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BOOK돋움] 자폐증은 단지 여러 특징 중 하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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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BOOK돋움] 자폐증은 단지 여러 특징 중 하나일 뿐

본지가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심신을 회복하기 위해 독서로써 마음을 힐링하는 '책 읽는 힘, BOOK돋움'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일상생활이 멈춘 상황에서 마음의 양식을 얻을 수 있는 독서 생활이 최고의 기회라 여겨집니다. 독서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부모와 자녀 세대가 소통하는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며, 책 읽는 분위기가 잔잔한 물결처럼 번져 코로나 블루가 슬기롭게 극복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 이은진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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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은 스위스에서 끔찍한 경험을 했다. 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사실 난 그때 엄마 아빠의 바로 앞의 덤불 속에 있었다. 하지만 두 분의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생기면 때 소리 질러 답해야 한다고 내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여 자기에게 익숙한 장소라고 해도 여러 번 길을 잃고 헤맨 끝에야 식당을 찾아간다. 그 이후에도 고민은 이어진다. 들어갈까 말까. 어느 순간에 문을 밀고 들어가야 할까. 5분 전에 도착해도 될까. 5분 후에 도착해도 될까. 사람들이 내게 뭐라고 말을 걸까. 그러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자폐인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제기된 문제나 주어진 상황의 모든 측면을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만일 여행을 떠난다면 여행의 모든 단계를 계획하는 식이다. 

 

여행 가방을 어떤 날에 준비해야 할지 알아야 하며 가져가야 할 물건 목록 외에도 그 물건들을 어떤 순서로 가방에 넣을지도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같은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서도 자폐인은 흥미를 느끼는 지점이 비자폐인과 같지 않다. 영화배우 부부에 관한 글을 읽고 난 뒤 그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나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어떤 언어의 문법적 특징은 훨씬 쉽게 기억하는 특징을 보인다. 

 

일상에서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일부 자폐인은 천재라기보다는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과 갈망을 극대화한 드문 사례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특수한 관심사를 마음껏 집중할 자유가 상대적으로 많이 주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가 세상의 어떤 틀에도 들어맞지 않음을 인식한다. 서글프고 심각한 이야기들인데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유머러스하게 자신의 내면세계를 드러낸다. 조제프 쇼바네크의 <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 산다>는 자폐인이 인식하는 세계에 대해 자폐인이 직접 기술한 생활 속 이야기다.

 

만 6세까지 말을 하지 못했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지적 능력이 없다는 판정을 받기도 했던 저자는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자폐인의 내면세계와 세상을 바라보는 흥미로운 관점을 독특한 방법으로 풀어낸다.


사실 자신이 겪는 이야기들은 아프기도 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많으나 그는 많은 에피소드 속에서 한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바로 사람은 어떤 한 가지 설명에 가둘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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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엔 너무 멍청하다고 여겨지던 아이. 늘 백치나 지적장애인 취급을 받던 청소년. 왕따를 당하고 친구들에게 자주 맞아 학교 가기 싫어했던 아이. 간단한 인사를 하거나 카페에 들어가는 일도 버거워하고 빵을 사거나 전화 통화 같은 사소한 일로도 불안해하던 그 청년.

 

그에게 있어 자폐증은 본인의 키가 195센티미터라는 것처럼 여러 특징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아울러 각각이 살아가는 세상은 모두 독특하고 살 만하다는 결론을 얻는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바칼로레아를 통과하고 고대 문명에 심취해 독학으로 10개 언어를 배웠으며 프랑스 명문대 시앙스 포(파리정치대학) 졸업 후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남자다.


다만 여전히 사회적 능력에서는 서툰 모습을 보인다. 지하철을 타거나 약속 장소에 가기 전에 여전히 험난한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하고 전화벨이 울릴 때 공황장애 비슷한 것을 경험을 하기도 한다. 지나가며 가벼운 인사를 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왜 축구라는 게임을 하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평소 겪는 불안 수준과 크게 다를 바 없어서 ‘바칼로레아 구술시험’을 앞두고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는 고백을 들으면서 그가 평소에 얼마나 큰 짐을 안고 살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자폐인’이라고 하지 않고 ‘자폐증을 지닌 사람’으로 이야기한다. 여행 가방을 지니고 다니듯 그다음 날에 자폐증을 집에다 놔둘 수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다. 상황이 어떻든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넘어서는 존재라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무엇이고 평소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능력이 정말 그렇게 인정받을 만한 것인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폐를 지녔든 아니든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과 인간 됨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존재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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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봄이 아니라/ 다시 봄이다/ 어제와 다른 눈으로/ 다시 보는 것/ 무심히 잊고 살아가는 것들을/ 다시 보는 것/ 한결 더 따듯한 시선으로 다시 보는 것'

 

울었다가도 웃을 수 있고 주저앉았다가도 일어설 수 있다. 물론 그런다고 당장의 힘든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함께 걸어간다.

 

일상의 언어로 비일상적인 순간을 그려 내는 시인 양광모. 그는 ‘힘내’라는 말보다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이 상용되는 요즘 ‘부디 힘내’라고 위로한다. 


힘내가 아닌 부디에 방점이 찍혀 있어서인지 ‘힘내다’라는 동사가 청자에게 부담을 지운다면 ‘부디’라는 부사는 화자가 그 무게를 나눠 갖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힘을 내야 하는 건 결국 삶의 주체인 당신이겠지만 그럼에도 당신의 슬픔을 함께 나눠 들고 싶은 마음이다. 아마 평생 가도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시인은 부디 힘내라고, 나도 힘내겠다고 강조한다. 삶을 버티는 일이 강 하나를 건너는 일이라면 우리 함께 강 저편에서 만나자고 위로한다.


'빗방울이 빗물이 된다/ 빗물이 개울물이 되고/ 개울물이 강물이 되고/ 강물이 바다가 된다// 삶이 개울물 같은 날엔/ 기억할 것// 그대 지금 바다 되려/ 아득히 먼 길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부디 힘내라고>에서 시인이 주목하는 것은 시간과 계절이다. 날마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처럼 보이지만 우리 주변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가 그치면 해가 뜨고 밤이 지나면 아침이 찾아오 듯이 말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꽃과 나무들은 저마다의 색채로 물들어 가는 것이다. 세상 그 무엇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다. 똑같아 보여도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시간을, 계절을, 사람을 만난다.

 

‘차라리 슬픔에게 이름을 붙여 줄까/ 사슴 슬픔, 해바라기 슬픔, 검은 모래 슬픔…// 생에서 종내 벗어나지 못한 슬픔이 있었던가/ 짚어 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었기에'


가로등의 빛이나 건물 조명, 자동차 전조등처럼 눈에 두드러지는 빛은 아니지만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먼 곳까지 팔을 뻗어 우리를 그러안는 빛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사랑의 기억들이 있어 슬픔이 나를 무너뜨리려 해도 우리는 회피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그리 괜찮지는 않지만 당신과 내가 진심 어린 마음으로 괜찮냐고 물어본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 뼘 더 괜찮아질 거라고 말한다. 얼마나 많은 한 뼘들이 모여야 세상 전부를 감쌀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의 여정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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