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냇가에서] 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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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냇가에서] 꿩

문정희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
유랑자의 나침반은 오직 고독과 미완성뿐
추운 사랑만이 사랑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

  • 이은진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2.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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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직선으로 소리치고 싶어
꿩! 꿩! 꿩!
꼬리 흔들기 싫어
흔들어야 먹이를 던져 준다면
굶어야지
갈대숲에서 하늘로
뚫린 목청
단음이 좋아
침묵은 당신을 지켜주지 않아
기교 넘치는
저 넝쿨들처럼 뻗어 가기 싫어
얽히고 싶지 않아
직선으로 소리쳐
꿩! 꿩! 꿩!
- '꿩'에서
 
‘시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시인 문정희에게 문학이란 질문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는 주제를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바로 문학이어서다. 끝없는 질문을 통해 시의 본질에 가까이 가고 최선의 인생을 사는 것이 자기 생명에 값하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글을 쓸 때도 차를 끓일 때도 몸의 일부처럼 머플러를 걸친다는 문정희 시인. 그의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에는 이 땅의 한 시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철저히 자기만의 향기를 피우기 위해 그가 겪어온 슬픔과 상처, 고독과 절망이 잘 드러나 있다. 문정희 특유의 생기와 열정으로 가득하다. 
 
시인은 “살아 있다는 것은 파도처럼 끝없이 몸을 뒤집는 것이다”고 이야기한다. 움직이지 않는 파도는 없는 것과 같이 꿈틀거리는 야성의 호흡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살아 있음의 증거이기도 하다.
 
처음 만났는데
왜 이리 반갑지요
눈송이 당신
처음 만져보는데
무슨 사랑이 이리 추운가요
하지만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요
하늘이 쓴 위험한 경고문 같아요.
- '눈송이 당신'에서

이번 시집은 시력 50년에 달하는 문정희의 기념비와도 같은 책이다. 다른 이가 만든 것이 아닌 스스로 세운 기념비일 때, 기념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품이자 영원한 기념을 가능케 하는 예술품으로 서게 된다. 
 
오래 전 시를 욕망하던 어린 시인이 시와 함께 생활하다 이젠 시로써 자유로워진 장대한 시간은 그야말로 기념비에 비견할 만하다고 하겠다.

시인은 언제나 자기를 향한 기념비를 짓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세계의 외관을 서술하는 산문가와는 대조적으로 다른 이의 작품을 해석하는 비평가와도 다르다. 
 
시인은 항상 세계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읽고 타인의 작품을 통해 자기와 마주하게 된다. 이는 냉철한 지성의 철학적 성찰을 통해서도 아닌 동시에 계량된 수치를 열거하는 사회학적 분석을 통해서도 이뤄지지 않는다.
 
매번의 시선을 통해, 발화를 통해 늘 자신에게 돌아가 자신을 발견하고 표현하며 다른 삶을 찾아내는 삶을 살아간다. 그 반복 가운데 비로소 나를 맞딱드리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그리움과 슬픔으로부터 어우러진다. 문정희 시작의 추진체로서 그리움과 슬픔은 감상어린 비애의 관념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이는 실존하는 타인, 이름 부를 수 있는 누군가를 향해 유행가 가사마냥 읊조린 노래가 아닌 것이다.
 
오롯이 자신을 대상으로 자신에게 건네는 대화의 표현으서 시는 직조돼야 한다. 매번 사랑에 감응할 때마다 마주하는 것은 그 자신이고, 이는 고독을 넘어설 수 없음에 비로소 시가 만들어진다. 시인이 변함없는 반복으로 나와 만나고 대화하며 건넨 말들이 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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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울다가 눈을 떴다
그래 이것이 네 운명이라면
그렇다면 이대로 절뚝이며 살아라
나 또한 헛짓을 하며 즐거웠다
나는 시들을 자유로이 놓아주었다
- '망각을 위하여'에서 
 
시인은 처음 만져 보는 추운 사랑을 선호한다. 도착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만족하지도 않는 시의 혈족은 늘 방랑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나침반이 있다면 오직 고독과 미완성이 전부다. 
 
고독과 미완성을 추진체로 움직이는 그의 시는 추운 사랑만이 사랑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를 상키시켜준다. 혼자인데 그것도 분열되며 새로운 상태를 향해 나가는 사랑이 추워도 좋은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엮여 있다. 시인은 경사가 급한 언덕에서 피어 있는 들을 대해 “자기 몫을 살고 있는 모든 존재는 아름다운 것이었다”며 감동의 말을 전한다. 나약해 보이지만 그 가운데는 강한 힘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날마다 작은 힘으로도 최선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도 위로를 전한다. 포근한 머플러처럼 마음의 체온을 높여주는 온화한 감동을 준다. 
 
시인은 시와 자신, 자신과 또 다른 자신, 세계 사이의 무한한 분열을 바라본다. 비정상, 곧 규정 불가능한 운동과 흐름만이 세계와 나, 너, 모든 것의 원리라는 설명이다.
 
이에 문정희의 기념비는 고정되고 절대화된 어떤 무엇도 가능할 수 없음을 통찰하는 반시학적 명명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시인은 늘어선 기념비들에 무심히 등을 돌리고 그 어떤 기념비도 최종적으로 완성될 수 없음을 믿으면서 다시 유랑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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