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그린노트] 지속가능성 위한 '소비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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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그린노트] 지속가능성 위한 '소비의 진화'

자연스럽고 건강한 일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가 늘고 있다. 우리가 망가뜨려온 것과 자연이 주는 회복의 힘 사이에서 고민하며, 도시에서 무해한 일상을 탐구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본지는 편하고 익숙해서 누려온 것이 가진 함정, 우리가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 등 차곡차곡 쌓아온 경험들을 기록하고 ‘그린라이프 길잡이’로 활용할 만한 책을 연이어 소개한다. 지구를 소중히 여기는 건 곧 나를 돌보는 일이기에, 기꺼이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들을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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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데일리] 살인적인 방세와 높은 물가로 손꼽히는 영국 런던. <0원으로 사는 삶>(박정미 지음, 들녘 펴냄)은 런던에서 생활하다 돈을 쓰지 않고 살겠다는 저자의 결심에서 시작한다. 


저자가 처음부터 무지출이라는 행위에 어떤 중요한 의미를 담아 영향력을 미치고자 0원살이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매일같이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고자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이어가고, 사랑받고 관심받으려 치장하고 소비하는 사이, 불안은 커지고 삶은 노동과 소비의 굴레에 철저히 맞춰졌다. 


숨을 쉬며 방안에 누워있는 순간에도 집세가 새어나간다. 문득 저자는 스스로의 인생과 시간, 존재가 ‘돈을 벌기 위해’쓰이고 있음을 알아챘다. 

 

돈을 벌지 않아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돈이 없어도 살 방법을 찾기 위해, 살아 있는 그 자체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어 저자는 결심했다. 


저자는 영국 웨일스에 있는 자급자족이 원칙인 유기농 농장 ‘올드 채플 팜’부터 남서부 서머싯의 친환경 공동체 ‘팅커스 버블’, 자전거의 도시 브리스틀의 자전거 수리 전문 카페 ‘롤 포 더 소울’, 중부 우스터를 지나 런던에 돌아왔다. 노동력 교환 커뮤니티에 장기간 머물 수도 있었지만, 저자는 단순한 생존에서 나아가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기로 한다. 


도시에서도 0원살이를 이어가기로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트, 카라반에 사는 모바일 리빙부터 버려진 창고나 공장을 거처로 삼는 웨어하우스 리빙, 빈 건물을 점거하는 스 퀏팅까지. 대안 주거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삶의 방식과 거주 방법 자체를 변화시키고자 실천한다.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다양한 주거 방식 자체가 주거 문제에 대한 저항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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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떠나 독일과 폴란드, 리투아니아에서도 여정은 이어진다. 헝가리에서는 히피들과 함께 지내며 생존과 사랑을 초월한 세계를 만난다. 세르비아에서 난민들을 만나고, 마케도니아, 그리스를 거쳐 저자는 평화의 열쇠를 찾기 위한 흐름에 자신을 맡긴다.


‘0원살이’여정은 두 가지 질문에서 시작됐다. ‘어떻게 먹고살지?’‘어떻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지?’그리고 이 두 질문은 생존과 사랑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욕구에서 비롯됐다. 저자는 작고, 적고, 흐르는 삶에서 ‘자연’과 ‘자유’‘행복’이라는 세 가지 보물을 찾았다. 돈을 쓰지 않고 살아가려던 결심의 새로운 결실이다.


몸을 써서 식사를 해결하고, 버려진 음식을 먹고, 중고 의류를 입어도 저자는 외롭지 않다. 도리어 ‘충분’해진다. 불안과 경쟁으로 가득찬 사회에서 인류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삶의 방식을 찾아가며 저자는 진리를 찾았다.


이 책은 자본주의와 세계화된 경제구조 자체를 거부하자고 외치지 않는다. 다만 저자는 인류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소비가 ‘진화’하기를 바란다. 깊은 산속이든, 도시이든, 농장이든,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명을 기반으로 하는 ‘삶’을 창조하는 노동이라면 기꺼울 것이다.


저자는 한국에 와서도 빈집을 고쳐 살고 있다. 지금은 지리산 자락 외딴 숲속에 있는 오두막에 산다. 저자의 산책 코스는 지난 6년간 바다에서 논두렁으로, 산으로 바뀌었지만 삶의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고정된 돈벌이를 하지 않고, 최소한의 소비만 하며 산다. 그러나 소비를 위한 삶을 살지 않는다. 돈에 대한 거부감도, 엄격한 규칙도 없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흐름에 맡긴다. 저자의 삶에서 가능성이란 돈의 유무와 상관없이 흐른다. 독자는 저자의 여정에 함께하며 ‘소비’와 ‘환경’그리고‘진리’를 이어볼 수 있다.


자신의 소비와 삶의 양식을 결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무소비’, 이 작은 혁명은 자유와 평화, 사랑으로 인류를 작금의 위기에서 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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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대기와 토양 오염, 생물종 멸종, 코로나 팬데믹, 전쟁과 빈곤 문제, 갈수록 인간은 자연환경에서 멀어지고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무력한 개인으로 분노와 좌절감에 빠졌던 그들은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되어가는 환경, 이와 연결된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자신들의 행위를 낱낱이 관찰하며 깨닫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태적 삶의 기술임을 말이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일로나 코글린·마렉 로데 지음, 슬로비 펴냄)에는 개인의 태도부터 의식주‧정치‧사회문화 전반에 이르기까지 욕망의 흐름을 들여다보고, 문제 인식을 넘어 가치관과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는 생태적 삶의 실천법이 담겨 있다.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 기쁨을 만끽하며 더 큰 변화를 향해 연대해 나아갈 것, 바로 이것이 고도화된 소비중심사회에서 길을 잃은 우리에게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다.


자본주의 사회는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삶을 부추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소비의 파도에 휩쓸려 버린다. 

 

매년 10억 벌이 넘는 멀쩡한 옷이 수거함으로 들어가고, 쏟아져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로 전 세계 담수의 4분의 1이 오염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생활하는 데 필요한 재화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앞에 오는지 모른 채 살고 있다.


우리의 사고 체계나 문제 해결 방식은 대개 정형화되어 있어서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한쪽으로는 자원을 절약하면서 다른 쪽으로는 낭비해 버리는 모순적인 행동도 잘 저지른다.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는 데 걸림돌은 삶의 태도 문제부터 일상과 일, 정치 사회 문제에 이르기까지 두루 퍼져 있지만 서로 촘촘히 연결돼 있다. 책에 담긴 열여섯 가지 주제에 각기 얽혀있는 기후와 인간과 동물의 이야기가 그래서 중요하다.


가령 ‘먹을거리’ 주제에서는, 산업화된 생산 ‧ 유통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오는 유기농 상품이 과연 온전한가 하는 물음으로 시작해, 그 이면에 누군가의 희생이 있고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이런 행태는 세계 어디서나 어느 상품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소비자로서 이런 문제적 시스템의 일부가 되지 않을 방법을 알려준다. 전 인류에 돌아갈 만큼 충분한 식량이 있음에도 불공정한 분배로 인해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이 있는 이유도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육류를 과다 섭취해 건강을 해치고, 다른 누군가는 고기가 필요해도 구하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이산화탄소 배출은 점점 늘어나 지구 대기는 더 뜨거워지고 생물종이 감소한다.


이렇듯 우리가 지구에 만연해 있는 문제에 목소리를 낼 때 전체를 보는 관점과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행동 중 무엇도 배제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전체를 보려 하지 않으면 자칫 문제를 작은 영역에만 담아두고 만족해 버리기 쉽다는 것이다. 유기농 제품을 소비하면서 세상을 구하고 있다고 자족하는 것처럼 말이다. 모두 두 저자의 경험에서 나온 생활 밀착형 이야기다.


이런 정보는 소비 행동에 바로 영향을 준다. 구체적으로 알게 되면 누구나 더 나은 쪽을 선택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난이도별로 깨알 같은 실천법(전환을 위한 행동)을 소개하면서 모든 사람이 흥미롭게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그동안 소비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그로 인해 자연환경은 어떻게 파괴됐는지,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과제와 행동을 담았다.


소비에 저항하기, 의식하고 장보기, 가치 만들기, 새로운 물질주의자 되기, 비건 지향… 저자들의 일상은 전 세계적으로도 ‘힙’한 라이프스타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제비’(제로 웨이스트+비건 줄임말) 활동도 대표적인 예다. 


제비들은 친환경 물품과 채식 식당을 이용하고 중고 옷 가게와 제로 웨이스트 상점을 즐겨 찾으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등 세상을 바꾸는 활동에 참여한다.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함께 실천하고 그것을 SNS로 알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결국 세상을 바꾸어간다는 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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