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의 젠더풀월드] 페미니즘이 아닌 휴머니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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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영의 젠더풀월드] 페미니즘이 아닌 휴머니즘입니다

젠더는 사랑, 결혼, 가족 구성, 출산, 양육, 노령화를 포함한 사적인 영역부터 경제, 종교, 정치, 미디어, 학교 등 공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강력하게 작동하는 ‘체제’다. 젠더는 인간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범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로도 작동한다. 이렇게 젠더 이분법이 만드는 사회가 성별화된 사회(gendered society)다. 본지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이러한 이분법에 의문을 던져보고,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젠더 관점의 고민과 방향을 담은 저작을 분석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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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데일리] 이슬람 여성에 대한 허구적 이미지는 서양과 동양의 극단적 구분에서 비롯됐다. ‘오리엔탈 타자’의 표상, 다시말해 오리엔탈리즘의 골자라 할 수 있겠다. 동양과 서양의 구분 아래 자신에게 낯익음과 '낯섦의 차이는 우월한 서양이 미개한 동양을 문명화할 사명을 부여받은 것처럼 오역되곤 한다. 


이같은 오역이 식민주의를 낳았는데, 식민주의는 이슬람 페미니즘을 표면화하긴 했지만, 이는 여성의 도덕성이나 옷차림 등에 초점을 맞춰 문제를 매우 작게 만들었다.

 

반면 반식민주의나 안티오리엔탈리즘의 입장을 견지한다면 그 관점은 어떻게 바뀔까. 이슬람교가 남녀평등을 부정하고 이슬람 사회가 가부장적 사회라는 것을 바꾸기 어렵더라도 다른 서구적 기획을 거부하면서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이슬람 내부에서 충분히 발견된다.


고전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지혜로운 왕비 세헤라자데는 독특한 매력으로 서구인들에게 이미지화된 대표적인 캐릭터다. 특히 무역종사자, 의사, 선교사 등이 서구로 보고한 문서나 기록을 통해 베일로 가려졌던 아라비아 여인에 대한 이미지는 묘한 에로티시즘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베일을 언급할 때에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다양한 이미지와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베일에 숨은 무슬림 여성들의 문제 역시 다양하고 다층적이라 하겠다. 이같은 이슬람의 페미니즘 논쟁을 따라가다 보면 오리엔탈리즘이 만들어낸 무슬림 여성의 이미지 가운데 상상수가 실체가 없는 거짓임을 확이할 수 있다. 


그동안 이슬람교는 여성을 학대하는 종교라는 이미지가 있어왔는데 기독교의 입장에선 이슬람교의 부도덕한 성차별 관행은 무슬림 여성을 무슬림 남성의 횡포로부터 구원해야할 존재라고 인식했다. 

 

특히 이런 관념은 유럽 남성들에게 동양 여성에 대한 성적 환상을 낳게 하기도 했다. 이같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무슬림 여성에 대한 은유와 불편한 이미지에서 유래한 오리엔탈리즘이 <이슬람과 페미니즘>의 문제제기 시작점이며 그 가운데 놓여 있는 게 ‘베일’이라 하겠다.

 

사용방식과 호칭의 다양성만큼이나 베일(헤자브)이 상징하는 이미지도 많다다. 과거부터 패션으로 자리 잡은 헤자브는 고급 소재와 화려한 디자인을 가미한 소위 명품 차도르로 비무슬림 여성들에게도 매력적이었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의 이슬람 국가들에서의 차도르 착용은 모래바람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기능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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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그러나 눈만 빼고 온몸을 가리는 아프카니스탄의 부르카는 몇 년 전 방송에서 이를 착용하지 않고 출연했다는 이유로 명예살인은 당했던 한 여성 앵커의 죽음으로 인해 억압의 대표적 상징이 됐다. 대학 강의실에서 차도르의 착용이 금지된 터키에선 퇴학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차도르 착용을 고집하는 여학생들로 인해 저항의 상징이 된다.


진정한 페미니즘은 다양하게 주어진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상황을 반영하고 그에 걸맞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가장 중요시 돼야 할 것은 우선순위는 다를지라도 누구에게나 통하는 열망은 다를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즉, 이슬람 페미니즘의 구체적인 현안은 분명 다른 문화권의 페미니즘 현안과 차이가 있으며, 이슬람 국가들마다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서구 여성들과 똑같은 기본권 획득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낯선 남자에게 미소를 지었다는 이유로 한 여인이 자신의 남편에게 살해당한다거나 마을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것조차 무슬림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나 인도 사람들이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 등 정도의 지역적 또는 문화적 차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국적인 것과 토착적인 것의 무모한 추종은 회의주의에 갇혀 현재 하나의 종교,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와 은밀히 결탁한 셈이 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역사를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사람이 꼭 기억해야 하는 점은 한번 계몽된 의식은 과거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식민주의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비록 소수이긴 하나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늘어났으며 비종교적 성향의 지식인들도 세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작게라도 젠더의식을 갖게 된 여성들은 원리주의 통치 아래서도 페미니즘 운동과 관련해 다양한 행보를 보여왔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과 이로 인해 다급해진 원리주의자들이 더 조급하게 행동해온 지난 20년 동안 많은 여성들이 저항과 투쟁을 지속해왔다. 이란과 수단에서, 파키스탄에서 그들의 근거지를 조금씩 확장해오면서 법치국가와 개인의 권리 등 사회적 변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한 변화는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개혁은 불확실하지만 어젠다는 남아 있으면, 이슬람 내에서의 여성 투쟁의 미래는 결코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이슬람 페미니즘을 낙관하는 근거는 세상이 빠르게, 정말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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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필진의 칼럼과 기고 등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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