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BOOK돋움] 의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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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BOOK돋움] 의자가 말했다

본지가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심신을 회복하기 위해 독서로써 마음을 힐링하는 '책 읽는 힘, BOOK돋움'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일상생활이 멈춘 상황에서 마음의 양식을 얻을 수 있는 독서 생활이 최고의 기회라 여겨집니다. 독서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부모와 자녀 세대가 소통하는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며, 책 읽는 분위기가 잔잔한 물결처럼 번져 코로나 블루가 슬기롭게 극복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 이은진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2.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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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여행은 몸과 마음이 외부로 열리는 시간이지만 생각의 시선을 내부로 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부로 향한 시선은 그 시선의 깊이만큼 나를 철들게 하는데, 때로는 쓰라리기도 한 그 뻐근한 느낌이 좋아서 나는 또 다른 여행을 꿈꾼다.‘


때로는 다시 찾은 그곳에서 담은 새로운 기억의 지층을 더해 사유를 채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가 찾아오면서 예상치 못하게 발견한 사실도 찾는다. 조금 달라진 일상으로 인해 찾은 이야기마저 소중한 요즘이다. 


의자 대신 앉을 곳을 찾는다. 거실 구석의 앉은뱅이 의자, 수해 복구 현장의 노란색 상자, 사막의 모래 위 등 그곳이 어디든 자연스레 자세를 낮추고 몸을 기대게 된다. 자전거와 버스, 지하철, 비행기 등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에서조차 누군가는 커다란 장벽과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배경을 바꿔 찾아가는 건축도시 기행의 재미도 있다. 25년 만에 찾은 빌라 사보아 앞마당에 앉아 문화유산을 지척에 둔 프랑스 아이들의 견학을 지켜보곤 저자만의 사유를 펼쳐간다.


스페인 북부 도시 빌바오의 재생을 함께한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현지인이 된 듯 여유롭게 거닐다 앉으며 소소한 즐거움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현대인에게 필수가 된 제3의 공간에서도 앉음은 계속된다. 미국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는 여러 연구를 통해 행복한 사람들, 행복한 공동체에는 모두 제3의 공간이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24시간 언제든 원하는 것을 쥐고 나올 수 있는 편의점, 이젠 만능 라이프스타일숍이 된 빨래방, 다채로운 활동으로 충만한 서점과 도서관까지 많은 이의 발자취가 남는 만큼 다양한 사연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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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앉다가 보다가, 다시'   김진우 지음, 안그라픽스

 


유모차 통행을 배려한 오사카 가이유칸 수족관에서는 디자인의 가치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 보기도 한다. 더불어 경험한 건축과 도시에 대한 기록을 전한다. 과거에 타지에서 경험한 기억을 더듬으며 시야를 펼쳐본다.

 

방문자를 환영하듯 곳곳이 열린 공간으로 가득한 코펜하겐, 사람과 동물이 사이좋게 살아가는 셰프샤우엔을 거쳐 명동을 중심으로 한 서울의 구도심과 도심 광장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이어나가며 우리 삶 속에 보다 따뜻한 소통과 연대를 떠올려본다.


저자가 경험한 시공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에 상상이 펼쳐지는 건 그의 느긋함에 동행했기 때문이다. 표지에서부터 글 사이사이를 징검다리 건너듯 생동감 있게 채운 일러스트레이터 김승환의 그림도 눈길을 끈다.


톡톡 튀는 색감과 함께 재치가 엿보이는 작가 특유의 그림을 들여다보며 일상에서 마주하는 장면을 즐겨 보기를 말한다. 앉을 수 있는 자리와 공간이 많은 도시, 그 안에 사람들이 모이고 재밌는 일이 생긴다는 저자의 믿음대로 그 속도와 시선에 공감한 자신을 만나게 된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그곳에 앉아 바라본 주변의 이야기를 전한다. 앉은뱅이 바퀴 의자, 노란색 상자, 사막의 모래 위 등 사람들이 앉은 곳은 의자 위만이 아닌 것이다.


‘앉는다’는 일상의 행동을 돕는 소박한 디자인에서 행복의 질을 결정하는 철학을 배우게 된다. 넉넉한 좌석과 와이파이를 제공하고 계절에 따라 온도를 맞춰 주는 대중교통은 과연 편리한지 의문이 든다. 소외된 누군가를 살피는 저자의 세심한 시선이 모아진다.

 

앉아서 바라봐야 비로소 들리는 말이 있다. 앉은 이의 모습부터 앉은 시선에 들어온 일상과 공간, 도시의 모습까지 그곳에 앉아 막연히 지나치고 미처 알아보지 못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디자이너로서 사회 이슈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한층 더 짙게 담긴 것이다.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칼칼하게. 그 시선은 보다 더 많은 보다 더 다양한 사용자를 배려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에 가닿고 도움이 필요한 현장과 관심은 필요한 약자에게 손을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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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 겐고 건축 산책' 미야자와 히로시 지음, 김현정 옮김, 북커스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남긴 결과로 구마 겐고의 건축은 다면성을 지니는 특성이 있다. 애초 ‘건축을 사회에 펼치겠다’는 소신을 토대로 대부분 공공건축물을 짓고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최대한 맞추고자 하는 그의 성향은 이를 더욱 강화시켰다는 평이다.

 

하지만 이같은 다면성 안에서도 변하지 않는 보편성, 다시 말해 구마 겐고만의 스타일은 있는 법이다. 때문에 이 책은 구마 겐고 건축의 다면성과 보편성을 ‘의외성의 건축’, ‘감성의 건축’, ‘가벼움의 건축’, ‘드러나지 않는 건축’의 네 가지 시선을 보여준다.


먼저 가벼움의 건축은 느슨하고 한가로이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든 일상의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힘을 뺀 건축물인 셈이다. 말만 들으면 간단하고 쉬운 듯 보이지만 느슨함을 느슨하게 표현하는 것은 의외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드러나지 않는 건축은 주변과의 적응,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해 외관의 자기주장을 없앤 건축물을 의미한다. 애초 그곳에 있었던 건축처럼 하나의 자연물처럼 자연스럽고 낮게 표현한다.

 

생각지도 못한 독특한 발상으로 구현해낸 방식이 인상적인 건축물이다. 클라이언트의 다양한 요구나 적은 예산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도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할 수 있다.

 

장소와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구마 겐고는 그 지역에서 나는 소재를 활용하고 그 지역의 전통 기법 등을 적용함으로써 그 지역의 고유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장소와 소재들이 품은 건축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다.

 

구마 겐고는 약한 소재로 약한 건축을 지향해 그의 건축은 부드럽다. 한 자리에 미동도 없이 머무르는 네모반듯한 건축물이 아니라, 그 장소에서 생산한 소재를 잘게 나누고 다시 조립해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유기적인 생명체라 할 수 있다. 


커다란 하나의 프레임이 아닌 입자들의 집합체(입자 건축)이기에 기존의 방식을 살짝 비틀어도, 조금은 틈이 있어도, 그것은 여전히 구마 겐고의 건축이라 하겠다. 


일상적이기도 다. 당당하게 서서 자기 존재감을 발휘하는 모더니즘 건축과 달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주변에 침투한다. 자연스러운 건축, 장소와 사람을 연결하는 건축인 셈이다.


이렇게 구마 겐고는 자신만의 명확한 건축 언어를 가졌는데, 이를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시도와 노력이 따랐다. 구마 겐고의 건축은 한 번으로 끝나는 도전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음 도전으로 이어지고 조금씩 진화하는 것이다. 

 

구마 겐고는 그동안 작업한 프로젝트만 1000건 가까이 되는 다작의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그 가운데 극히 일부인 50개 건축물만을 다루고 있다. 추가적으로 언급한 것까지 더하면 모두 69개다. 


그럼에도 기간이나 테마를 한정하지 않고 구마 겐고의 건축 여정을 개관한 책은 드물다. 책 앞부분에 수록된 구마 겐고와의 인터뷰도 지금까지의 변천사를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내용으로 구성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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