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이로운 망각이라니 [새로 나온 책]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토록 이로운 망각이라니 [새로 나온 책]

  • 이은진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2.05.20
  • 댓글 0

1.jpg

 

우리는 왜 잊어야 할까 

스콧 A. 스몰 지음, 북트리거 펴냄


‘당신은 분노 문제를 갖고 있거나, 이따금 차갑게 행동하거나, 어두운 인간 혐오를 몇 차례씩 앓기도 한다.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외로움이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거나 무조건 사랑하기가 힘들다. 사회생활이 개선되기를 바라면서 당신의 기질을 밝게 해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경과학자라면 사회적 기질을 관장하는 뇌 구조를 먼저 이해해 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는 변화의 레버를 당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을 알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기억의 과학’에 가려져 있던 ‘망각의 과학’을 조명하는 책이다. 흔히 ‘잊어야 행복하다’라고 하지만, 이는 그저 오래 산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잠언으로 취급될 뿐, 뇌과학의 역할은 ‘어떻게 하면 잘 기억할 수 있고, 그 기억력을 죽을 때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왔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신경학 및 정신의학 교수로서 자타공인 ‘기억 전문가’인 저자는 우리가 걱정하는 증상 중 대다수가 병적 망각, 즉 알츠하이머병이 아니라 ‘정상적 망각’이라고 강조한다. 

 

최첨단 뇌과학의 연구 결과에 지금껏 만나 온 여러 환자와 주변인의 사례를 녹여내며 ‘망각의 과학’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늘 기억에 대한 강박과 망각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현대인은 이 책을 통해 망각이 자연스러운 것일 뿐 아니라 뇌의 가장 유익한 기능으로서 우리 정신이 잘 작동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익숙한 단어나 오랫동안 외우고 있던 비밀번호와 계좌번호 등이 ‘툭 튀어오르듯’ 생각나지 않을 때, 섣불리 ‘치매’를 염려한다. 


이때 ‘치매’란 실제적 질병이라기보다는 현대인의 ‘기억 강박’이 불러온 일종의 환상통에 가깝다. 


저자는 “나는 기억 전문가이지만 내가 듣는 이야기는 모두 망각에 관한 것”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문제는 그러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병적 망각이 아니라 정상적 망각에 관해 불평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망각은 그저 기억의 반대 항으로서 기억 체계의 결함이자 우리 뇌의 한계처럼 여겨져 왔다. 

 

그렇기에 ‘망각’이라는 단어 앞에 ‘정상’을 붙이는 것 자체가 낯설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최첨단 과학은 이미 이러한 정상적 망각의 원리와 가능성을 상당 부분 밝혀낸 상태다. 


기억을 잘하던 뇌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뇌에 ‘기억하기 위한’ 도구가 내장돼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망각하기 위한’ 도구 역시 애초에 들어 있으며,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때에도 끊임없이 기능하고 있다. 


이는 망각이 수동적 과정이 아니라 적극적 과정이라는 증거다. 이러한 과학적 증명을 바탕으로, 이 책은 망각이 정상 과정일 뿐 아니라 나아가 우리의 인지 능력과 창의력, 그리고 정서적 행복과 사회적 건강에 이롭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크기변환]1.jpg

 

어찌 됐거나 ‘망각은 우리에게 이롭다’라는 말은 사람들의 반발을 일으킨다. 이 책의 프롤로그 제목처럼 “고화질 사진 같은 기억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바꿔 말하면, 영화 속 슈퍼 히어로나 갖고 있을 법한 이러한 비현실적인 능력에 가려져, 실제로 우리 뇌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매일 발휘하고 있는 망각의 인지 능력은 뒷전이 되어 온 셈이다.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 뿌리내린 ‘기억 강박-망각 공포’를 직시하고 완전히 뒤집어 보자고 제안한다. 이를 위해 저자가 과학자로서 택한 최선의 방식은, 망각의 이점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렸을 때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를 거꾸로 보여 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자폐스펙트럼장애(자폐증)를 들 수 있다. 자폐증 환자들은 때때로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뛰어난 기계적 암기 능력을 보이기도 하지만, 세부 사항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잊어버리지 않는 바로 그 능력 탓에 일상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끊임없이 변화하게 마련인데, 자폐증 환자, 특히 아이들은 그 변화를 너무도 고통스럽게 느끼고 늘 기억 그대로의 세상에 머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따로 인식할 뿐 얼굴 전체로 통합하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 역시, 세부 사항을 잊고 일반화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증상이다. 


저자는 기억의 딜레마와 망각의 필요성에 대한 은유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자주 인용하는데, 이 작품 속 화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다. 일반화하고 추상화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고유의 망각 능력이 손실되었을 때 겪을 수 있는 여러 증상들을 탐구한다. 저자 자신과 전우들의 참전 경험에서 출발해 망각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의 관계, 그것을 피해 갈 수 있던 이유를 밝힌다. 


아울러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심각한 문제인 분노와 공포, 편견 또한 망각과 아주 큰 관련이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또한 이른바 ‘기억의 윤리’와 대비를 이루는 ‘망각의 윤리’를 새롭게 제시하며 애국주의의 함정을 재조명한다.


과학적 분석에 그치지 않고, 기억과 망각을 만들어 가는 생경한 이름의 뇌 속 도구들이 실제 한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주목한다. 


저자는 과학자인 동시에 무엇보다 환자를 오랫동안 치료해 온 의사로서, 사람들이 인지 노화 또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고통받으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억과 망각에 관여하는 뇌 영역과 부위가 기능하는 방식을 상세히 설명한다. 이때 저자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비유는 개인용 컴퓨터에 관한 것이다. “실은 비유 그 이상이어서, 알고 보면 개인용 컴퓨터의 작동 방식은 우리 뇌가 기억을 보관하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방식을 탁월하게 닮았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우리 뇌도 엄청난 양의 정보를 잘 다루기 위해 기억을 어디에 보관할지, 어떻게 저장할지, 어떻게 열어 인출할지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기억을 저장하는 곳은 우리 뇌 뒷부분인 후두 영역인데, 뇌 측두엽 깊숙이 파묻힌 해마는 마치 ‘교사’처럼 이 기억들이 적절히 저장되도록 가르치고, 이마 바로 안쪽의 전전두 영역은 마치 ‘사서’처럼 이미 저장된 기억을 열어 인출하도록 돕는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우리 뇌의 뉴런(신경 세포)에는 마치 나뭇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뻗은 가지돌기가 있고 그 끝에는 가지돌기가시가 촘촘히 나 있다. 


여기에 시냅스라는 접합점이 있어서 뉴런이 다른 뉴런과 연결되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한다. 뉴런과 그에 인접한 다른 뉴런이 동시에 충분히 활성화되면 가지돌기가시가 늘어나고 뉴런 간 연결이 강화되는데, 이것이 바로 새로운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반대로 뉴런이 인접 뉴런과 동시에 활성화되지 않으면 가지돌기가시는 도로 줄어드는데, 이것이 망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이 현상을 단지 가지돌기가시의 성장 도구가 수동적으로 ‘녹슨’ 것으로 보았던 반면, 새로이 떠오른 ‘망각의 과학’에서는 정상적 망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별개의 도구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크기변환]2.jpg

 

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 

강부원 지음, 믹스커피 펴냄


‘여기에 등장하는 스물다섯 명의 인물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투옥이나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끝내 지키려 한 삶의 원칙이 있었다. 자유와 평등, 여성 해방과 노동 해방,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등등. 추구했던 목표는 각자 달랐지만, 자신이 삶의 원칙으로 세운 가치들을 실천하기 위해 평생 노력했다. 곰곰 돌이켜보면, 모두 공동체의 ‘사랑’과 ‘평화’와 ‘행복’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던진 존재들이었다.‘


격동의 20세기 한국, 시대를 이끈 선도자와 방향을 제시한 지도자가 무수히 이름을 날렸다. 그들은 일평생 부귀와 영달을 누렸다. 


하지만 선도자와 지도자만 20세기 한국을 수놓지 않았다. 자신만의 규칙과 리듬, 삶의 태도로 새로운 세상을 꿈꾼 모험가와 소동꾼도 있었다.


그들은 세상에 맞서 싸우는 걸 주저하지 않았고 험난한 도전과 변화를 멈추지 않았으며 열정과 분노를 무기 삼아 시대와 불화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세상의 천편일률적인 질서에 무분별하게 편입되지 않고 패러다임을 바꾸려 했다.


이 책이 소개하는 스물다섯 명의 모험가와 소동꾼들은 그렇게 역사에 불꽃처럼 맞섰다. 비록 낯설고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누군가에겐 용납할 수 없고 어긋나며 역사가 감췄거나 굳이 살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잊혀도 무방한 이름은 없다. 


누가 뭐래도 이들은 격동의 20세기 한국을 살아오며 자신만의 규칙과 리듬으로 세상에 맞섰으니 말이다.


정세가 급격하게 움직이고 또 수없이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뀔 때, 자연스럽게 휩쓸리거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좇거나 발맞추는 건 쉽다. 


성공과 풍요가 절로 따라올 테니 말이다. 하지만, 치트키를 쓰지 않고도 인생을 하얗게 불태우며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내던져 싸운 존재들도 있다. 그들은 비록 쉽게 잊혔지만 누구보다 어려운 길을 걸었다.


20세기 한국사에서 이들 존재는 숨겨졌고 알려져 있지 않다. 거대한 세계 질서에서 빗겨나 세상에 순응하지 않는 견해를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고 체제를 비판·위협·파괴하는 데 특화됐기 때문이다. 정형화된 근현대 한국 사회에 드라마틱한 삶을 산 이들의 자리는 없었다.


이 책에서는 세상에 맞서 싸운 여자들을 소개한다. 한국 최초의 고공투쟁 노동자 강주룡을 비롯해 ‘조선공산당 여성 트로이카’ 그리고 위안부 참상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김학순 등의 이야기가 우리를 반긴다. 


최초의 도전을 감행한 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 최초의 비행사 서왈보,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을 비롯해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 했던 박열이나 바이러스 퇴치 역사의 전설 이호왕이다. 


시대와 불화한 이들이 주를 이룬다. ‘한국 영화의 개척자’ 나운규, ‘1960년대 문학소녀의 대명사’ 전혜린,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김수근, ‘한국 문학의 찬란한 별’ 김승옥의 이름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바 이들은 명성을 날렸으나 시대와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수없이 좌절하고 방황했다.

 

이제 이들의 이야기를 20세기 한국사 빈칸에 채워 넣을 시간이다. 보통 사람들이 이 잊힌 사람에게서 조금이나마 용기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인생에 정답이 있을 리 만무하겠지만, 이 책이 소개하는 인물들의 삶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크기변환]3.jpg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 아깝다 

조수빈 지음, 파람북 펴냄


‘그 시절에 속한 이는 깨닫지 못할 것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얼마나 빛나는지를. 그러니,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 아깝다’


아나운서 조수빈. 20대에 KBS <뉴스9〉의 앵커를 맡아 4년간 진행했고, 지금은 채널A 메인 뉴스인〈뉴스A〉를 담당한다. <스타 골든벨>우승, KBS 사상 한국어능력시험 최고 득점, 또는 미스 유니버시티 입상 같은 이색 경력도 있다. 


20대 때부터 영화 잡지에 영화와 노멀 라이프를 결합한 칼럼을 써 호평을 받았다. 숨돌릴 틈 없이 들어오는 방송일에, 그리고 육아에 치여 첫 에세이집,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 아깝다》을 이제 펴내게 됐지만, 그녀만의 ‘청춘 예찬’을 펼쳐 보인다.


이 책에서는 제목 그대로 폭발하는 청춘의 멋짐, 그리고 그 멋짐을 알지는 못하는 젊음의 이야기가 메인 테마다. 


그 멋짐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 역시 젊음의 중요한 멋짐 포인트 중 하나임을 물론 잊어서는 안 될 것. 사랑, 커리어, 삶이라는 세 가지 파트로, 뉴스 시간에 앵커로 전해주던 소식만큼이나 다양한 소재들에, 그 위에 입힌 빛깔도 색색으로 다채롭다.


타이틀 에피소드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 아깝다'로 여는데, 지나고 나니 메모리지만, 그 현장에서만큼은 무척 심각했던 애정 생활의 기록들을 담았다. 


또한 강릉의 아기 아나운서 시절부터 퇴사, 그리고 프리랜서에 이르는 방송인 라이프. 그리고 자신의 삶을 지켜주었고, 지켜주고 있는 여러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다.


‘4차원적’인 별남의 소유자지만, 아나운서 20년 경력의 그는 진지할 때는 더없이 진지하고 또 진솔하게, 후배들을 위해 저장해 놓은 여러 조언들을 풀어낸다.


방송인은 물론 크리에이터 지망생들의 눈을 반짝 뜨게 만들 KBS 아나운서 되기부터, 직딩들이 가장 소원하면서도 미처 실천하지 못하는 퇴사하는 법, 그것도 ‘잘’하는 방법, 그리고 이제는 전 세대의 관심사인 재테크 원칙까지. 특히 간략하면서도 투자의 기본에 아주 충실한 그녀의 ‘부자 되는 법’이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