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EEKinBOOK] '바닷속 우리의 동족' 고래‥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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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EEKinBOOK] '바닷속 우리의 동족' 고래‥안녕들 하십니까?

고래의 역사 살피며 인간과의 잃어버린 관계성 주목
멸종보다 개체수 감소로 인한 포경 시대의 흔적 여전
고래와 관한 선주민 문화·산업화 이후 이야기도 눈길

  • 이은진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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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데일리] 호주의 퍼스 해변에 떠밀려온 거대한 혹등고래. 좀처럼 보기 힘든 바닷속 고래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소식에 동네 사람들이 몰려온다. 

 

이 현장에 자원봉사로 참여했던 리베카 긱스는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죽어가는 고래의 가뿐 숨소리와 힘이 풀린 동공을 감정에 매몰되지 않은 채 묵묵히 보여준다. 

 

거기엔 현장에 모인 구경꾼들이 왜 자꾸 고래의 사체가 떠밀려오는지를 두고 벌이는 시시콜콜한 대화도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 대화들은 두서없지만 지금 우리가 고래라는 동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낱낱이 드러난다. 

 

그 현장엔 인도적인 죽음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 자그마치 자동차 안테나만 한 굵기의 주삿바늘을 찔러 독극물 안락사를 시도할 것인지 다이너마이트를 매달아 폭사를 시도할 것인지, 어떤 것이 고래의 고통을 가장 줄여주는지 고민하던 찰나에 긱스는 그 ‘자비로움’마저 인간의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더욱이 그 독극물의 여파는 인간의 자비로움을 만들지언정 사체를 먹고사는 또 다른 생물들, 스캐빈저들(구더기, 까마귀, 하이에나 등)에게는 재앙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감상에 빠지기보다는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지식을 그러모은다. 그의 말마따나 심장에 차가운 얼음 조각 하나를 담은 것처럼, 감상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가능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작가적 초연함을 유지한다. 


'검색을 통해 맨 처음 스페인 해안으로 밀려와 죽은 향고래에 대해알게 되었다. 그의 배 속에는 비닐하우스 한 채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스페인 알메리아에서 수경 재배 농부들이 쓰던 것이었다. 방수포, 호스와 밧줄, 화분, 스프레이 통, 합성 포대 자루 조각들이었다. 한때 영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키웠던 제철 아닌 토마토 농사용이었다. 강풍이 불어 하우스를 무너뜨리고는 바다로 몰아낸 것이다. 유럽의 샐러드 볼(유럽 전역에서 소비되는 채소의 50퍼센트가 생산되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라 불리는 이 지역으로 예기치 못한 사나운 돌발적 홍수나 태풍이 몰아치는 빈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고래 배 속에는 그것 말고도 소화할 수 없는 물건이 그득했다. 놀랍게도 편의와 여가를 위해 쓰이는 것이었다. 향고래는 비닐하우스만으로도 부족해 매트리스 조각, 옷걸이 몇 개, 음식 찌꺼기 거름망, 아이스크림 통도 삼켰다. 배 속의 그 내용물들은 예언자나 조난자의 칩거 공간에서 나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고, 고래 배 속에서 살아남았다던 옛이야기 속 인물들을 상기시켜 주었다.'

 

과연 우리는 고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고래가 가는 곳>은 지구상 최대의 생물, 고래에 대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이야기한다. 수천 년 전부터 인간과 이어져 온 역사와 문화, 본래 네 발 달린 포유류 동물에서 유래한 진화적 기원과, 최신 과학계 보고 등 이 시대 우리가 고래에 대해 알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 

 

직접 고래를 보러 다닌 저자의 생생한 르포도 있다. 이 모든 정보를 전달하는 저자의 문장과 태도에는 기후 위기 시대의 글쓰기를 고민하는 생태적 관계론이 깃들어 있다. 

 

 

2010년대 중반 호주 플린더스 대학의 한 조사 결과 연구에 따르면 고래는 대기질에 영향을 끼친다. 깊이 잠수할 수 있어 서식 반경이 심해까지 미치는 향고래의 경우 전 세계 대기질 구성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심해에서 오징어와 크릴을 먹은 고래들의 배설은 영양 ‘펌프’ 구실을 하며 해저 수많은 유기물질의 순환을 돕는다.  그 과정에서 플랑크톤 번성의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플랑크톤들은 전 지구적 규모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한다. 

 

이는 숲이 기후 조절 역할을 하듯 동물도 그럴 수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고래 한 마리는 탄소 흡수에서 1000 그루 이상의 나무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고래의 귀지는 ‘대양의 핵심 표본’으로 불린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나이를 입증하는 말랑말랑한 귀지인데 야채 보관실에 오랫동안 내버려 둔 셀러리같이 모양이다. 생물학자들은 이 귀지로 고래의 나이와 그 고래가 평생 노출됐던 오염, 혹은 육체적 스트레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해양 세계에 관한 기록인 셈이다. 

 

고래의 눈도 알면 알수록 새롭다. 직사광선을 맞은 인간의 동공은 수축하지만 대부분의 고래의 동공은 미소를 짓듯 반원으로 수축하면서 반원의 구석에 동그란 점이 남는다. 각각의 눈에 두 개의 동공이 있는 셈이다. 

 

저자는 생태관광 쌍동선을 타고 눈앞에서 거대한 향고래의 점프를 목격했었다. 잔뜩 겁에 질린 그는 포식자의 시선으로 마주쳤다고 생각했지만 조사를 거듭해 보니 그 동공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을 확률이 컸다. 이를 계기로 동물 세계에서 인간적 자질을 찾고자 했던 자신의 욕망에 대해 저자는 다시금 성찰한다. 

 

책은 이밖에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고래의 다양한 모습을 알려 준다. 크릴 새우를 잡아 먹는 혹등고래의 젖은 핑크빛에 버터 맛이 나며 성게 불모지에서 먹을 것이 없어진 범고래는 털복숭이 팝콘을 먹어 치우듯이 해달을 잡아 먹는다. 고래 낙하라고 불리는 죽은 고래의 몸은 그 자체로 심해의 생태계를 구성한다. 귀중한 ‘해저의 오아시스’와 같다.


호주의 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톰 반 두랜은 생물이 멸종되더라도 그 생물의 존재를 가능하게 했던 문화·생태적 관계는 떠나지 않고 거듭 출몰한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지금은 멸종해 없어진 박쥐의 리본처럼 길쭉한 혀와 함께 진화한 어떤 꽃의 화려한 꽃부리가 있다. ‘혀가 긴 박쥐’가 멸종한 지금 이 꽃부리는 괴이해 보인다. 

 

그러나 꽃마저 멸종되지 않고 계속 번식한다면, 영원히 이 과거의 흔적은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실제로 볼 수 없는 존재와 실질적 소통을 한 흔적이다. 고래 또한 마찬가지다. 포경으로 멸종된 고래 종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개체 감소’라는 개념이 더 중요해졌다. 

 

고래에게는 멸종보다는 개체 감소로 인한, 포경 시대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종의 개체 감소로 그 동물이 속한 생태계, 그들이 양분 삼아 지속하는 환경에 미친 영향에 주목하는 개념이다. 앞서 언급된 대기질의 구성에도 우리가 모르는 결정적인 흔적이 남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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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가는 곳
리베카 긱스 지음, 배동근 옮김, 바다출판사

 

또한 지금은 기후 변화로 고래들의 이주 노선도 바뀌기 시작했다. 캐나다 러미네이션 부족은 먹을 것이 부족해진 고래에게 치누크 연어를 먹이면서 고래를 “바닷속 우리의 동족”이라고 외쳤다.

 

책에는 다양한 선주민들의 문화와 산업화 이후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8세기부터 바이킹족은 고래 뼈를 거래했고 16세기에 본격적인 고래 무역이 시작됐다. 서호주 지역의 야부라라족이 만난 최초의 외부인은 고래잡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화 이후 돛이 아닌 석탄으로 움직이는 빠른 증기선이 된 포경선들은 지구 전체를 항해하는 고래를 쫓아 대륙을 건넜다. 인류가 한 종에게 가한 최대의 학살이었다. 하지만 고대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혹등고래, 긴수염고래, 향고래, 범고래를 먹었는데 토템 신앙의 대상으로서 섬기기도 했다. 

 

그러나 무역이 아닌 생존을 위한 고래잡이를 했던 고대인들은 정해진 사냥 기간을 준수했고 특정 시기의 고래는 사냥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신화적 존재로 여겼다. 고래 샤먼은 언덕 높이 올라서 고래 대신 고통스러워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우리가 잃어버린 고래와의 관계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지 자문한다.


책은 우리가 자연을 다루는 방식을 꼬집는다. 하이 콘트라스트 필터의 카메라로 총천연색 자연 사진을 SNS에 올리며 지오태그(위치 정보 해시태그)를 붙이는 생태 관광 인증샷들, 그리고 눈이 큰 털복숭이 동물들 사진의 범람, 와이파이 통신망이 오지와 고산 지대를 막론하고 촘촘히 깔린 현실을 바라본다. 

 

'바깥세상에서는 카메라폰을 끼고서 산으로 바다로 경관이 빼어난 곳으로, 국립 공원으로 거대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쇄도하면서 부작용이 따르고 있다. 2016년 한 해에만 미국의 공원에 총 3억 3090만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가디언 기자에 따르면 그 수치는 미국 전체 인구와 맞먹는다고 한다. 호주에서도 생태 관광은 증가 추세이다. 2014~2016년 사이에 뉴사우스웨일스주는 관광객이 30퍼센트 늘었다. 관광객의 증가로 교통 체증도 생겼고 야외에서 사소한 다툼도 늘어났다. 숲의 주차장에서 주먹다짐도 벌어졌다. 어떤 고래 투어 회사는 다른 회사의 배를 앞지르기 위해 더 빠른 배를 구입했다. 더 짧은 시간에 고래를 볼 가능성이 더 커져서 더 많은 수익을 거두었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1500만 명이 고래 투어를 예약한다. 경관이 빼어난 곳의 청소부들은 매일 분뇨 처리를 하느라 애를 먹는다. 미국에서는 사막에 갑자기 야생화가 만발하는 소위 '슈퍼 블룸' 현상이 발생했을 때, 어설픈 삼류 유명인사들이 사진을 찍겠답시고 꽃밭에 널브러져 포즈를 취하며 난장판을 만드는 일이 생겼는가 하면, 야생을 어지럽히고 그 정적을 깨 버리는 아마추어 드론 비행사들에게 수백 장의 법원 소환장이 발부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고독을 찾아 야생을 가지 않는다. 온라인 소통을 위해 자연으로 가는 것이다. 여가 장소를 찾아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능력을 입증하는 열정적인 삶의 방식이 ‘오지로 가는’ 목적이 된 것이다. 

 

저자는 에드워드 윌슨의 생명 사랑 개념을 소개한다. 인간에게는 다른 생명체와 환경을 생각하는 선천적 애착이 있다는 다소 관대한 믿음, 개념이다. 다만 저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진 아기 돌고래 셀피 소동을 소개하며 이 사랑의 개념을 좀 더 깊이 파고든다. 

 

이 소동은 해변에 떠밀려온 귀여운 아기 돌고래와 사진을 찍기 위해 군중이 몰려들었던 와중에 결국 돌고래가 죽어 버린 사건인데 이 죽음에서 보듯 우리는 윌슨의 말대로 생명 사랑을 타고 났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랑이 상대를 질식시키지 않게 자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저자는 ‘귀여운 돌고래’에 대해 열광하는 ‘비정상적인 이끌림’이 열정을 동반하기 때문에 애정의 대상을 망쳐 버린다고 일침한다. 우리가 아끼는 동물과의 관계에서 야만적 성급함에 잘 사로잡히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래 또한 그 크기에 비례해 ‘카리스마’라는 위계를 부여되곤 한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직립’하는 짐승과 눈이 큰 포유류에 강한 애착을 느낀다고 한다. 털이 있거나 배가 토실토실한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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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터넷의 구석진 곳에는 환경 오염 때문에 바다 괴수가 희귀해졌다고 주장하는 몇몇 비주류 박물학자와 신비 동물학자들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이 동물들이 환경 오염 때문에, 물고기 남획으로 먹이를 빼앗겨서 그리고 사방에 흩뿌려진 해양 플라스틱을 먹다가 멸종되었다고 말한다. 존재의 증거를 입증하지도 못한 채로 멸종이 되었다. 그게 아니면, 아마도 소리에 민감한 동물이어서, 해군의 수중 음향 탐지기, 트롤선과 디젤 동력선의 소음을 벗어나 바닷속 해구로 피신해서 거기서 서성대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 주장의 심층에는 본 적도, 확인된 적도, 기록된 적도 없는 생물체를 보호하기 위해 대안을 마련해 보자는, 그리고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짐작은 되는 생명체에게도 동정심을 발휘해 보자는 간절함이 있다. 신비감이 점점 희귀해지는 세상에서, 인간의 활동을 제약하는 한이 있더라도 신비 동물 보호 구역을 만들어 보자고 권유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저자는 고래의 몸에 사는 ‘고래 이’를 소개한다. 고래 이는 갑각류에 속하고 털 많은 육지 포유류에 사는 이보다는 새우에 더 가깝다. 이 한 마리에게 고래 한 마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먹이다. 

 

고래의 한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하면 그 고래와 더부살이하는 고래 이도 같은 처지가 된다.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다. 내가 ‘나’라고 인식하는 ‘자기 중심성’은 사실상 ‘동물원 중심성’에 가깝다. 

 

인간 또한 고래처럼 다른 종의 동물원인 것이다. 기생충과 미세 오염 물질, 미생물로 구성된 내면의 생명이다. 일종의 공동체적 일치의 상태로 살아간다. 이처럼 우리는 인간 행위의 간접적 여파에까지 우리의 상상이 미치지 못할 때, 다른 동물들의 삶을 위험에 빠뜨린다. 

 

세상에는 아무도 본 적 없는 고래가 있다. 실제로 부채이빨고래의 존재는 지난 140년 동안 단 한 번 보고되었다. 해저의 오아시스로 은유되는 죽은 고래의 몸은 심해에서 풍요로운 생태계가 된다. 그리고 숲보다 또한 고래가 보는 바다는 푸르지 않으며, 빙하가 깨지는 소리에 영향을 받는 고래도 있다. 

 

포식자의 시선이라고 느껴지는 고래의 동공은 사실 어딜 보는지 알 수 없다. 이처럼 우리는 고래에 대해 모르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오직 고래만이 알고 있는 자연의 진실이 있다. 

 

저자는 최신 과학 연구가 밝혀낸 새로운 고래 이야기를 수집하고 인간과 고래가 함께해 온 역사와 문화를 쫓는다. 수천 년 전 암각화에 고래를 새겼던 고대인의 마음도 들여다보며 지금 이 시대 고래와 우리의 관계를 반추한다. 긱스가 구현한 이 공생의 역사와 과학적 진실은 우리의 미래를 가늠케 해준다. 

 

이 지적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자문할 수 있다. 산업화 이후 온 지구를 항해하는 고래를 잡아 가두고, 기름을 짜내고, 수염을 뽑고, 그 고기를 먹으며 고래를 이해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우리’는 지금 고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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