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그린노트] 더불어 살며 건강하게 고독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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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그린노트] 더불어 살며 건강하게 고독과 마주한다

[지데일리] '‘맹그로브 프로젝트’는 1인 가구를 위한 대안 주거를 만드는 시도입니다.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목적은 가격에 비해 질이 낮은 1인 주거에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도 있지만, 그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경험을 통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미래의 삶을 계획할 때, 그리고 나와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서투른 점이 많습니다. 어떤 방법이 있는지 혼란스럽고 어렵기만 합니다. 비슷한 고민과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동아리를 만드는 것처럼, 비슷한 생애 주기에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공통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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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1인 가구의 비율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그들을 위한 주거 형태가 새롭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각자의 방에서 생활하면서 주방, 라운지 등의 시설을 공유하는 코리빙하우스가 그것이다. 


국내 코리빙하우스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인 ‘맹그로브’는 매번 입주 펀딩을 빠르게 마감시키며 공유 주거에 관한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이다. 


맹그로브가 빠르게 성장한 이유에는 다양한 커뮤니티와 콘텐츠, MZ세대를 공략한 마케팅 등이 작용했지만, 그 뒤편에는 잠재적 거주자의 마음을 읽어내고 1인 가구만을 위한 공간을 설계한 건축가 조성익이 있었다. 

 

건축가이자 연구자인 조 교수는 공간을 사회적, 주변 맥락 안에서 실체로 구현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사람이다. 

 

평소 커뮤니티 문제에 관심이 많던 그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우리의 공간들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건축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연구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실험>(조성익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는 1인 가구가 모여 사는 코리빙하우스가 다른 주택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흔적이 가득하다. 

 

저자가 ‘혼자 살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은’ 1인 가구의 모순된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한 공간에 대한 관찰기이자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거주기다. 이 이야기는 저자가 맹그로브의 건축주에게 한 통의 메일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1인 가구에 대한 건축적,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저자에게 이 의뢰는 아주 근사한 제안이었다. 

 

저자는 주거 문제를 단순히 집값을 잡고 공급을 늘리는 문제라고 믿는 사람들 앞에, 개인의 자아가 성장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우는 집을 내놓고 싶었다고 말한다. ‘집’이 목적이 아니라 ‘삶’이 목적인 집을 짓는 일을 말이다.


저자는 가장 먼저 1인 가구의 요구를 정리해봤다. 비용은 저렴하되 공간은 편안해야 하고, 방이 클 필요는 없지만 답답하면 곤란하고, 좋은 동네일 필요는 없지만 걸어서 5분 거리에 괜찮은 카페 하나는 있어야 하고. 여러 가지 모순되는 요구 중에서 역시 가장 중요한 요구는 이것이었다. 


‘완벽하게 사생활이 보호되었으면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고립되기는 싫다.’ 저자는 이 요구에서 맹그로브 설계의 가장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를 찾는다. 함께 사는 사람과 만남의 횟수를 늘리되, 그 시간을 짧게 하는 공간을 만들어 ‘짧지만 잦은 스침’을 유도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기존의 주거는 중간이 없었다. 한쪽에서는 너무 과하게 사생활을 보호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고 있었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할 정도의 거리감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했다. 교류하고 대화를 유도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쑥스러움을 완화하고 만남의 부담을 덜어주는 집을 만드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해 보였다. 깊은 관계를 맺기도 전에 지레 포기하지 않도록, 계단에서 지나치거나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가 짧게 눈인사를 하며 스치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책 곳곳에는 ‘짧지만 잦은 스침’이 일어나기 위해 저자가 만든 장치들이 소개된다. 짧은 만남 속에 교류의 스파크가 일어나도록 복도의 폭을 늘리고, ‘워터팟’이라고 이름 붙인 공간에는 물을 쓰는 시설을 모아두어 거주자들이 순환할 수 있는 동선을 만들었다.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유도한 이런 장치와 함께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도록 섬세하게 배려한 공간도 놓치지 않았다. 공유 주거라는 새로운 콘셉트부터 구현 과정, 완공 후 입주기, 집에서 성장하고 교류하는 사람들의 사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글을 읽다보면 주거와 공간에 관해 저마다의 힌트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맹그로브가 완공되고 청년들의 입주가 시작되던 즈음, 저자는 하나의 실험을 시작한다. 코리빙하우스를 위해 고안했던 설계 포인트가 정말 애초의 의도대로 작동할 것인가. 거주자들끼리의 스침을 의도했던 주방과 복도, 담장 공원, 거주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만들었던 우회로와 조망 포인트 등이 기대한 역할을 해주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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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직접 살아보는 일뿐이었다. 저자는 맹그로브 설계에 참여했던 사무소의 젊은 직원 현수에게 그 임무를 맡기기로 했다. 현수는 월세를 지원받는 대신 거주자의 행동과 감정을 꼼꼼히 살피며 맹그로브에서의 생활을 날마다 기록했다. 


사람들의 행동이 공간이 더해지자 설계 단계에서 했던 가정이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고, 실패로 드러난 부분도 있었다. 

 

저자는 공간에 만들어놓은 장치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행동하며 살아가는지 또 거기엔 어떤 이야기가 생겨나는지 직업과 생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흥미로움을 갖고 관찰했다. 그 깨달음의 결과물인 이 책은 그동안 건축가들이 쉽게 보여주지 않았던 ‘설계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


'설계 초기에 코리빙하우스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해보니, 이들이 공통적으로 불편해하는 점이 있었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살면 누군가와 끊임없이 마주친다는 긴장감이었다. 우리가 설계에서 의도한 짧고 잦은 스침이 어떤 이들에게는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이 될 수 있었다. (…) 이런 경우, 사람들과 마주칠 필요 없이 눈에 안 띄고 살짝 돌아가는 우회로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이것이 설계 과정에서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주방으로 가는 일반적인 방법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라운지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다. 여기에 길을 하나 추가했다. 세탁실을 거쳐 주방 뒷문으로 가는 우회로를 만든 것이다.'


맹그로브에는 거주자들이 모여 있는 라운지를 지나치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우회로’가 있다. 누구와도 마주치기 싫은 날을 위한 장치인 것이다. 우회로와 더불어 만들어진 ‘조망 포인트’도 있다. 

 

우회로로 지나갈지 사람들과 인사하며 라운지를 지나갈지 결정할 수 있는 장소로, 저자는 실내보다 조금 높게 바닥을 두어 한눈에 공간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딱 원하는 시간만큼만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1인 가구의 마음을 읽어내어 만든 공간들이다. 


저자에게 건축가의 일이란,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공간에 가구를 배치하고 사람을 살게 하며, 실제로 사용할 사람들의 심리에 감정이입하는 일이다. 책은 건축가의 상상이 실제와 공명하는 순간과 그 순간의 성공과 실패를 보여주며 흥미로운 책 읽기 경험을 전한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사례들은 이 시대의 우리가 마주한 보편적 문제, 즉 더불어 살면서도 건강하게 자신의 고독과 마주할 수 있는 방법에 해답을 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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