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의 젠더풀월드] '니모를 찾아서' 도리를 재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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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영의 젠더풀월드] '니모를 찾아서' 도리를 재발견하다

젠더는 사랑, 결혼, 가족 구성, 출산, 양육, 노령화를 포함한 사적인 영역부터 경제, 종교, 정치, 미디어, 학교 등 공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강력하게 작동하는 ‘체제’다. 젠더는 인간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범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로도 작동한다. 이렇게 젠더 이분법이 만드는 사회가 성별화된 사회(gendered society)다. 본지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이러한 이분법에 의문을 던져보고,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젠더 관점의 고민과 방향을 담은 저작을 분석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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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데일리] 혹자는 현대사회가 망해가는 가족 구조, 로맨스의 거짓말, 강제된 사랑과 결혼, 평등과 통합이라는 허구가 넘쳐나는 세상이라고 한다. 

 

출산율이 추락하고, 경제적 양극화가 불러온 절망은 여성 혐오로 폭발하고, 불륜과 성매매가 일부일처제의 허구를 드러내고 있다. 나이 든 여성들은 자식이 다 크자마자 이혼을 선언한다. 정부는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협박하고 회유하지만 젊은이들은 여전히 아이를 갖지 않는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불안에 떨게 하는 이런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J. 잭 핼버스탬의 <가가 페미니즘>은 이처럼 가족과 결혼의 붕괴,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변화를 유쾌하게 맞이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젠더 이분법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온 그는 페미니즘, 퀴어 문화, 대중문화를 넘나드는 도전적인 글을 발표하면 영향력 있는 퀴어 이론가 중 한 명으로 유명하다.

 

그는 만화영화 '니모를 찾아서' 혹은 가수 레이디 가가 등 다양한 대중문화 현상과 일상에서 일어나는 퀴어한 변화들과 월가 점령 운동으로 촉발된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맞선 저항의 물결을 한데 모아 새로운 세대의 섹스, 젠더,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팝 스타 레이디 가가를 새로운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결혼이 무너지고 남성이 임신하며 이성애자 여성들은 부치를 만나는 현대의 섹스와 젠더의 모습을 다시 그려낸다. 


보이걸과 임신한 남자 사이, 섹스와 젠더의 세계를 여행하는 가가 페미니스트를 위한 안내서

데뷔 후 그동안 섹슈얼리티와 젠더의 경계를 넘나든 레이디 가가가 시상식에 드랙을 하고 나타난 일화가 인상적이다.

 

가가 페미니즘은 레이디 가가라는 개인에 한정된 페미니즘이 아니다. 젠더 이분법과 여성이라는 범주를 뒤흔드는 한편 치솟는 이혼율의 시대에 핵가족의 잔해에서 나타나고 있는 친밀함의 새로운 형태를 살피는 개념이라 하겠다.

 

자기 파트너의 어린 아이들을 처음 만난 때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아이들은 “여자예요? 남자예요?”라고 물었는데, 확실한 답을 듣지 못하자 보이와 걸을 엮은 '보이걸'이라는 이름을 제시했다. 

 

가가 페미니즘의 배경을 알아보면 백인 여성의 모녀 유대에 매달리는 낡은 페미니즘 모델이 인종과 계급의 문제를 질문하지 않는 실정이다. 똑똑한 여자와 게으름뱅이 남자 커플을 다루는 멈블코어 영화를 통해 꾸준히 젠더 위계와 이성애 로맨스의 위험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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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의 한 장면

 

 

변화하는 젠더와 관련해서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 등장해 화제를 불러왔던 임신한 남자로 출발한다. 자궁을 절제하지 않고 호르몬 처방을 잠시 중단한 뒤 임신을 한 트랜스 남성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재생산 기술의 진보가 성역할을 해체하고 양성 평등을 가져오리라고 예견한 급진적 페미니스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을 떠올리게 된다. 

 

급격한 사회 변화는 섹스와 젠더의 의미를 변화시켰다. 부성의 위기와 인공 재생산, 퀴어 가족을 다룬 영화를 통해 친밀성과 젠더에 관한 서사가 담아내지 못하는 현실의 변화를 비판한다. 아울러 지금도 불평등한 성별 분업을 고수하는 이성애 가족에게 새 선택지를 줄 부치 아빠와 퀴어 부모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다음으로 이성애자이던 여성이 부치나 트랜스 남성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현상에서 출발해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다룬다. 더 늙기 전에 적당한 남자를 잡아채 결혼하라는 자기계발서의 충고 바깥에서 여성들이 찾는 다른 선택지는 ‘이성애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유럽식과 미국식 정체성의 확산도 비판의 대상이 되는데 일본에서는 스스로 레즈비언으로 말하지 않고도 여자를 만날 기회가 많이 있고, 중앙아시아에는 트랜스젠더가 아니지만 남자로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게 들린다.

 

미국 LGBT 운동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동성 결혼을 비판, 결혼이 아닌 다른 형태의 친밀성을 상상하자는 주장도 인상적이다. 결혼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우리가 이미 흔들리고 있는 신성한 결혼이 가져다주는 불행고 혼란에 진입할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인 일부일처제에 특권을 부여해온 결혼 제도에 포함되기 위해 우리의 친밀성을 재단하는 대신, 옆집 할머니나 동네 아저씨를 내 의료보험에 추가하는 식의 더 넓은 대안적 관계를 상상할, ‘권리를 거부할 권리’를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새로운 통찰을 던져주는 아이들 영화의 한 예로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를 이야기한다. 건망증에 걸린 이상한 물고기 ‘도리’는 5분밖에 기억하지 못해 5분마다 새로 시작해야 하는 내용이다. 유괴된 니모를 찾는 니모의 아빠 말린을 도와주면서 도리는 모든 규범적 핵가족 서사를 등지게 된다.

 

도리는 어머니가 되지도 않고, 말린과 사랑에 빠지지도 않는 캐릭터다. 하지만 니모를 찾을 수 있고 태평양을 건너 항해할 수 있으며 어부들에 맞서 물고기 반란을 이끌 수 있는 설정이다. 우리도 도리처럼 가족을 잊고 결혼을 잊으며 규범과 정상성을 잊어버린 채 다른 물결을 따라 헤엄치자고 단언한다.

 

점점 심해지는 젊은 남성들의 여성 혐오에 여성들은 한숨을 내쉬면서 독신을 다짐하곤한다.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가족 구성권을 질문하는 유명 게이 커플의 당연한 결혼식이 주목받기도 했다.

 

다양한 사회 현상과 대중문화를 유쾌하게 넘나드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동시대 퀴어 담론의 역동성을 만나고 지금 여기의 현실을 반영할 페미니즘 이론과 퀴어 운동의 상상력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미 미래는 우리 곁에 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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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필진의 칼럼과 기고 등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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