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BOOK돋움] 시골에서 나로 서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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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BOOK돋움] 시골에서 나로 서는 아이들

본지가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심신을 회복하기 위해 독서로써 마음을 힐링하는 '책 읽는 힘, BOOK돋움'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일상생활이 멈춘 상황에서 마음의 양식을 얻을 수 있는 독서 생활이 최고의 기회라 여겨집니다. 독서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부모와 자녀 세대가 소통하는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며, 책 읽는 분위기가 잔잔한 물결처럼 번져 코로나 블루가 슬기롭게 극복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 이은진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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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그 달 생일인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단상에 오른다. 당사자가 원하면 재주를 뽐내는 무대로 이어지기도 한다. 도시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주는 큰 상을 받지 않는 이상, 단상에 올라 전교생의 박수를 받기가 드물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누구나 1년에 한 번은 반드시 그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아이는 존재만으로, 건강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축하를 받았다.‘


교사인 저자는 편리하고 안정적인 도시에서의 삶을 접어두고 아이들과 아무것도 없는 시골로 훌쩍 떠났다. ‘우리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그저 아이가 행복하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행복하기 위해 이삿짐을 꾸렸다. 시골 육아란 아이는 모자람 없이 배우고 부모는 잔소리 없이 육아가 가능한 삶이었고 그 무해한 순간들이 책에 담겼다.


자녀의 나이와 타고난 기질로 인해 시골행을 망설이는 부모들이 있다. 저자 역시 예민하고 조심성 많은 아이들이 시골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 많았다. 그러나 시골에 내려온 지 단 1년 동안 아이들에게 일어난 변화를 보며 자신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게 됐다.

 

시골 유치원에서는 마음껏 뛰어놀고, 직접 텃밭을 가꾸고, 작은 동물을 보살필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의 놀이와 성장을 기꺼이 기다려준다. ‘어린이는 놀아야 산다’는 말처럼, 아이는 아침에 눈뜰 때마다 말한다. 


시골 육아, 농촌 유학을 고민하는 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자녀의 교육 문제일 게다. 그러나 시골 공교육만이 주는 혜택이 생각보다 많다. 승마, 수영, 골프 등 도시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배워야 하는 것을 시골 학교에서는 공짜로 할 수 있다. 


부모들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안 돼”을 말을 입에 달고 살기도 한다. 이는 아이의 행동에 믿음이 없어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집 밖을 나가도 아이들은 “조용히 해라”, “그만해라”처럼 잔소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에 반해 시골 마을 어르신들은 활기차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칭찬하며 흐뭇이 응시할 뿐이다. ‘안 돼’는 아이가 다치고 상처받고 실패할 가능성을 막아주지만 경험하고 터득하고 성공할 기회도 빼앗는 말이라는 지적이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안 돼”보다 “해도 돼”를 더 많이 하는 엄마가 되기로 다짐했다. 어른의 인정과 존중 속에서 자란 아이는 자기긍정감을 쌓아가며 자라난다. 시골에선 아이에게 무얼 시킬 틈도, 아이들이 지겨워할 틈도 없다고 한다. 아이들은 길가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보고 만지고 탐색한다. 

 

도시에서 저자는 일과 육아를 홀로 병행하느라 늘 피곤에 절어 살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감정을 거름망 없이 학습했다. 엄마가 습관적으로 내뱉는 “힘들어 죽겠다”는 말에 정말 자기들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 죽을까봐 걱정하면서도, 피곤하고 힘들 땐 엄마가 그랬듯 짜증부터 냈다고 한다. 


개구리, 두더지 등 작은 생명들이 도로에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며 인간 중심적인 개발을 안타까워하고 자연 보호에 관심을 갖게 된다. 폭염 속에서 물의 소중함을 깨닫고 세숫물, 쌀뜨물을 모아 텃밭에 뿌리기도 한다. 아이는 부모가 시키지 않아도 마음이 이끄는 대로 스스로 놀면서 배우는 주체적인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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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육아' 김선연 지음, 봄름

 

 

이렇게 눈앞에 놀거리가 많으니 아이들은 유튜브 같은 영상 매체를 절로 잊었다. 놀이의 수용자가 아니라 창작자가 되니 보기만 하는 놀이에 흥미가 사라진 셈이다.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학습도 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아이들은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책을 꺼내 읽곤 한다.


자신이 일상에서 보고 겪은 것과 책에서 배운 것들이 매일 연결되는 만큼, 놀이 시간이 쌓일수록 독서와 독후 활동이 저절로 이어지게 된다 궁금한 게 생기면 책에서 직접 답을 찾고, 그러면서 영감을 받으면 뭐든 만들어보는 자발성과 창의력이 생긴다.


툇마루에 앉아 계절의 변화를 오감으로 익히며 이야기 나누기도 한다.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아이만의 감수성과 세상에 대한 나름의 이해가 담겨 있다. 그 이야기는 언제나 자신에 대한 이해로 귀결됐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아이가 직접 키운 텃밭 채소로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생명의 순환과 식량의 소중함을 깨우치며 그 수고로움을 놀이처럼 재밌어 했다. 특히 싱싱한 채소를 직접 길러 매일 먹는 습관이 생기면서 가공육처럼 몸에 안 좋은 식습관을 스스로 고쳐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라는 만큼 본인을 돌볼 여유가 생겼고, 잊고 지낸 꿈도 다시 꾸게 됐다. 집이 좁아 미니멀 라이프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생활비를 아끼느라 살림이 단출해지자 오히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다. 이렇듯 저자의 시골 육아는 그저 아이의 행복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족은 이제 너른 자연 속에 자신을 유배시킴으로써 나다움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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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 예찬' 김지선 지음, 한겨레출판

 


‘덜 내뱉고 덜 뻗치고 덜 부대끼며 살고 싶은 사람의 소망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담긴 사회의 공기가 희석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고통스러웠던 팬데믹 상황에서 잠깐 그 문이 열렸던 것도 같다. 집단주의의 관성이 일시적으로 해체되었고 개인주의자의 선택이나 행동이 별스러워 보이지 않는 세계가 열렸다. 빠른 속도로 예전으로 돌아가는 지금, 우리 앞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던 세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했던 사적 공간과 코로나 이후에도 유지되었으면 하는 최소한의 거리에 대해서 말이다.’


자신이 가진 에너지의 총량을 인지하고,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해 각자가 원하는 정도와 방식으로 타인과 교류하는 사람들. 이들은 자기 자신과 더 깊이 만남으로써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와 동력을 얻고 자신의 에너지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재분배하는 성향을 보인다. 

 

‘혼자 점심을 먹으며 회복하는 시간’ ‘수치심을 처리하기 위한 장소 마련하기’ ‘안 웃긴 말에 무표정할 권리’ ‘칠흑같이 어두운 시간 활용하는 법’ ‘간장 종지 크기의 사랑일지라도 여러 개 품는 사랑’ 등 한정된 에너지 속에서 작가만의 내밀한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책을 통해 말한다.


저자는 약속이 취소되면 기뻐하는 사람, 주말에는 조용히 혼자 집에서 회복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사람, 식당이나 카페에 가도 가장 구석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라면 특히 공감할 만한 내밀한 시간을 보내는 기쁨에 관해 말한다.


내밀함은 타인과 나 사이에 널널한 거리를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반대의 경우를 만들기도 한다. 일례로 ‘내밀한 대화’나 ‘내밀한 사이’라는 말에서는 나와 타인 간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고 각별한 사이로 만드는 것가 같다. 

 

저자는 빠른 속도로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 앞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던 최소한의 거리가 존중되는 세계에 관해 지속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른바 ‘내향형 인간’이란 사회성이 부족하다거나, 무조건적으로 타인을 피하고 싶어 하는 소심한 부류가 아니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내밀한 감정, 내밀한 시간, 내밀한 장소 등이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만함이 최고 미덕이었던 한국 사회에서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기적인 사람’ ‘타인과 잘 못 어울리는 사람’ ‘유난한 사람’ 등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모두가 고통스러웠던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그간 무시되기 쉬웠던 개인의 시공간이 확보됐다. 공간의 밀도는 낮아졌고 관계의 점도는 떨어졌으며, 홀로 있는 시간이 자연스러운 현실이 됐다. 


집단주의의 관성이 일시적으로 해체되었으며, 개인의 선택이나 행동이 별스러워 보이지 않는 세계가 열렸다. 지난 2년여 동안 코로나로 인해 생긴 물리적 거리두기는 사람 간의 심리적 거리두기로도 향했다. 

 

저자는 그 사이에서 묘하고 은밀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 ‘떳떳하지 못한’ 감정의 실체는 무엇인지 생각했다. 결국 내향인에게 거리두기란 ‘국가가 허락한’ 세상과의 거리이자, 자유로움이었다.

 

결과적으로 내밀함이란 나라는 존재가 타인에게 유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각자가 지닌 예민함만큼 거리를 두고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나아가 좀 더 많은 사람의 내밀한 기쁨과 행복이 지켜질 수 있기를,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이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