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끌리는 책] 무릎을 탁 치는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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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끌리는 책] 무릎을 탁 치는 역사 이야기

  • 이은진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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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썬킴의 세계사 완전 정복 

썬킴 지음, 알에이치코리아(RHK) 펴냄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딛고 처음으로 식민지를 건설한 ‘유럽인’들은 누구일까요? 많은 분이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출발해 지금의 매사추세츠에 도착한 영국 청교도인 102명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현재까지도 많은 미국인이 그렇게 믿습니다. 자신의 조상이 자유를 위해 신세계를 만든 사람들, 그것도 영국 본국의 종교 박해를 피해 목숨을 걸고 험한 대서양을 건넌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멋진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닙니다.‘


최근 들어 연어 초밥을 먹으려고 했다가 너무 높은 가격에 망설였거나 물가가 올라 걱정했던 경험이 있다면, 모든 원인이 바로 미국과 러시아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역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현재를 더 잘 살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 한다. 

 

뉴스에서 러시아 전문가들의 ‘푸틴은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 한다’라는 발언을 보고 ‘황금기로 돌아가고 싶구나’하고 지레짐작했다면,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나폴레옹도 이기고 기세등등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거군’이라고 확실히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러시아 제국을 주제로 한 이야기까지 술술 내뱉게 될 것이다. 과거를 배웠을 뿐인데, 뉴스가 이해되고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가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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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유럽 국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역사와 전통이 짧은 미국이 어떻게 초강대국이 되었는지, 유럽의 변방 국가였던 러시아가 어떻게 패권을 넘보는 수준으로 성장했는지를 역사 초보자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한다. 


특히 방대한 미국과 러시아 역사의 분량에 겁먹은 이들을 위해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북미 대륙의 발견부터 소련의 탄생까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러시아의 경우 본격적으로 유럽사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로마노프 황조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로마노프 황조 시기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아관파천, 러일전쟁, 청일전쟁과도 연관되어 더 쉽게 해당 시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과 러시아 역사를 다루면서 해당 시기의 세계정세에 대한 설명이 녹아 있어, 세계 역사의 맥락을 잡는데 도움이 된다.


분명히 책을 읽은 것뿐인데 옆에서 썬킴의 강의를 듣는 기분이 든다. 또한 단행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내용을 알차게 수록했다. 

 

역사를 최대한 흥미롭게 느낄 수 있도록 각 장의 마지막에 ‘역사의 한 페이지’ 코너를 만들어 해당 시대와 관련된 인물, 영화, 음악 이야기를 소개한다. 역사의 디테일을 살리면서 책 이외의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를 즐기는 방법을 제안한다.


중요 인물이나 사건을 다룬 삽화, 해당 시기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컬러 지도 등 도판 약 50컷을 수록했다. 각 장의 시작에는 중요 사건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연표를 담아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큰 줄기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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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신연식 지음, 시공아트 펴냄


'# 7 용정—동주의 집 (낮—밤)

몽규/ 시를 쓰기만 하면 뭐해? 발표를 해야지.

동주/ 당선이 안 되는데 어떻게 발표해?

몽규/ 안 된다고 그냥 묵힐 거냐?

- 아무 말 없이 정리하는 동주.

몽규/ 문예지를 만들어서 니 시를 발표하자고. 우리 잡지를 만들자는 얘기야.

동주/ (멈춰 돌아보며) 잡지?

몽규/ 니가 시를 쓰고 내가 산문을 쓰고.'


시인 윤동주를 모르는 이는 없다. 그의 시 몇 구절은 언제고 읊을 수 있고, 굳게 다문 입술이며 생김새는 눈을 감아도 또렷하게 그릴 수 있다. 


이 책은 스스럼없이 국민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윤동주의 삶을 그려 낸다. 그런데 영화를 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여겼던 시인의 몰랐던 얼굴과 새로운 이야기에 놀라고, 미안해지고, 묵직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당혹스러워진다.


영화 <동주>의 오리지널 각본을 담은 이 책은 영화가 끝나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한 관객들의 마음을 빈틈없이 채워 준다. 


영화는 2016년에 개봉했지만 몇 차례의 재개봉과 n차 관람이 이어졌다. 송몽규라는 인물을 재발견했고, 영화의 두 주인공은 라이징 스타에서 믿고 보는 배우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윤동주로부터 한 세기가 지나고 시인이 목숨을 바쳐 갈망했던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희망하는지를 묻게 했다. 이제 관객들은 책을 통해 마음껏 또 오래도록 영화를 사랑할 수 있다.


이 책은 영화 <동주>의 오리지널 각본집이다. 오리지널 각본은 연출, 편집 등을 거친 다음 대중에 선보이는 버전(극장용)과는 차이가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감독보다는 작가의 눈으로 인물과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 


영화는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거나 작업에 깊이 관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영화는 각본가와 감독이 다르다. 신연식 작가는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하지만 영화 <동주>에서는 각본과 제작을 맡았다. 언제나 문학적 사유와 시대의 고민을 담은 영화를 선보이는 작가의 정수가 이 영화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영화에서 동주는 자신의 노트 가득 시를 쓰고 또 쓴다. 또 영문본이라도 시집을 출간하고 싶어 했다. 이 바람은 그의 생전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책에 수록된 작가 인터뷰에서 저자는 자신도 10대 시절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 내용을 노트 가득 적었고, 동시에 윤동주처럼 살아생전 한 편의 영화도 세상에 내놓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렸다고 고백한다. 


각본집은 작가가 글로만 그려 낸 영화를 만나는 통로인 동시에 글이 가진 매력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다. 특히 『동주』는 문학만이 가능한, 정서를 환기시키고 벅차게 만드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 책에는 영화 시나리오와 오리지널 각본뿐 아니라 다양한 읽을거리와 볼거리가 있다. 윤동주와 송몽규 역을 맡은 배우 강하늘과 박정민의 추천의 글을 시작으로, 시인 오은이 쓴 에세이(‘언제고 돋아나는 윤동주라는 새싹’), 영화 스틸 컷, 윤동주․송몽규 연보, 영화에 나온 윤동주의 시들, 작가 인터뷰를 실었다. 


영화 <동주>는 2016년 17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37회 청룡영화상, 3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25회 부일영화상의 각본상을 수상했을 만큼 각본의 우수성은 널리 인정받았다. 대중에게도 윤동주의 재발견, 송몽규의 발견이라는 뜨거운 찬사가 가득하다.


좋은 작품이란 하나가 아닌 다양한 감정과 감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관객들은 이것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해 영화가 주는 최고의 즐거움, 그 이상을 얻을 수도 있다. 


바로 나를 바꾸는 힘이다. 이런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끊임없이 회자된다. 영화 <동주>처럼, 윤동주의 시들처럼. 책에는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이 영화를 여러 방법으로 다시 떠올리고 기억하게 해 만한 요소들이 많다. 


놓쳤던 대사를 곱씹고, 지나가는 영상이 아니라 머물러 있는 사진을 살펴보고, 영화에는 실리지 못한 작가의 속마음을 읽고, 같은 시인이 쓴 에세이로 공감하고, 그리고 윤동주의 시들을 다시 읽으며 영화와 시인을 찬찬히 추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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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가도 모로코 

이경한 지음, 푸른길 펴냄


‘메디나에는 수천의 우주가 존재한다. 높은 벽으로 단절된 집은 골목으로 이어져 있다. 골목에서 세상 사는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소식들이 골목길을 통해서 소리 없이 대문의 문지방을 넘어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메디나의 골목과 집들이 서로 단절된 듯 보여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여 있음을 느낀다.‘


지리학자는 공간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오감으로 공간을 경험하고 탐구한다. 태양의 역광 속에 우뚝 서 있는 미너렛과 모로코를 눈에 담고, 도시 곳곳에 팔레트처럼 펼쳐진 태너리의 냄새를 맡는다. 메디나의 골목길을 손바닥 살갗으로 쓸어 보고, 주민들과 어깨를 부대끼며 아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동안 지리학자로서 일상의 장소를 탐구해 온 저자 이경한이 새로운 여행기로 다시 찾아왔다. 그의 이번 여행지는 지중해의 서쪽 끝이자 아프리카 대륙이 시작하는 곳에 자리한 모로코이다. 


아틀라스산맥을 기준으로 바다가 나뉘고 사막과 초원이 펼쳐진 이곳에서 저자의 오감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물길과 철길이 이어지는 곳곳마다 사람이 있고 도시가 있다. 


그중 이 책은 시대의 격랑을 딛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개척해 온 다섯 도시, 카사블랑카, 라바트, 페스, 쉐프샤우엔, 탕헤르의 이야기를 담았다. 


길을 헤매는 일이 있어도 계속해서 걷는 저자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책은 지리학자의 로드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투박한 길에서 삶과 지리의 의미를 건져 내는 저자의 시선에는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유럽으로 열린 창이라 불릴 만큼 모로코는 많은 사람의 이주와 정착을 겪어 왔다. 이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문화, 관습, 신앙의 형태로 모로코의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모로 가도 모로코’는 제목 그대로 모로 가도 모로코만 가면 된다는 마음으로,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모로코를 경험하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하는 여행기이다. 


도시를 여행하는 동안 저자는 단순히 여행지를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감각하고자 한다. 지역이 담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과 의미를 파고들어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삶의 양식에 주목한다. 눈앞의 현상들이 왜 생겼는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등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지각할 수 없었던 도시의 내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기만의 시각으로 사람들을 바라볼 때, 그 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계기가 생긴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떤 물건을 만졌을 때 우리가 그 물건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만지는 자신의 몸을 느끼는 것처럼. 지리학자가 공간을 이해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만지는 자가 만져지는 것. 오감을 활용하여 온몸으로 공간을 감각하고 탐구할 때, 우리는 나와 세계를 가르는 견고한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자기만의 여행기가 탄생한다. 엉뚱한 골목길을 걷고 낯선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게 되는, 이 예측할 수 없는 모든 경험들이 결국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에세이가 되는 것처럼. 모로코 여행은 다양성으로의 여행이다. 자연, 문화, 종교, 건축 등에서 펼쳐지는 다양성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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