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어서 만들다 보니, 어느새 인생을 채웠다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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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서 만들다 보니, 어느새 인생을 채웠다 [새로 나온 책]

  • 이은진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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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재밌어서 만들다 보니 

한주희 지음, 미디어창비 펴냄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하면 경쟁 구도에 갇히고 만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있을 수밖에 없다. 경쟁은 끝이 없어서 만족하기도 쉽지 않다. 비교를 시작하면 항상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게 되고, 결국 충분히 잘하고 있음에도 늘 부족한 느낌이 따라붙는다.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다른 나만의 가치를 갖고 있다면 어딘가에는 필요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많아지지 않을까. 그게 과연 무엇일지는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이 찾을 수 있다.'

 

‘봉주르’라는 간단한 인사말조차 하지 못했던 유학생에서 건축학교 졸업과 동시에 파리의 유명 건축회사에 입사한 건축가, 정규 의상 교육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했지만 퇴근 후 밤낮으로 미싱을 돌리며 2019년 SS20 파리 패션위크에 참여한 의상 디자이너, 그리고 모듈형 지갑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디자인 브랜드를 론칭한 사업가가 되기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 600만 원을 들고 떠난 프랑스에서 어렵게 얻은 건축가라는 화려한 명함을 던져버리고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의상 디자인에 뛰어든 저자 한주희의 이력에 가장 먼저 놀라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무일푼 유학생의 화려한 성공담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우리 주변의 평범한 누군가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낸 과정을 담은 성장기에 가깝다. 


“도전은 여유 있는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 여기며 피하기에 급급했던 저자가 마음속에 숨어 있던 강렬한 열정을 되살리는 과정을 따라 읽다 보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 잊고 살았던 꿈과 열정이 되살아난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싸우며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도전해온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응원으로 다가갈 것이다.


‘파리 건축가, 의상 디자이너, 디자인 브랜드 사업가.’ 저자를 수식하는 말들은 이처럼 다채롭지만, 과거의 그는 ‘남들 따라’ 선택을 하는 게 가장 편하고, 특별한 생각이나 고민 없이 주어진 하루를 관성처럼 사는 게 익숙했던 사람이었다. 


뚜렷한 꿈과 취미도, 가고 싶은 대학과 학과도 없다 보니 어머니의 권유로 건축학과를 선택한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될 수 있는 한 남들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며 무색무취의 삶을 살던 저자의 단조로운 인생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면서 입체적으로 바뀌었다.


‘파리의 건축가, 디자이너가 되다’에서는 프랑스에서 만난 색다른 경험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깨닫고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된 여정을 담았다. 프랑스 길거리에서 마주하는 프랑스어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어와 다른 어순에 “프랑스어 듣기책에서 들을 수 있는 정확한 발음과 편한 목소리 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단순한 일은 물론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일까지 프랑스어 실력은 생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그토록 막막했던 프랑스어는 직접 옷을 만들면서 의외의 전환기를 맞이하며“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한다. 장소와 직급, 국적과 나이에 상관없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신기한 의상에 말을 걸어오고 자연스레 옷을 주제로 대화하는 일이 늘어났다. 


옷감을 사기 위해 들른 상점에서 일하는 판매원, 2019년 SS20 파리 패션위크에서 알게 된 의상 업계 사람들, 그리고 제대로 말을 섞어본 적 없던 건축회사 동료들까지 의상으로 대화의 물꼬를 틀고 나자 언어의 장벽은 눈 녹듯 사라졌다.


좋아하는 게 많아질수록 자신을 표현할 말 또한 많아진 저자는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정체성과 취향을 발견하며 스스로의 세계를 넓혀나간다. 


그런 저자가 건축회사에 지원하기 위해 이력서를 재정비하며 내린 결론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력서를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다른 나만의 가치”를 보여주는 게 경쟁력이라는 생각에 곧장 실행에 옮겼다.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셀프 사진을 찍어 건축회사 이력서에 의상 포트폴리오를 함께 첨부했고, 이는 곧 ‘유명 건축회사 합격’이라는 성취가 되었다.


건축가로 일하며 수많은 주거도면을 그렸지만, “건축가로서 설계했던 공간은 현실 속 월급쟁이가 누릴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 공간은 제약이 되지 않았다. 처음으로 구한 집은 지붕 밑 자투리 장소, 일명 ‘하녀 방’이라 불리는 작은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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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의 유일한 지붕창을 통해 보았던 하늘은 어디에서든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는 영감으로 이어졌고, “사막 한가운데 놓인 원형 인공 오아시스”라는 아이디어로 스페인 IMOA 건축 공모전 대상 수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회사와 작업실을 오가며 건축도면과 의상 패턴에 선을 그려나가던 저자는 한 가지 명쾌한 사실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잘해온 건축만큼 의상을 좋아한다는 것. 남들이 내린 결정을 따라 수동적으로 변해가던 직장인의 삶에 회의를 느끼던 저자는 ‘스스로 내린 결정에 책임’을 지며 ‘실패 또한 온전히 감당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건축회사를 그만둔다. 하루하루 밀리미터 단위의 소소한 성장을 쌓아오던 그는 어느덧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성장합니다’에서는 평범한 일상에서 떠오른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저자의 독특한 관점과 실패에서 얻은 깨달음을 보여준다. 재밌는 걸 만들어나갈수록 취향 또한 선명해졌다. 


의상을 제작하며 패턴과 색감에도 고스란히 취향이 반영되었고, 비닐로 옷을 만들면 몸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소리가 나고 신체의 일부를 투명한 부분이 흥미롭게 보이게 한다는 점을 발견하며 “이게 나의 취향이고, 나의 이런 취향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난다.


체형에 따라 같은 가방도 다르게 보인다는 점을 발견하자 “새로운 놀잇감을 찾는 마음으로” ‘겁 없이’ 뛰어들었던 가방 제작. 구체적인 고민 없이 시작된 사소한 행동은 이후 동료와 동업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어 삶에 큰 변화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길을 걷다 동료와 즉흥적으로 서로의 소매를 지퍼로 분리해 바꿔다는 경험은 어른이 되어 잊고 지냈던 순수한 즐거움을 선물한다. 건축과 의상이라는 너무도 다른 두 분야를 병행하며 경험한 시너지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특별함을 찾는 사고방식으로 뻗어나간다.


해외여행을 할 때 두 나라의 화폐가 섞였던 경험은 동전과 카드, 지폐 부분이 분리되어 원하는 형태로 조합할 수 있는 지갑이라는 아이디어로 발전, 디자인 브랜드 ‘디렉(DERECC)’을 탄생시킨다. 


지갑 프로젝트의 중추적인 요소였던 스냅단추를 찾기 위해 직접 발로 뛰며 동대문과 신설동 가죽거리를 오갔던 경험, ‘설계나 디자인보다 훨씬 어려웠던’ 브랜드명을 짓는 과정을 거치며 “창작이자 사용자”로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일이 ‘또 하고 싶은 재밌는 경험’으로 다가온다.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재밌어 보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만들어온 저자는 마침내 ‘어떤 상황이나 분야든 완주하는 법’을 터득한다.


성공과 실패라는 단추를 성실하게 채워나가며 누구도 아닌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낸 저자의 이야기는 도전해보는 경험 자체로 채워진 인생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를 전한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두려움과 망설임이 앞서는 이들이라면, 성공과 실패에 대한 부담은 잠시 내려놓고 떠오르는 생각을 일단 실행해보면 어떨까. 


이 책은 매일매일 ‘재밌어서 만들다 보니’ 어느새 인생이라는 큰 스케일을 자신만의 색과 취향으로 채우게 된 저자처럼, 도전하는 길 위에서 누구도 정의 내리지 못한 자신만의 재미와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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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  

폴 크루그먼 지음, 김진원 옮김, 부키 펴냄

 

'보수주의의 경제 신조는 나머지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게끔 기득권층에 유인 효과를 줄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우파에 따르면, 우리는 부유층이 열심히 일하게끔 유인하기 위해 부유층에 세금을 인하하고 기업이 미국에 투자하게끔 유인하기 위해 기업에 세금을 인하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보수주의의 경제 신조는 실제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감세 정책은 호황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반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증세 정책은 불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캔자스주의 감세 정책은 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했다. 반면 캘리포니아주의 증세 정책은 성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 책은 지난 20여 년간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가 경험했던 거의 모든 정책 실험과 이를 둘러싼 사회경제 담론 논쟁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예리한 시선으로 비평하고 해부한 책이다.


지구촌의 통합도가 한층 높아진 21세기 들어서 세계의 각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비슷한 현안과 당면과제에 맞닥뜨렸다. 크게 보아 성장과 분배, 감세와 증세, 국가부채의 증대와 감소, 사회 복지의 확대와 축소, 기후 위기를 비롯한 환경 문제, 원전이냐 탈원전이냐, 일자리 창출과 실업 문제, 이민 정책, 자유무역과 보호주의, 경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방임 등이 그것이다.


나라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다기한 정책이 운용됐다. 새 밀레니엄 첫 20여 년간 시행된 여러 정책의 성패는 이제 상당 부분 객관적인 검증이 가능한 시점이기도 하다. 


‘경제학자들의 경제학자’라고 불리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이 이 작업을 수행했다. 21세기 20년간의 전세계 주요 정책 논쟁의 총집합인 이 책은 공공 정책과 사회 변화에 관심이 큰 독자들에게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그런데 책 제목이 심상치 않다. 좀비라니. 사망한 존재가 꾸물꾸물 살아나 어기적거리고 다니며 사람들을 공격하는 그 좀비? 맞다! 정책은 시간이 지나면 객관적으로 성패가 검증되기 마련이다. 


실패한 정책은 역사 무대에서 사라져야 마땅할 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어떤 정책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아이디어는 처절한 실패 후에도 보란 듯이 다시 귀환하고는 한다. 저자는 이를 좀비 아이디어, 좀비 정책이라고 부른다.


좀비 아이디어는 반증(反證)에 의해 이미 쇠멸되었어야 하는데 여전히 비척비척 걸어 다니며 사람들의 뇌를 파먹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심각한 “기술 격차”에 시달리고 있다는 믿음은 중요 인사들이 사실임에 틀림없다고 여기는 여러 신조의 하나로, 이 신조는 이 인사들이 아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기술 격차 신조는 증거를 제시하면 죽어야 하지만 죽기를 거부하는 사상 곧 좀비 사상의 가장 적절한 사례다. (470쪽)


실패가 검증되고, 틀렸다는 증거가 제시되어도 죽기를 거부하는 좀비 정책과 사상을 밝혀내어 이들을 무덤 속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주요한 목적이다. 자연히 이 책에는 여러 좀비가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부자 감세 좀비’이다.


가장 끈질긴 좀비는, 부유층에 세금을 물리는 일이 경제 전반에 막대하게 해악을 입히며 따라서 고소득층에 매기는 세금을 낮추면 경이로운 경제 성장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신조는 현실에서 늘 실패를 거듭해 왔지만 어찌 된 셈인지 공화당 안에서는 어느 때보다 위세를 떨치고 있다. (37쪽)


감세 좀비 즉, 부유층에 대한 감세 정책은 역사가 길다. 1980년대 초반 레이건의 감세부터, 2000년대 초 조지 W 부시 정부의 감세 정책. 트럼프 정부의 2017년 감세까지 계속 공화당의 주요 집권 정책으로 채택됐다. 


감세의 논거인 대기업과 부유층의 세금을 줄이면 투자와 경제활동이 증가하고 그 과실이 차츰 소득 하위층까지 퍼져나간다는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 Down) 이론’은 신자유주의 정부들의 굳건한 신앙이기도 했다. 


그러나 역대 감세 정책은 한결같이 미국 경제에 성장을 가져오지 못했고 재정을 악화하거나 소득 불평등을 확대시켰다. 소득 상위층의 유동성 증가는 투자 증진보다는 머니 게임과 금융 투기의 확대를 야기하여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불러오는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국 공화당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보수 정당은 감세를 성장을 위한 전가의 보도라도 되는 양 애지중지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좀비는 최강 좀비인 ‘부자 감세 좀비’ 외에도 매우 다양하다. 과학이 밝혀낸 결과도 무시하는 ‘기후 변화 부정 좀비’, “미래 세대에게서 그만 훔쳐라” 같은 구호를 들고 나와 자못 진지하고 점잖은 척하지만 사실상 저소득층 지원을 줄이고 실업률을 방치하면서 경기 회복에는 아무 순기능을 하지 못한 ‘긴축 좀비’, 경제 불평등을 부정하는 ‘불평등은 없다’ 좀비, 불평등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4차산업혁명과 기술 발전 때문에 발생하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기술격차 좀비’ 등등.


좀비는 경제 영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냉전이 끝났어도 여전히 건재한 ‘이크 사회주의 좀비’, 정책의 본질보다는 소소한 이미지 정치의 보도량을 늘리고 기계적 중립성에 치우쳐 독자의 판단을 흐리는 언론 행태도 미국 정치를 내리막길로 들어서게 한 좀비 아이디어의 일환으로 저자는 규정한다.


폴 크루그먼은 가장 논쟁적인 지식인이기도 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 수석 경제논설위원 마틴 울프는 크루그먼을 가리켜 "미국에서 가장 미움받고, 가장 존경받는 칼럼니스트”라고 평했다. 사회 이슈에 관한 소신 천명, 정부 정책의 공과에 대한 비평에 몸을 사리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은 그의 단호하고 날카로운 비평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


그런데 트럼프의 외교 정책은 이제껏 공화당이 따르던 관행만이 아니라 미국이 옹호하던 모든 가치와도 결별했다. (중략) 따라서 한 국가의 주요 업무가 국익에 의해서도 아니고 국내 주요 이익 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서도 아닌, 금전적 이익 그리고/또는 백악관에 거주하는 한 남성의 아욕(我慾)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미국이 정말 대단한 국가가 아니면 뭔가? 


좀비 정책과 아이디어에 대한 그의 단호하고 매서운 공격은 통렬하면서도 지적 품격을 잃지 않는다.


국가 부채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진 빚돈인 만큼 이로 인해 경제가 곧바로 더 가난해지지 않는다(그리고 그 부채를 갚는다고 해서 더 부유해지지도 않는다). 사실 부채는 금융 안정성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 하지만 부채를 줄이려는 노력으로 경제가 디플레이션을 겪고 불황의 나락에 빠진다면 상황은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여러 사건이 떠오른다. 전반적으로 실패한 디레버리지 정책과 최근 유럽에서 부상하는 정치 위기가 서로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지출을 대폭 늘리면 곧 국가를 흥청망청하게 운영하면 경제 위기가 닥친다는 견해를 철저하게 고수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독일 총리가 주장하듯, 절약만이 최선이었다. 유럽은, 메르켈이 단언하듯, 검소하기로 유명한 저 스와비아(Swabia)[슈바벤] 주부를 본받아야 했다.


이런 처방전은 슬로모션처럼 닥치는 재앙에나 잘 들었다. 유럽 채무국은 정말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하지만 사실상 몰아붙이다시피한 긴축은 잔인하리만치 혹독했다. 한편, 독일과 여러 주요 경제 국가는 지출을 늘려 주변국에서 실시한 긴축 재정을 상쇄해야 했는데도 역시 지출을 줄이려 애썼다. 


그 결과, 부채 비율을 줄이는 일이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실질 성장이 거북이걸음처럼 느려졌고, 인플레이션이 거의 0으로 떨어졌으며,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은 국가에서는 전면적인 인플레이션이 두드러졌다. 


저자는 단순히 좀비 정책을 감별하고 사망 선고를 내리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그릇된 정책이 계속 되살아나는 데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과도한 정치화, 정략적 당파주의는 객관과 과학이 가리키는 증거를 무시하고 합리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1차 원인이다. 그런데 보다 근본을 파고 들어가면 이러한 현실의 배후에는 부정직한 의도, 나쁜 신념이 똬리를 틀고 있다.


짐작하고 있겠지만, 나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솔직히 독자에게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릇된 믿음에 기반을 둔 주장과 맞닥뜨렸을 때 그들 주장이 틀렸거니와 사실 그것이 그릇된 믿음에서 비롯하는 것임을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다른 예를 들자면, 연준이 채권을 매입할 경우 인플레이션이 널뛰듯 뛴다고 내다본 이들이 틀렸음을 지적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이 길을 잘못 든 이유를 설명하기는 고사하고 순순히 틀렸다고 인정하지 않았음을, 그들 가운데 일부는 공화당이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별안간 입장을 번복까지 했음을 지적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정치적 논쟁에 널리 퍼져 있는 부정직에 정직해야 한다. 종종 허위가 의도를 드러내는 법이다. 


전문가, 학자라면 어떤 정책의 공과를 검토하여 불편부당한 객관적 결론을 내리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크루그먼이 생각하는 ‘공적 지식인’은 단순히 정오표를 작성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회 공공의 영역을 위해서라면, 객관 사태의 배후까지 추적하여 잘못된 구조의 근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공적 지식인의 임무이다.


21세기의 첫 20년은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이 국제 사회에서 눈에 띄게 낮아진 것은 물론, 한때 자유민주주의의 산실이라고 여겼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한 시기이기도 하다. 


부시부터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치는 누가 보아도 내리막길을 걸었는데, 나쁜 신념에 기초한 정책이 전체 국민이 아닌 특정 정파나 일부 계층의 이익을 대변함으로써 사회 공동체의 신뢰를 깨뜨리고 민주주의의 기초를 허물었다는 것이 크루그먼의 분석이다. 


흔히 ‘우울한 과학’이라고 하는 경제학을 무기로, 그러나 명칼럼니스트답게 더없이 상식적이고 재치있는 대중의 언어로 크루그먼은 개별 정책 비평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부시부터 트럼프까지 한 시대를 점령한 극단적 보수주의가 미국과 전세계 그리고 민주주의 체제를 어떻게 위기에 빠뜨렸는지 집요하고도 혹독하게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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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영어공부 

박소운 지음, 원앤원북스 펴냄

 

'영어는 누구에게나 익숙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공교육을 통해 이미 알파벳은 뗐고, 파닉스에 익숙하고, 간단한 인사말도 가능하고, 어느 정도 수준의 독해력도 갖추고 있고, 영문법도 아예 모르지는 않잖아요? 이처럼 영어는 20살 이전부터 자주 접하고 공부했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래서 성인이 되고 나서 ‘영어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다져놓은 땅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는 필수 스펙이 된 영어. 영어 점수 없이는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뿐 아니라, 직장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하거나 거래처와 소통할 때도 영어 회화 실력이 중요해졌다. 남녀노소 누구나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같지만 ‘영어’라는 벽은 높기만 하다. 


시중에 각종 학습법과 교재는 참 많은데 뭘 골라서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한다. 왜 우리는 영어공부만 시작하면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걸까.


통역사로 십수 년간 활약한 저자는 그 누구의 영어도 ‘완벽’할 수 없다고 조언한다. 사실 한국인인 우리의 한국어도 완벽하지는 않다. 모든 한국인이 표준어를 쓰고, 맞춤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 원활하게 마음을 나누며 소통하고 살아간다. 모국어인 한국어에서 나오는 실수에는 관대하면서 왜 영어에서만큼은 엄격해지는가? 완벽하고 싶다는 강박관념이 당신의 영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영어공부에도 왕도는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방법을 몰라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으며 영어공부에 큰돈을 쏟아붓고 있다. 

 

각종 애플리케이션과 번역기, 웹사이트, 유튜브의 등장으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영어를 학습하기 좋은 시기다. 물론 아무리 도구가 좋아도 생각 없이 공부해서는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


이 책은 OTT, 유튜브 등 범람하는 콘텐츠를 영어공부에 활용하는 방법부터, 영어공부에 대한 오해와 편견, 자신에게 맞는 교재와 공부법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등을 알려준다. 


WHO(세계보건기구), UNICEF, UNESCO, 외교부, 삼성전자 등 통역사로서 다양한 현장에서 활약한 저자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영어를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공교육을 통해 이미 알파벳을 뗐고, 파닉스에 익숙하고, 간단한 인사말도 가능하고, 어느 정도 수준의 독해력도 갖추고 있고, 영문법도 아예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외국어에 비해 영어는 시간과 수고를 덜 들여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책은 우선 영어공부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영어 초보자를 위한 마인드셋을 이야기한다. 이어 가볍게 영어공부를 시작하는 방법과 책, 영화, SNS를 통해 현지에서 쓰이는 ‘살아 있는’ 영어를 배우는 방법을 알아본다. 


다음으로 초보자가 간과하기 쉬운 어휘와 표현 등을 배우고, 누구나 활용 가능한 가성비 좋은 영어공부법을 소개한다. 아울러 초보와 중수를 가리는 숫자 표현, 중수와 고수를 가리는 의문문 등 좀 더 난도 높은 영어를 쉽게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와 함께 배우, 통번역사, 주부 등 각계각층 영어 고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어공부의 왕도’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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