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산책] 한국 기업과 직장인의 현주소.. 마이클 프렌티스 '초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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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산책] 한국 기업과 직장인의 현주소.. 마이클 프렌티스 '초기업'

  • 손유지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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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업 - 함께 미래를 열어갈 한국 기업과 MZ세대를 위하여 

마이클 프렌티스 지음, 이영래 옮김, 안타레스 펴냄

 

'한국의 나이든 남성 관리자를 둘러싼 여러 문제는 동아시아 샐러리맨에 대한 더 넓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의 경우 이 성실하고 착실한 화이트칼라 남성들은 전후 일본이 평화로운 개혁을 통해 중산층 사회로 변모하는 데 이바지했고, 그 이미지는 반세기 동안 동아시아 자본주의에 관한 학술 문헌에 단골로 등장했다. 오늘날 중산층의 의미를 포함한 샐러리맨 라이프스타일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는 있지만, 샐러리맨은 현재까지도 사회적 평가의 기준이자 목표가 되는 인물 유형으로 남아 있다. 정치학자 로빈 르블랑(Robin LeBlanc)이 ‘망령(ghost)’이라고 부른 ‘가장의 이미지’다. 한국의 화이트칼라 노동자 직장 생활을 둘러싼 서사에도 이와 유사한 미학과 특성이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에는 매우 다른 맥락에서 나타났다. 사회학자 장경섭이 ‘압축된 근대화’라고 표현한 배경 속에서 농촌 생활은 도시 직장 기반 봉급자 생활로 급격히 전환됐다. 이는 1960~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추진이 촉발한 대격변의 일환이었다. 회사원이나 직장 생활과 같은 인정받는 구별을 완성하는 것이 현대화하는 세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일반적인 기준점이었다.'

 

오늘날 고도화한 민주주의·자본주의 사회에서 조직 내 지위나 연공서열에 따른 위계는 ‘구시대의 망령’으로 치부된다. 투덜대며 한숨 쉬어봐야 변하는 것은 없다. 그러면 그럴수록 얼른 늙어 퇴물이 되려고 기를 쓰는 몸부림으로만 비칠 뿐이다. 

 

기업도 이를 안다. 조직에 해가 된다고 판단해 갖가지 명목으로 서둘러 정리한다. 성과마저 미약하면 두말할 것도 없다. 하물며 이 잣대는 젊은 세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현실이 이렇다. 

 

그런데 ‘사실’ 판단을 해야 하는 현실을 두고 여전히 ‘가치’ 판단만 하고 있으니 문제가 더욱 심화한다. “위계질서는 좋고(나쁘고), 수평화는 나쁘다(좋다)”는 이분법으로는 세대 갈등이나 세대 간 대결 구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서로를 ‘꼰대’와 ‘애송이’로만 보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기성세대 관점에서 MZ세대 성향이 바람직하든 바람직하지 않든 간에 이들이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중심 세대라는 현실을 ‘사실’ 판단해야 한다. MZ세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의 경험과 노하우를 경시해서는 곤란하다. 취하고 따를 것을 ‘사실’ 판단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늙고 언젠가 죽는다. 모든 세대는 뜨고 진다. 관습적인 위계질서는 끝났다.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기성세대는 힘이 있을 때 기득권을 지키는 게 아닌 힘이 있을 때 이후 세대가 미래를 잘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더욱이 ‘이윤 추구’라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는 기업의 존재 근거를 찾을 수 없게 됐다. “조직의 이익이 나의 이익”이라는 기치 또한 주저앉은 지 오래다. 모든 주입 시도는 실패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일찍부터 이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단순한 위계질서만으로는 조직이 영속할 수 없기에, 끊임없이 혁신을 도모하고 구성원들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기업, 즉 ‘초기업(supercorporate)’을 지향해왔다. 

 

‘초기업’은 개인의 능력 구별과 동등한 참여 그리고 ‘탈위계’를 실현하려는 기업의 궁극적 이상향이다. 저자가 한국을 ‘초기업 사회’로 바라본 것은 기업 규모 말고도 기업이 사회에서 수행하는 역할, 특히 사람들의 정체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 관점이다.

 

21세기 들어 기존 한국 사회와 기업의 일반적 이미지에 ‘탈위계’라고 표현할 수 있는 미묘한 ‘단층선’이 생겼다. 탈위계는 한국 기업이 20세기 여정 후반까지 군대식 ‘톱다운(top-down)’으로 상징되는 산업화 근대성에서 지속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탈위계 사회의 한국 기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어떤 이들에게 탈위계는 ‘동등한 참여’ 즉, 나이와 역량이 다른 직원들이 직급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하고, 서로 협력하고, 사회적 압력에서 벗어난 긍정적인 팀 경험을 가능케 하는 수직적 직장 규범 및 조직 구조의 붕괴를 뜻할 수 있다. 

 

동시에 어떤 이들에게 탈위계는 ‘공정한 구별’, 다시 말해 나이, 성별, 연공서열에 대한 우려 없이 개인의 기량, 노고, 성과가 적절히 구분되고 인정되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평가를 의미할 수 있다. 부정적 형태의 관습적 위계가 여전히 존재하는 까닭은 ‘그 시절’, ‘그 사람’, ‘그 관행’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더 기본적인 문제는 개인의 차이를 제대로 구별하거나 아니면 확실히 없애고자 애쓸 때 조직과 신구세대 개인 각각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있다.

 

갈등 당사자들로서는 주관적 이해관계와 사고방식을 벗어나기 어렵다. 자신과 생각을 함께하는 세대끼리 뭉치게 돼서 편 가르기와 대결 양상이 더욱 공고해질 뿐이다. 이럴 때는 제삼자인 외부자의 시선 속에 우리 모습을 투영해보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외부자가 그런 일을 직업으로 삼는 인류학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인류학의 목적은 사회, 문화, 경제의 작동 원리에 관한 새로운 개념과 사고방식을 제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가 경험한 현재의 한국 직장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아울러 구태의연한 위계질서를 벗어던진 한국 기업은 앞으로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할까. 오롯이 한국 기업과 직장생활만을 연구해온 인류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21세기 한국 기업들이 추구해야 할 비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긴장 요인을 주도면밀히 살핀다. 

 

이 책이 초점을 맞춘 대상은 한국 대기업 사무직 직장인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 사무직은 오랫동안 안정된 직업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급속한 시대 흐름과 더불어 21세기 ‘탈위계’에 돌입한 한국에서 이 전형적 인식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저자는 한국 기업이 엄격한 위계를 강조했던 과거의 체제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오늘날 노동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모호함이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기업은 여전히 개인의 경제적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기능하기에 벌어지는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한국 직장인은 어쨌든 자신이 일하는 기업에서 성장해 잘살기를 희망한다. 이 사실은 기성세대든 MZ세대든 다르지 않다. 그런데 여기에서 일종의 모순이 나타나는데, 직원들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자기 능력에 대한 인정인지 바람직한 조직 시스템인지를 두고 엇갈리는 의견을 내놓곤 한다. 

 

저자는 스스로 직장생활 한복판에 뛰어들어 체험한 한국 기업 상도그룹(가명)을 심층 분석함으로써 기업이 직원들의 욕구를 반영한 위계 없는 새로운 조직 체계를 구축하고자 할 때 일어나는 갖가지 양상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이를 따라가다 보면 기업과 조직이 맞닥뜨린 문제가 세대 간 대결 구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류학자로서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한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학문적으로 분석할 뿐이다. MZ세대 편에 서서 기성세대를 ‘꼰대’로 비판하거나 그 반대 관점에서 MZ세대를 ‘애송이’로 묘사하지 않는다. 

 

독자는 세대 혐오로까지 확대된 ‘나이든 (남성) 관리자’라는 이미지의 실체가 일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MZ세대의 합리적 주장에도 모순적인 요소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저자는 학자인 자신에게서도 불합리한 구별 짓기 요소를 발견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기성세대이든 MZ세대이든 간에 저마다 느끼게 되는 성찰 지점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지점을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삼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