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의 젠더풀월드] '괴짜 여성' 되길 주저하지 말라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도영의 젠더풀월드] '괴짜 여성' 되길 주저하지 말라

젠더는 사랑, 결혼, 가족 구성, 출산, 양육, 노령화를 포함한 사적인 영역부터 경제, 종교, 정치, 미디어, 학교 등 공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강력하게 작동하는 ‘체제’다. 젠더는 인간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범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로도 작동한다. 이렇게 젠더 이분법이 만드는 사회가 성별화된 사회(gendered society)다. 본지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이러한 이분법에 의문을 던져보고,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젠더 관점의 고민과 방향을 담은 저작을 분석한다. <편집자주>

김도영.jpg

 

[지데일리] 여성들이 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대학 교육을 받고, 카페와 술집에서 다른 사람을 의식할 필요 없이 한곳에 모여 환담을 나누는 게 현재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지난 20세기 초만 해도 많은 여성들에게 이는 꿈이고 자유고 해방을 뜻했다. 

 

20세기의 억압과 복종에 과감히 맞서 여성들은 자유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제껏 사회적 휘장처럼 규정돼 온 옷차림에서 혁신을 찾고, 사랑과 결혼이라는 관습적 딜레마에 대해서도 눈을 뜬 것이다. 

 

지난 시대 아나키스트에서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적 주장들이 대서양을 넘나들면서 페미니스트든 아니든 선진 여성은 사회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의식을 함께했고, 그 신념에 기초해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왔다. 특히 국제무역의 확대를 비롯해 대량생산, 이민, 도시 슬럼 등으로 술렁이던 19세기 후반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영국에서는 여성들 사이에 ‘새로운 운동’이 나타났다. 

 

당시 여성들은 자신들이 개인적 주체임을 밝히면서 사회적 규범과 통념을 재평가했다. E. P. 톰슨의 제자이자 영국 마르크스주 역사가의 전통을 잇는 실라 로보섬의 <아름다운 외출>은 100년 전 미국과 영국에서 여성들이 일상을 어떻게 급진적인 활동의 장으로 만들어 갔는지를 당시 사실을 기반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제껏 남성의 성역이라 할 만한 것들에 여성이 반기를 들며, 노동과 정치를 함께 생각한다. 이같은 여성들의 모든 일상이 민주주의와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알아본 후에 가정과 사회, 국가적 차원에서 여성 스스로 민주 의식이 내면화되는 모습을 찾는다.

 

현재는 여성의 당연한 권리라고 하는 것들이 사실은 선구자들의 꿈이면서 자유, 해방에 기초한 투쟁의 산물이었음을 페미니즘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확인 가능하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이들의 상상력과 실천에 의지하는 바가 컸음을 알 수 있다.


도라 러셀을 비롯해 옘마 골드만, 제인 애덤스, 마거릿 생어, 에멀라인 팽크허스트, 샬럿 퍼킨스 길먼 등 근대 페미니즘을 탄생시키는 데 큰 족적을 남긴 이 여성들은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운동들로 조직했다. 이들은 여성 개인은 물론 의식 있는 남성, 정치인과도 함께하면서 사회적 통념에 대항해 꾸준히 발칙한 상상력을 떠올렸던 것이다.


1.jpg
ⓒpixabay

 


수많은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거친 환경 속에서도 모험을 시도한다. 여성이 파격적인 행동을 했을 때는 남성보다 훨씬 가혹한 비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괴짜 여성’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여성답지 않다’는 비난에 개의치 않아야 하는 것이다. 여성 역시 저항하는 개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 용감하게 욕설을 퍼부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연애, 결혼, 출산, 피임, 모성, 가사일 등 개인의 문제에서 인종, 임금노동, 여성참정권, 사회복지, 공공 주택, 연금제도 등 공공의 사회적 정책으로까지 확장하면서 침묵의 일상을 완전히 깨뜨리고 기존 시민사회의 통념과 문화에 도전하는 이들은 그야말로 당시 혁명가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세기 영국과 미국의 여성을 다루고 있지만 동일한 논쟁이라고 해도 두 나라에서 제기되고 실행되는 방식에는 저마다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이같은 차이를 잘 살펴보는 것도 나름대도 뜻이 있겠으나 더 눈여겨 볼 것은 두 나라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다양하게 운동을 펼쳤음에도 각각의 여성들은 상호 영향을 받으며 자기들만의 운동 조직을 더욱 다채롭게 견인해왔다는 점이다. 

 

2.jpg

 


또한 성과 관련해 고민해 볼 수 있는 문제, 즉 자유연애, 결혼, 성매매, 성 심리학, 섹스, 섹슈얼리티 등의 변화도 주목된다. 출산을 다룬 내용에서는 어머니가 되는 데 따르는 여러 가지 문제들과 마거릿 생어의 출산조절 문제, 피임, 가족계획과 함께 판단되는 맬서스 이론과 우생학 등을 사회적 측면과 연계시켜 생각해본다. 

 

특히 어머니가 됨으로써 파급되는 각종 연금제도와 육아, 국가의 재정 지원 등을 포괄적으로 알아본다. 육아 수당과 육아 교육, 그리고 모성연금과 아동연금 같은 당시 여성 개혁가들의 획기적인 생각들은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육아 문제와 관련해서도 의미가 남다르다고 하겠다. 

 

이어 가정경제학이 태동될 수 있었던 여성의 가사노동도 주목한다. 가정경제를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 사상과 연관시켜 생활의 예술로까지 발전시킨 부분은 선진 여성들의 재기 넘치는 상상력을 재평가하게 만들어준다. 

 

이와 함께 여성이 소비를 주도하는 새로운 흐름이 됨으로써 이들이 사회에서 어떤 대안 문화를 새롭게 만들고, 어떤 상호부조 프로젝들을 만들어 나가는지 조명한다. 

 

이 밖에 여성 노동자로 살면서 이들이 어떻게 갖가지 변화들을 일구어 내는지에 집중한다. 열악한 작업 환경과 각종 사회적 불의에 맞서 8시간 노동을 주장하는 여성들은 배움이 왜 필요하고, 왜 조직화로 맞서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20세기 전환기 선구자들의 문제의식과 그것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한눈에 정리한 것이 특징이다. 과거 통념대로 살아온 여성들이 사회 환경이 변화하면서 스스로 일상을 변화시켜겠다고 알아차리면서 다른 여성들과도 상호 연대해야하는 이유도 설명한다. 페미니즘에 관한 풍부한 상상력과 실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크기변환]5.jpg

 

※ 외부 필진의 칼럼과 기고 등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