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BOOK돋음] 잡아라, 맛과 건강이라는 두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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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BOOK돋음] 잡아라, 맛과 건강이라는 두 토끼

본지가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심신을 회복하기 위해 독서로써 마음을 힐링하는 '책 읽는 힘, BOOK돋움'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일상생활이 멈춘 상황에서 마음의 양식을 얻을 수 있는 독서 생활이 최고의 기회라 여겨집니다. 독서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부모와 자녀 세대가 소통하는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며, 책 읽는 분위기가 잔잔한 물결처럼 번져 코로나 블루가 슬기롭게 극복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 이은진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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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사피엔스 

가이 크로스비 지음, 오윤성 옮김, 북트리거 펴냄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요리 ‘상식’ 중 하나가, 고기를 삶으면 육즙이 더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고기를 육수나 포도주 같은 액체에 넣고 익히면 그 액체의 일부가 고기에 스며들어 수분을 더해 준다고 짐작하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사실 여부를 밝히기에 앞서 먼저 고기의 구조를 살펴보고, 요리법에 따라서 육즙이 더 풍부해지거나 빈약해지는지 알아보자.‘


인간의 창조 행위 중에서 요리만큼 예술과 과학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또 있을까. 저자는 요리 뒤에 숨겨진 역사와 과학, 예술을 친절하게 돌아본다. 


이 책은 인류가 요리로부터 부여받은 영양학적 이점을 발판 삼아 인간으로서의 독자적 길을 개척하는 지점부터 시작한다. 그 이후 마지막 책장까지 요리와 과학적 발견의 고리를 끈끈하게 연결해 낸다.


저자는 역사·화학·인류학·요리 과학을 통합하여 인류의 지난 발자취를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과 과학이 통합된 형태로 앞으로의 일상에 자리 잡을 ‘요리 과학’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맞이할 미래 요리의 세계도 조망한다. 


더불어, 요리에 관한 기존 상식을 뒤엎거나 혹은 더욱 파고드는 이야기와 저자가 애호하는 레시피를 담고 있다. 음식을 맛보고 요리하는 데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탐미하며 지적 배고픔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요리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활동이며, 이는 단순히 음식과 맛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요리의 발전은 인류가 진일보하는 과정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긴 시간에 걸쳐, 인간은 불을 다루고 농경을 시작했다가, 이윽고 과학을 발전시켜서 음식을 만들 때 분자 단위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탐구하는 데까지 나간다. 


달리 말해, 인류가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다양한 요리법을 발전시킨 대서사를 써 온 끝에, 현재 약 80억에 달하는 인간들이 그 어느 때보다 긴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30년 넘게 음식 산업에 종사했으며 현재 하버드대에서 음식 과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건강한 식생활이라는 목표를 중심에 놓고 요리 예술의 역사와 과학을 탐색한다. 인류가 요리를 발전시킨 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피고, 건강과 맛의 미스터리를 푼 획기적인 사건을 과학적으로 이야기한다.


저자는 요리를 전문적으로 할 때뿐 아니라 일상의 음식을 만들 때도 요리 과학을 반드시 배워야 하는 이유를 설파한다. 이는 영양과 맛 모두 더 발전시킬 뿐 아니라 만성적 질환을 줄이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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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려운 과학 주제를 일반인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엄선한 레시피를 통해 과학적 원리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요리를 예술과 과학의 완벽한 융합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요리: 더 비기닝’에서는 200만~1만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불의 발견이 가져온 요리의 탄생, 그 결과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음식을 먹음으로써 획득한 생물학적 진화, 인류 최초의 레시피 등 인간이 어쩌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요리하는 종이 되었는지 그 기원을 들여다본다.


‘게임체인저 농경의 등장’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술 발전이라 일컬어지는 ‘농경’이 일으킨 요리의 거대한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농경이 시작된 이후 수천 년간 나타난 새로운 음식과 요리법을 보면 이 시기가 인간의 발전에 얼마나 결정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근대 과학이 쏘아 올린 요리 예술’에서는 과학이 중세 암흑기를 거쳐 16~18세기 과학의 르네상스를 맞으며 우리가 아는 현재의 요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요리의 기반을 닦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다.


‘요리 예술이 원자 과학을 만났을 때’에서는 원자론이 과학을 뒤바꾼 풍경을 비춘다. ‘고기를 불에 구우면 매혹적인 풍미가 발생하는 이유’, ‘감자의 녹말을 오븐에 구우면 소화하기 쉽도록 부드럽게 변하는 이유’, ‘채소를 물에 넣고 삶으면 부드러워지는 이유’를 찾은 것은 모두 존 돌턴의 원자론 덕분이었다. 

 

더불어 현재 널리 쓰이는 통조림의 기원과 초기 통조림이 가져온 비극적 참사를 포함해 19세기 예술과 과학이 만나면서 요리의 발전상에 벌어진 사건들을 들춘다.


‘요리 혁명’에서는 20세기 이후의 현대 요리법과 더불어, 200만 년 동안 인류와 함께했음에도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자 맛과 냄새와는 다른 ‘풍미’의 세계를 파헤친다. 또한 요리를 ‘덧없는 예술’ 혹은 ‘차가운 과학의 산물’로 봐야 하는지 등 20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요리를 둘러싼 다양한 시선을 분석한다.


‘지금은 요리 과학 시대’에서는 ‘백종원 레시피’, ‘먹방 유튜브’ 등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에 진심인 이 시대를 이을 ‘요리 과학 시대’를 그려 본다. 맛뿐 아니라 건강을 요리하는 법을 설명하면서 요리가 어떻게 대중의 품으로 들어오게 됐는지 알아본다.


‘좋은 성분과 나쁜 성분, 요리 과학의 미래’에서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좋고 나쁨을 논하고, 앞으로 요리 과학이 어떤 길을 걷고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게 될지 살펴본다.


각 장마다 풍부하게 수록된 별면에는 요리·음식·맛에 대해 우리가 익히 아는 상식과는 다른 이야기들이 담겼다. 인간의 미각은 쓴맛·짠맛·신맛·단맛 4가지만 느낄 수 있다고 오랜 기간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감칠맛’과 ‘지방맛’이 새롭게 발견되었는데, 이를 중심으로 미각의 세계를 탐구한다. 마요네즈와 비네그레트 소스에는 놀랍게도 기름과 식초의 비율이 똑같이 4:1 비율로 들어간다. 


그런데 왜 마요네즈는 비네그레트 소스만큼 기름지지 않을까? 밀가루로 된 음식을 먹으면 살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라 파스타 역시 건강하지 않은 음식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파스타가 생각보다 꽤 건강한 음식이며 심지어 당뇨병 환자도 섭취가 가능하다면 어떨까.


이 외에도 ‘고기를 삶으면 육즙이 풍부해질까?’, ‘마라탕·족발·카레라이스에 들어가지만 유독 한국인만 잘 모르는 아시아 대표 식재료’, ‘돼지고기를 고르는 절대 법칙’처럼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호기심이 샘솟을 이야기들과, ‘처진 감자와 포슬포슬한 감자의 차이’, ‘글루텐의 정체’, ‘위대한 요리사만 안다는 ○○○’ 등 과학적으로 심도 있는 분석을 원하는 독자의 궁금증을 충족시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맛과 건강을 모두 요리할 수 있는 레시피도 실려 있다. ‘조개 소스 링귀네 파스타’, ‘해선장 바비큐 소스 돼지갈비’, ‘맛있고 몸에 좋은 매시트 콜리플라워’ 등 음식 과학자인 저자가 엄선한 7개의 레시피에는 과학적 분석, 음식에 관한 진솔한 사연, 쉽고 친절한 요리법이 잘 버무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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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이보그가 되기로 했다

피터 스콧-모건 지음, 김명주 옮김, 김영사 펴냄


‘통계적으로 나는 2년 후 죽는다. MND는 내가 죽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거부한다. 산송장이 되어 ‘연명’하는 것도 거부한다. 또한 나는 다른 모든 MND 환자들을 내버려두는 것도 거부한다. 우리는 군대를 조직하고, 사회운동을 일으킬 것이다. 이건 반란이다!‘


한 편의 SF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다. 이는 놀랍게도 실화이며, 먼 미래의 일이 아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세계적인 로봇공학자 피터 스콧-모건은 2017년 루게릭병으로 2년의 시한부를 선고받았다. 


하루를 살아도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하겠다는 열망으로, 자기 몸을 AI와 융합하기로 결심한다. 로봇공학자로서의 전문지식과 전문기관의 도움을 총동원해 인간 피터에서 AI 사이보그 ‘피터 2.0’으로 진화했다. 


이 책은 사이보그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변화의 최전선에서 마주한 절망과 희망의 기록이다. 생존과 기술적 진보를 위해 자기 몸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로봇공학자의 특별한 도전이 펼쳐진다! “나는 계속 진화할 것이다. 인간으로는 죽어가지만, 사이보그로 살아갈 것이다.”


이 책은 세계적인 로봇공학자의 실화다. 저자 피터 스콧-모건은 2017년 루게릭병(MND)으로 2년의 시한부를 선고받는다. 그러나 절망도 잠시, 자기 몸과 AI를 융합해 인류 최초의 사이보그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루를 살아도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장애와 질병, 죽음을 정복하고자 했다. 주어진 삶이 아닌 새로운 삶을 선택한 것이다.


불치병 앞에 좌절하지 않고 생존의 길을 모색하며 직접 써내려간 어느 로봇공학자의 특별한 도전이 펼쳐진다.


MND는 발병 1년 이내 30퍼센트가 사망하고, 2년 내에 50퍼센트, 5년 내에 90퍼센트가 사망한다. 피터는 MND 환자의 사망 원인은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기술적 문제에 더 가깝다고 판단했다. MND 환자들은 대개 음식을 삼킬 수 없어 굶어 죽거나, 숨을 쉴 수 없어 질식사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MND는 지극히 가혹한 병이었다. 생명 유지 장치를 사용해 살아 있다 해도, 꼼짝도 할 수 없이 눈만 움직일 뿐이다. 그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라고는 지루한 병원 천장뿐이다. 하지만 첨단 기술의 발전 덕분에 상황이 달라졌다.‘


피터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로 한다.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위, 결장, 방광에 관을 삽입하는 수술인 트리플 오스토미를 진행했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생리적 욕구를 간병인의 도움 없이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뒤이어 침이 기도로 넘어가 질식하는 일을 막기 위해 후두적출 수술을 받았다. 이로써 수명을 연장시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목소리를 잃게 된다. 이후 세계 최고의 IT 기업들과 긴밀히 협력해 실제 목소리와 유사한 합성 음성을 구현했다. 이때 만들어진 음성 시뮬레이터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시스템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피터는 자신의 얼굴을 스캔한 최신 AI 기반의 3D 아바타, 즉 디지털 트윈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등 사이보그로서 사람들과 소통했다.


2017년 2년의 시한부를 선고받았던 피터는 2019년 10월 ‘피터 2.0’으로 변신을 완료했다. 부분적으로는 사람, 부분적으로는 기계, 그러나 분명 살아 있는 존재로 말이다. 이 영화 같은 이야기는 2020년 8월 영국 공영방송 채널 4에서 다큐멘터리 <피터: 인간 사이보그>로 방영됐다. 뒤이어 자신의 뇌와 AI를 융합해 피터 3.0으로서 불멸의 존재가 되길 꿈꿨지만 안타깝게도 2022년 6월 타계 소식을 전했다.


‘이건 인간의 정의를 다시 쓰는 일이다. 죽지 않을 궁리나 하며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나는 이제 더 오래 사는 방법 같은 데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이제부터는 나 같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번영’을 누릴 방법을 찾아나갈 것이다.‘


피터 스콧-모건의 사이보그 진화 프로젝트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인간은 무엇이고 삶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기술의 진보가 이끈 다양한 선택지를 인간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과학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피터는 그저 살아남고 싶은 게 아니었다. 살아 있는 동안 자유 의지를 발휘하며 느끼고 표현하며 존재하기를, 번영을 누리며 잘 살기를 희망했다. 자신처럼 극도의 장애를 앓는 이들이 보다 다양한 선택지 안에서 삶을 영위하고 어떤 순간에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자기 몸을 기회로 삼아 과학의 새 지평을 열고 인간의 정의를 바꾸었다. 또한 AI의 발전 방향이 인간과의 경쟁 구도가 아닌 인간 중심으로 재구축했다. 그렇게 사이보그가 됨으로써 인류의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했다. 인류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해나가야 할지 직접 보여준 것이다.


사이보그로서의 삶은 아직까지 개인의 선택의 영역으로 남아 있지만, 피터의 도전은 그 선택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그는 과학의 궁극적 목표가 개인의 배경과 상황, 포부와 관계없이 모두 번영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믿으며 자신의 도전이 인류의 번영으로 확장되길 기대했다. 그가 남긴 과제는 다음 세대의 과학자들이 완성해나갈 것이다.


영국 상류층으로서 피터는 명문 교육을 받으며 부유하게 자랐다. 그러나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는 편견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삶을 낙관적으로 해석했다. ‘가장 잔혹한 병’으로 불리는 MND를 진단받고서도 희망을 떠올렸던 건 피터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피터는 과학의 길을 선택했다. 컴퓨터 시대가 올 것이라는 확신으로 당시 기성세력의 암묵적 규칙인 옥스브리지가 아닌 임피리얼 칼리지에 입학해 로봇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 ADL 본사에서 경영 컨설턴트로서 정부·경제 기관을 움직이는 시스템인 암묵적 규칙을 해독해, 변혁을 방해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들을 찾아내고 허물었다. 2005년에는 오랜 연인 프랜시스와 시민 동반자 관계를 혼인 관계로 전환한 영국 최초의 동성 부부가 됐다. 한평생 통념에 맞서 도전하는 인생을 살았다.


이 모든 도전의 밑바탕에는 남편 프랜시스의 지지와 사랑이 있었다. 사랑이 없었다면 피터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랑으로 피터는 불치병의 한계에 맞서 생존과 기술적 진보를 향해 나아갔다. 피터는 프랜시스와 함께 세상과 싸웠으며 사랑으로 모든 것을 정복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