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BOOK돋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작지만 대단한'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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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BOOK돋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작지만 대단한' 존재들

  • 이은진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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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데일리] 주위를 돌아볼 여유 없이 목적지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바삐 걷는 것이 일상인 시대. 어쩌다 마주친 길 위의 고양이에게는 쉽게 반가움의 인사를 건네지만, 땅 위의 지렁이나 곤충을 보고서는 화들짝 놀라며 인상을 찌푸리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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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자는 우리 주변에 분명 존재하지만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작은 생명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이름을 궁금해하고, 다정하게 안부를 묻는다.


작고 꿈틀거리는 것들이 때로는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살아 있다는 동질감 때문인지 저자는 미물들의 고군분투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연약하지만 강인하고, 답답해 보이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들을 말이다. 


<미물일기>(진고로호 지음, 어크로스)는 작고 대단한 생명들을 마주친 일상의 순간들을 담고 있지만, 단순한 미물 관찰기가 아니다. 애벌레가 나방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살아 있는 것이 변하기 위해서는 건너뛸 수 없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한 개인의 자기 고백적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생존을 위해 집중하며 존재 자체로서 역할을 다하는 미물들에게 느끼는 존경의 마음과, 바퀴벌레는 죽이지만 파리는 죽이지 않는 모순 속에서 드는 고민을 진솔히 풀어놓는다. 


모든 글에는 저자의 섬세한 관찰력으로 포착해낸, 미물들의 특징이 돋보이는 사랑스러운 그림들이 함께 담겨 있다.


오랜 고민 끝에 공무원이란 안정된 직장을 그만둔 저자는 작가로서의 자립을 꿈꿨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은 성공과 실패에 부쩍 예민해진 뾰족한 마음으로 나타났다. 방 안에 웅크리고 이불 속으로 숨어들고 싶은 나날, 그때마다 저자는 자신의 문제에 갇혀 있기보다 밖으로 나가 흙길을 걷는 것을 선택했다. 


“일단 길을 나서면 흙 위에서는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풍경은 오늘과 다른 내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과 위로로 다가왔다. 

 

저자는 말한다. 나를 괴롭게 하는 문제들로 머릿속이 가득할 때면, 자연과 연결될 기회를 찾으라고. 자연 속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나 자신을 느낄 때 “나는 점점 작아지고 나를 괴롭히는 것들도 같이 작아졌다”고 이야기한다.


어느 계절에는 풀은 모두 꽃을 피워내지 못하고, 작은 생명들은 모두 성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에서는 많은 수고가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그들은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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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존재한 것만으로도 제 삶의 몫을 다한, 작지만 실로 대단한 생명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한번은 산책 중에 흙 밖으로 나온 지렁이를 맨손으로 집어 구해주는데, 곁에 있던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말을 건넸다. 


지렁이를 집다가 누군가에게 들켜 이상하다는 눈총을 받은 적이 있었던 저자는 순간 긴장했다. 하지만 몸이 좋지 않아 오랜만에 산책을 나왔다는 할머니는 저자에게 대단한 사람이라며 순수한 경탄을 나타냈다. 


나이가 들어도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을 간직하는 노인, 느리고 곧잘 멈추더라도 제 할 일을 끝까지 해내는 지렁이를 보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단한’ 존재들에게 오늘도 진심 어린 응원을 건넨다.


저자가 미물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살아 있는 생명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의 미소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우리 주변에는 미물에게 마음을 쓰는 이들이 존재한다. 


길에 떨어진 이미 죽은 나비를 행인들의 발에 밟히지 않게 옮겨주는 사람, 비둘기를 날리지 않으려고 몇 발짝을 돌아가는 사람. 저자가 그런 모습들을 발견하는 순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은 생명에게도 친절한 사람이라면 결국 타인에게도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히 작은 생명을 돌보는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생명의 어깨에 얹힌 짐을 덜어주려는 마음이 곧 나의 짐을 더는 일이며 ‘살아 있다’는 것의 존귀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생명 중 작지 않은 것이 있을까. 이 땅 위에 존재하는 생명들을 오로지 숫자로만 치환한다면, 인간 역시 미물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우리는 쉽게 그 위치를 망각한다. 

 

“자신은 미물이 아닌 줄 아는 한 미물의 일기”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는 25편의 글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문제로 가득 차 있던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더 자세하고 다정하게 바라보는 일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이 책과 함께라면 예전에는 무서워하던 곤충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거나, 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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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단단한 몸, 물고기의 지느러미, 새의 깃털과 날개, 인간의 손발과 커다란 뇌는 수십억 년 동안 이어진 진화의 결과물이다. 자연과 생명은 탁월한 발명가라기보다 수십억 년에 걸쳐 베끼고 훔치고 변형해 온 뻔뻔한 모방꾼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고생물학자인 닐 슈빈은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부키 펴냄)에서 우여곡절과 시행착오, 표절과 도용으로 가득한 진화의 세계로 안내한다. 


발 달린 물고기와 깃털 달린 공룡 화석, 바이러스 덕분에 생물이 더 똑똑해진 이유, 이기적이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점핑 유전자, 크리스퍼-카스(유전자 가위) 기술의 탄생 배경 등 흥미진진하고 매혹적인 에피소드들을 통해 40억 년의 진화사와 200년의 진화 연구사, 그리고 최근 20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게놈 생물학의 최신 성과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덕분에 독자들은 진화의 경이로움과 생명의 다양성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돕는다.


하지만 화석만큼 강력한 새로운 도구와 맞닥뜨린 것도 대학원생 시절이었다. 당시 동물의 몸을 만드는 DNA가 발견되고 파리의 머리, 날개, 더듬이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밝혀지는 등 게놈 연구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동안 화석 사냥꾼이 도맡아 온 ‘자연은 어떻게 발명해 왔는가’라는 질문에 유전자 연구가 보다 명확한 답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무엇보다 그는 과학자도 진화하지 않으면 결국 멸종되어 화석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석과 유전자라는 양손의 도구를 활용해 진화사 연구를 계속했다. 그 결과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의 역사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 표절과 도용으로 가득했음을 알게 됐다. 다른 동물과 차별되는 인간만의 대표적인 형질은 바로 큰 뇌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뇌가 어떻게 이렇게 커질 수 있었을까. 캘리포니아의 한 연구 팀이 인간과 히말라야원숭이의 뇌 조직을 비교한 결과 인간에게만 있는 ‘NOTCH2NL’ 유전자를 발견했는데 이 유전자는 뇌 조직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유전자는 ‘NOTCH’ 유전자의 사본임이 밝혀졌다. 즉, ‘NOTCH’ 유전자가 끊임없이 복사되고 중복되는 과정에서 변이가 일어나 하나둘 새로운 기능을 얻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NOTCH2NL’ 유전자인 것이다. 

 

결국 인간의 뇌가 커질 수 있었던 이유는 유전자가 새로 만들어지기보다 원본 ‘NOTCH’ 유전자를 베끼고 베끼고 또 베낀 덕분이다.


사실 동물의 몸과 유전자에는 이런 사본이 가득하다. 갈비뼈, 척추뼈, 팔다리뼈 등 인간을 비롯해 많은 동물의 골격은 전반적인 설계가 비슷하다. 


이는 여러 동물의 각기 다른 사지 골격이 태고의 골격 배열을 베끼고 변주해 각각 생겨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각, 후각, 호흡, 단백질 생성 등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들도 모두 복제된 것들이다.


나아가 인간의 전체 게놈 중 3분의 2 이상이 이렇게 복제된 사본이다. 이 정도면 뼈든 기관이든 유전자든 베끼고 복사할 수 있다면 굳이 새로 만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두고 저자는 “자연이 작곡가였다면 역대 최고의 저작권 위반자로 등극할 것”이라고 말한다.


돌연변이는 유전자가 복사되고 중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실수이자 시행착오다. 그런데 진화라는 엔진에는 변이라는 연료가 필요하다. 연료가 많을수록 엔진은 더 빠르게, 더 강력하게 움직일 수 있다. 자연은 이러한 시행착오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새로운 발명의 밑천으로 삼는다.


1940년대 활동했던 독일의 과학자 리처드 골트슈미트는 “최초의 새는 파충류의 알에서 부화했다”고 말할 정도로, 진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의 변혁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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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명사에서 이 ‘한 번의 변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수백 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작은 변이가 일어날 확률도 비교적 낮은데 하물며 게놈 수백 군데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1900년대 초, 과학계에서 여성 과학자의 위상은 매우 열악했다. 미국의 과학자 바버라 매클린톡은 대학교에서 유전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여성에게 허용된 원예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유전학 연구의 이상적인 재료 중 하나인 옥수수를 연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옥수수알의 서로 다른 색깔들을 조사하다가 게놈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는 점핑 유전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유전자는 아주 이기적이다. 오직 자기 사본을 만드는 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 유용한 돌연변이를 게놈 곳곳으로 뛰어다니며 실어 나른다. 점핑 유전자의 이기적인 성질 때문에 게놈 수백 군데에서 변이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DNA는 우리 조상에게 물려받거나 그저 복제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때로 바이러스가 침입했다가 우리 게놈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이때 게놈과 바이러스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전쟁은 기억과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는 놀라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


유타대학교의 과학자 제이슨 셰퍼드는 우리 뇌에서 기억과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아크 유전자의 단백질을 분석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크 단백질이 에이즈와 같은 바이러스 단백질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이러스는 숙주를 감염시켜 자신의 사본을 무한히 만들어 증식해 나간다. 그런데 어쩌다가 감염 능력을 잃고 우리 게놈의 일부가 되어 기억 향상이라는 역할을 맡게 됐을까.


과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약 3억 7500만 년 전, 모든 육지 생물의 공통 조상이 고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이 바이러스는 숙주의 게놈 안에서 아크 단백질의 한 버전을 만들었다. 


하지만 게놈은 이 바이러스를 가만 두고 보지 않았고 곧 둘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게놈에게 패한 바이러스는 무력화된 후 그렇게 게놈의 일부가 된 것이다. 

 

사실 이 외에도 우리 게놈에는 과거에 감염되었던 바이러스들의 흔적이 무수히 많은데, 우리 게놈의 약 8퍼센트가 불활성화된 바이러스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들 중 일부는 여전히 기능을 유지하며 숙주의 활동을 돕고 있다


함부로 침입한 바이러스를 자신의 일부로 삼은 게놈처럼 세포도 병합하고 조립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1960년대, 과학자 린 마굴리스는 동식물 세포와 세포소기관을 연구하고 있었다. 


세포소기관은 세포의 핵 주위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동물 세포의 미토콘드리아, 식물 세포의 엽록체가 대표적인데 이들은 세포에 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마굴리스가 핵과 세포소기관의 게놈을 비교한 결과 둘은 유전적으로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유전적으로 ‘남남’이나 마찬가지인 세포와 세포소기관이 어떻게 한 몸이 됐을까.


마굴리스는 후속 연구를 통해 과감한 가설을 제기했다. 아주 오래전, 원래 자유 생활을 하던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가 다른 세포에 병합되어 결국 그 세포를 위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꾼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합병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이디어는 얼토당토않다며 학계의 비웃음을 샀고, 15개의 학술지로부터 발표를 거절당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1980년대에 들어 더 빠른 DNA 염기 서열 분석 기법이 개발되자 세포소기관의 유전적 역사가 더 상세하게 밝혀졌다. 그 결과 마굴리스의 가설이 사실로 증명됐다.


이처럼 서로 다른 개체들이 합쳐지고 조립되어 더 크고 복잡한 개체를 이루는 방법은 진화의 강력한 수단 중 하나일 뿐 아니라 몸의 발명이라는 수수께끼를 풀 열쇠가 됐다.


1960년대, 예일대학교의 과학자 존 오스트롬은 이족 보행 공룡과 조류의 여러 형질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속이 비어 가볍지만 튼튼한 뼈, 날개 돋친 팔, 경첩 같은 관절, 강한 근육, 빠른 성장 속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공룡은 충분히 새의 조상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주장은 공룡에게 깃털이 없다는 이유로 학계에서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당시에는 하늘을 날기 위해 깃털이 필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7년 중국에서 깃털로 뒤덮인 공룡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그 화석은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았던 덕분에 깃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날지 못하는 공룡에게서 깃털의 존재가 확인되자 그 용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과학자들은 그 깃털이 이성에게 과시하기 위한 장식용이나 체온 보호를 위한 단열재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봤다. 


어쨌든 그 깃털은 하늘을 날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었고, 오스트롬은 30여 년 만에 자신의 주장이 옳았음을 인정받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깃털은 동물이 하늘을 날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날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본격적으로 비행이 시작되면서 그 용도가 변경된 것이다. 폐와 팔다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먼 조상이었던 원시 물고기는 물 밖으로 나오기 전부터 사지로 변할 뼈를 가지고 있었고, 이미 폐를 가지고 있어서 공기 호흡을 병행했다. 이처럼 자연의 수많은 발명이 용도 변경(기능의 변화)과 재활용을 통해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