다는 것이다. 대신 이들의 단결심은 엄청난 성공을 낳는다. 그러니 CCD는 꿀벌들의 직무 유기 현상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대규모 산업을 이루는 단일경작과 인간이 꿀벌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주는 조건들 때문에 나타난 징후일 수 있다는 뜻이다.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로완 제이콥슨 지음, 에코리브르 펴냄)은 플로리다에서 벌을 기르는 데이브 하켄버그라는 양봉가가 갑자기 꿀벌들이 실종되었음을 알아차린 2006년 11월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서 종자식물들이 어떻게 꽃을 피우고 가루받이(수분)를 하는지, 그 과정에서 곤충과 특히 꿀벌이라는 작은 생명체가 어떻게 산업사회의 상당 부분을 그 조그만 등으로 떠받칠 수 있는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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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양봉(移動養蜂)이 미국에서 처음 생겨난 것은 아니지만, 화물 자동차를 이용해 8000킬로미터를 떠도는 양봉이 일상화된 곳은 오직 미국뿐이었다. 그러던 2006년 가을, 불가사의한 징후가 미국 전역에 걸쳐 꿀벌들을 쓸어갔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 600만 개였던 벌통 수가 2005년에는 260만 개로 줄어들다가 종국에는 사상 최초로 200만 개 아래로 떨어졌다.


아몬드를 단일 경작하는 캘리포니아의 대규모 농장은 야생 곤충들이 살 수 있는 자연 서식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그런 환경에서 꽃의 가루받이가 이루어지려면 많은 꿀벌을 다른 곳에서 데려오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대규모 농업은 더 이상 꿀벌 없이 존속할 수 없다. 그러니 벌을 키우려면 먹이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공식품을 먹이기 이전에도 벌은 수백만 년을 잘 살아왔다. 여느 가축들처럼 벌이 건강하려면 좋은 방목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곳은 점점 더 찾기 어렵다. 벌도 우리처럼 “개발이 불러온 질병”을 앓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CCD를 유발한 단 한 가지 요인을 열심히 찾는다는 건 핵심을 놓치는 일이다. 양봉가들은 꿀벌 집단이 붕괴됐을 때 처음에는 꿀벌 응애(varroa mite)를 의심했다. 


그 이후 여기저기서 휴대전화 전자파를 용의선상에 올리더니 이스라엘 급성 마비 바이러스(IAPV)가 원인이라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지만, 결국 이들 모두 완전한 인과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CCD는 꿀벌 응애와 마찬가지로 더 큰 질병, 즉 화석연료, 화학약품, 나쁜 생활 방식, 지구온난화, 현대문명의 속도 등이 함께 만든 질병의 한 증상일 뿐이다. 시스템의 불균형이 핵심인 것이다. 즉 살충제를 뿌리고 항생제를 먹이고 가루받이 사업을 위해 트럭에 싣고 다니면서 벌에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농산업은 과일, 견과, 채소를 수분시키는 벌에 의존한다. 그리고 벌들의 소멸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이 턱없이 부족한 전문적인 가루받이 매개자들은 트럭에 실려 여러 고장과 세계 곳곳으로 바삐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봉군은 점점 더 붕괴 압력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드러나는 증상들을 보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은이 로완 제이콥슨은 이 책에서 우리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즉 벌에 대한 중대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정체 불명의 군집 붕괴 현상(CCD)을 거론하면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그는 플로리다에서 감귤 농업은 15년 후까지 지속되지 못하리라고 보고 있으며 오렌지 꽃 벌꿀도 운명을 마감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현재 나타나고 있는 위기를 가져왔을지도 모를 오랜 과실의 역사를 나열하면서 남김없이 신화를 폭로하고, CCD의 원인을 캐내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절대로 꽃을 피우는 식물과 가루받이 매개자인 곤충, 특히 벌꿀에 대해 경이로움에 찬 시선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우리 호모 사피엔스에게 주어진 에덴동산을 사라지게 하지는 말자고 역설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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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최근 전국적으로 사라진 꿀벌이 최소 78억 마리로 조사되었고, 지난 겨울 발생한 월동 꿀벌의 집단 폐사를 방치할 경우 더 큰 농업 피해로 연결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이 먹는 식량은 70% 이상이 꿀벌 수분에 의존하여 생산되기 때문에, 꿀벌이 사라진다면 기아로 이어지므로 각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꿀벌에 대한 관심을 되새겨줄 책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강아지든 고양이든, 꽃이든 채소든, 생명을 돌보는 것은 애정을 쏟는 일이다. 애정을 쏟을 때 그 대상에 대해 잘 알게 된다. 양봉가에게는 꿀벌이 그렇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양봉가와 꿀벌은 꿀 생산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협력자'라는 점이다. 꿀벌이라는 작은 생명체와 손발을 맞춰 꿀을 생산해 내는 과정은 새로운 경험이자 기쁨이다.


<벌꿀 공장>(위르겐 타우츠 외 지음, 열린책들 펴냄)은 세계적인 꿀벌 생물학자 위르겐 타우츠와 25년 째 벌을 치고 있는 양봉가 디드리히 슈텐이 들려주는 꿀벌 생태 관찰기다.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달콤한 영양 식품, 꿀. 꿀벌은 어떻게 꿀을 생산해 내는 걸까. 저자는 그 과정을 ‘꿀벌 공장’에 비유했다. 


균일한 육각형 벌집을 짓는 건축 능력부터 난방벌, 월동벌, 유모벌, 수집벌, 경비벌, 정찰벌 등 역할 분담, 그리고 추운 겨울 서로 간에 식량을 무조건 내주는 걸 기본으로 하는 공동생활까지, 꿀벌이 꿀을 생산하는 과정은 마치 공장을 운영하는 것처럼 체계적이다. 


양봉가들은 꿀벌들이 애써 식량으로 만들어 놓은 꿀을 훔쳐가는 존재일까. 슈텐은, 처음에는 꿀을 얻기 위해 벌을 이용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여곡절 끝에 3년을 넘기고 나면 벌들과 입장이 뒤바뀐다고 말한다. 꿀벌이 오히려 생존을 위해 양봉가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양봉가는 어느새 꿀벌 군락의 매력에 사로잡혀 버린다. 달콤함과 향긋함, 윙윙, 붕붕 귀를 간질이는 날갯짓 소리, 따끔한 벌침과 벌꿀의 끈적임은 양봉가의 다양한 감각을 자극한다. 


양봉가는 꿀벌을 돌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는다. 어떤 나무, 어떤 꽃이 언제 꽃을 피우는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똘똘 뭉쳐 추운 겨울을 함께 나는 봉구를 보면서 삶의 희망을 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양봉가는 단순히 꿀을 얻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꿀벌과 교감하는 사람이다.


이 책에는 꿀벌 군락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는 과정과 ‘협동’하는 모습, 꿀벌의 다양한 감각, 꿀은 물론 밀랍과 프로폴리스 등 꿀벌이 우리에게 주는 ‘생산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까이에서 꿀벌을 관찰하고 돌보는 양봉가의 시선을 통해 ‘꿀벌 공장’을 들여다보자. 따뜻한 봄, 꽃밭에서 윙윙대며 꽃꿀을 수집하는 벌꿀들이 사랑스럽게 보일 것이다.


육각형 벌집이 어찌나 정교한지,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꿀벌이 수학을 알고 있다고 믿을 정도였다. 동물학자 카를 폰 프리슈는 꿀벌의 언어를 처음 밝혀 낸 공로로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튼튼한 벌집을 만드는 건축 기술, 꽃이 있는 곳을 탐지하는 감각,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유도하는 의사소통 능력 등 꿀벌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곤충이다.


세계적인 꿀벌 생물학자 타우츠는 이 책에서 꿀벌에 관한 최신 연구 결과들을 소개한다. 꿀벌 연구자들은 이제 육안에만 의존하지 않고 열 적외선 카메라와 레이저 탐지기 등 최신 장비와 실험으로 꿀벌 군락을 관찰한다. 


열 적외선 카메라로 새로 지어진 둥그스름한 방에 난방벌이 들어가 온도를 40도 이상으로 높이는 현장을 포착할 수 있다. 열로 인해 밀랍이 부드러워지면 방이 장력을 받아 팽팽해지면서 반듯한 육각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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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 두 개가 만날 때 벽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꿀벌의 꼬리 춤은 레이저 탐지기와 광학 장비 등으로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다. 


프리슈는 꿀벌의 꼬리 춤이 밀원이 있는 곳을 제시하고 직선 방향으로 바로 찾아간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꼬리 춤으로 널찍한 목표 지대를 제시한 뒤 근방에서 향기를 확산시켜 다른 꿀벌들을 정확한 목적지로 유인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책에서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 꿀벌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벌은 멸종의 위험에 처해 있을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면 벌이 전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다. 


이 책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양봉이 부업에서 취미로 변화하며 양봉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다만 집단생활을 하는 꿀벌과 달리 야생에서 단독으로 생활하는 벌들은 살아남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미국의 거대 농장에서 오직 작물 수분에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꿀벌을 이용해 꿀벌이 살아남지 못하는 현실이라 안심할 수는 없다. 


취미로서의 양봉, 야생벌과 벌통 속의 벌, 변화한 시골과 도시 환경 등 벌이 처한 현실을 살펴볼 수 있다.


오래전 인류는 식량으로서 영양이 풍부한 꿀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채집으로 시작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꿀을 얻기 위한 양봉 기술이 발전했다. 꿀벌을 가축화한 것이다. 돼지나 소와 같은 가축이 야생에서 살아남기 어렵듯이 인간의 보살핌을 받은 꿀벌도 야생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인간은 벌꿀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제는 과거에 나무에 벌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양봉을 하던 방식에 대해서도 새롭게 논의되고 있다. 자연에서의 꿀벌 생태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꿀벌과 인간이 오래도록 공존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