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냇가에서] 우체통이 늘 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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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냇가에서] 우체통이 늘 짜다

  • 이은진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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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에 우체통이 있다. 오른손 검지로 편지를 뜯어 열고, 얼른 본다. 우체통에 넣는다. 왼손이 붉어진다. 손목에 매달린 태양이 심장 가까이 간다. 열뜨게 한다. 사랑이 장거리를 달린다. 이별이 심장을 단련시킨다. 거리에, 종아리 통증에, 운동화 끈에, 잘게 부서진 시간이 묻어 있다. 오른손 검지가 편지를 쓴다. 지운다. 이모티콘을 고른다. 지운다. 우체통이 달콤한 단어를 너무 많이 먹는다. 플라타너스 잎이 뚝뚝. 우체통 옆에서 얼룩진 손을 씻는다. 지나치게 빨라. 열망이 달아오르려면 밤이 거리를 내놓아야 할 거야. 오른손 검지가 다시 편지를 뜯는다. 단풍이 들지 않는다. 노을이 아직 왼손에 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도착한 적 없다. 슬픔이 증발해 우체통 안에서 가루가 되었다. 우체통이 늘 짜다.

 

-신동호 시집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창비) 우체통이 늘 짜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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