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BOOK돋움] 마을숲을 이해하는 일은 사람을 이해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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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BOOK돋움] 마을숲을 이해하는 일은 사람을 이해하는 일

  • 이종은 sailing25@naver.com
  • 등록 202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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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마을숲 이야기 

이상훈 지음, 푸른길 펴냄


예로부터 사람들은 마을 어귀나 강과 산이 있는 방향에 숲을 가꾸어 왔다. 계절풍 바람을 막고 홍수에 대비하여 마을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나라 마을들은 대체로 배산임수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마을 앞이 텅 비어 있었다. 


때문에 강이 범람하거나 겨울철 바람이 들이닥치면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 내야 했다. 어떻게 하면 마을을 지키고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을까. 당시 눈앞의 자연 외에 의지할 곳이 없었던 사람들이 떠올린 방법은 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었다. 


땅의 형상과 변화를 해석하여 땅의 불안정한 지점을 메꾸고자 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을 주위에 숲을 조성하고 돌탑과 선돌을 세웠다. 그러면 땅은 화답이라도 하듯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였다. 


마을에 원인 모를 전염병이 돌거나 나라가 전쟁으로 어수선할 때도 땅은 숲으로 마을을 감싸 사람들을 보호했다. 사람들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그 숲을 ‘마을숲’이라고 불렀고, 그때부터 인간과 자연 간의 연대가 시작됐다.


오랫동안 전국의 마을숲을 돌아보며 민속을 연구해 온 저자는 역사·문화적인 시각으로 마을과 마을숲의 구조와 지명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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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지역부터 생소하게 느껴지는 장소까지 꼼꼼히 둘러보면서 마을숲이 가진 의미를 삶과 사람의 이야기로 증언한다. 

 

마을숲은 다채로운 방식으로 우리 삶 곳곳에 깊숙이 존재한다. 거대한 산의 모양으로 마을의 뒤를 받쳐 주는가 하면 아늑한 동산과 가로수의 모습으로 일상의 풍경이 돼준다. 

 

흔하고 친숙해 보이는 공간이지만 저자의 걸음을 따라 마을숲을 거닐다 보면 우리는 숲에 덧칠된 흔적들, 신화와 전설, 역사와 민속들이 자연과 인간이 수백 년간 이뤄 온 기적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저자는 땅의 생기가 인간과 교감한다고 말한다. 


그 자체로도 완벽한 자연이지만, 사람들이 의미를 더하고 정성스럽게 보호할 때 더욱 조화롭고 온전한 삶터가 될 것이라고. 어쩌면 마을숲을 이해하는 일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우리는 숲이 만들어 낸 커다란 그늘 아래 서 있기도 하고, 낙엽이 쌓인 거리를 걷기도 한다. 모정에서 햇빛을 피하는 어르신과 개울에서 물을 튀기며 노는 아이들. 숲이 그려 낸 풍경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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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찬이의 연주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보연 지음, 봄름 펴냄


여섯 살 은찬이는 무릎이 아파 성장통인 줄 알고 찾은 병원에서 급성림프백혈병 진단을 받는다. 이후 7년간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조혈모세포이식, 뇌출혈, 세 번의 재발을 반복하다 열세 살에 결국 하늘의 별이 된다. 은찬이를 살릴 방법은 있었다. 


‘킴리아’라는 꿈의 항암제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5억 원이라는 막대한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을 팔아야 했고, 복잡하고 느린 행정 절차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점점 죽어갔다. 고통스러운 기다림 끝에 킴리아 치료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기로 한 날, 은찬이는 눈을 감고 만다.


은찬이의 엄마이자 이 책을 쓴 이보연 작가는 “내 아이가 못 쓰고 간 약을 다른 사람들은 걱정 없이 쓰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거리에서, 국회에서, 카메라 앞에서 목소리를 냈다. 실제로 저자는 아들 은찬이를 생각하며 난치병 환자들을 위한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 책은 평범한 투병기가 아니라 자식 잃은 엄마가 참척의 아픔보다 더 큰 사랑과 생생한 기억으로 되살려낸 아들의 부활기다. 책 한 권에 담긴 찰나였지만 찬란했던 은찬이의 삶은 우리가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몫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데 귀감이 되어준다.


2014년 11월 어느 날, 별안간 하늘이 노래졌다. 무릎이 아프다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니 ‘급성림프백혈병’이라는 무서운 대답이 돌아왔다. 이때 아이는 고작 여섯 살이었다. 


아이의 이름은 차은찬. 백혈병은 바이올린을 사랑하고, 공부를 즐겨 하고, 하나뿐인 동생을 끔찍이 아끼던 은찬이의 인생 무대를 병원으로 옮겨 놓았다. 이후 7년간 은찬이는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조혈모세포이식, 뇌출혈, 세 번의 재발을 반복하다 2021년 6월에 결국 하늘의 별이 된다.


은찬이를 살릴 방법은 있었다. 은찬이가 긴 투병을 하는 동안 CAR-T 치료제인 ‘킴리아’가 개발되었다. 킴리아는 은찬이처럼 급성림프백혈병이 여러 번 재발하여 더 이상 방법이 없는 젊은 환자들 10명 중 8명을 살려낸 기적의 신약이다. 


효과가 엄청난 만큼 이미 해외 여러 나라에서 상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 2월 은찬이의 병이 세 번째 재발했을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킴리아를 쓸 수 없었다.


‘킴리아 치료를 해도 된다’는 관련 법안과 식약처의 승인 및 허가가 필요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해외에서의 치료도 불가능해졌다. 항암치료로 힘겹게 연명 중인 은찬이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은찬이 가족은 국민청원, 1인 시위, 인터뷰 등을 벌이며 사회의 관심과 관계부처의 신속한 처리를 호소했으나 돌아오는 건 모두의 무관심과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하고 있다”는 무책임한 대답뿐이었다.


은찬이는 고통 속에서도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으며 가족과 함께하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갔다. 위태로운 기다림 끝에 2021년 5월, 드디어 국내에서도 킴리아 치료를 할 수 있게 되었으나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약값이 5억 원에 달했던 것. 은찬이네는 결국 집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치료만 받고 나면 온 가족 다 같이 모여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킴리아 치료를 위한 세포 채집을 하기로 했던 당일 새벽, 은찬이는 눈을 감고 만다. 이후 은찬이의 엄마이자 이 책을 쓴 이보연 작가는 은찬이 같은 안타까운 죽음이 더 이상 없도록 거리에서, 국회에서, 카메라 앞에서 목소리를 냈다. “저는 킴리아 치료를 기다리다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떠난, 차은찬의 엄마입니다.”


이 책은 열세 살 은찬이의 평생을 엄마의 사무치는 그리움과 사랑으로 생생히 기록한 책이다. 나아가 이보연 작가가 아들 은찬이를 생각하며 난치병 환자들을 위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낸 과정도 엿볼 수 있다. 


은찬이의 아픔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이들에게 이 책은 자신의 삶에 소중함을 느끼고 타인에 진심 어린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삶의 의지를 심어준다.


세상이 주목하지 않은 은찬이의 모습을 담았다. 세상이 은찬이를 백혈병에 걸렸던 아이로만, 킴리아 치료를 받지 못하고 떠난 아이로만 기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은찬이는 네 살 무렵 우연히 만화 속 주인공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장면을 보고는 갑자기 바이올린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칭찬 스티커 100개를 모은 끝에 바이올린을 얻어내더니 이제는 바이올린을 가르쳐줄 선생님을 찾아달라고 했다. 


유치원생이 되고,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은찬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지만 바이올린을 놓지 않았다. 치료 중에도 틈만 나면 콩쿠르 준비를 했고, 항암치료를 하느라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은 아랑곳하지 않고 모자를 툭 덮어쓰고는 대회에 참가해 당당히 상을 받아왔다.


은찬이는 타고난 영재였다. 은찬이의 꿈은 자기처럼 아픈 아이들을 돌보는 의사였다. 비록 은찬이의 책상은 병상 위였지만, 불평 한마디 없이 한자, 영어, 수학 등등 전 과목을 스스로 공부했다. 


차근차근 준비해서 한자 시험도 보고 수능 영어 문제도 거뜬히 풀 만큼 영어 실력도 좋았다. 그만큼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던 아이였다. 거듭되는 항암치료와 재발에 마지막에는 눈이 안 보이고 걷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그동안 공부했던 것들을 떠올리는 등 그 와중에도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항상 어른스럽고 단정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우산 손잡이에 실내화 주머니를 걸면 들고 오기 편하다며 해가 쨍쨍한 날에도 우산을 쓰고 다니는 엉뚱한 아이였고, 춤이랑은 거리가 먼 몸치이면서도 엄마나 병원 누나들을 웃기겠다며 기꺼이 엉덩이를 흔들며 우스운 춤을 추는 재미있는 아이이기도 했다.


어른조차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은찬이는 좀처럼 좌절하거나 우울해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아직 치료 방법이 있다는 사실에,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다. 이처럼 찰나였지만 찬란했던 은찬이의 삶은 우리가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데 용기를 북돋아주고 삶의 귀감이 돼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