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산책] 살아내고 인고한 시간들.. 이원이 '이상한 나라의 평범한 심리상담소'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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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산책] 살아내고 인고한 시간들.. 이원이 '이상한 나라의 평범한 심리상담소' 外

  • 손유지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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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평범한 심리상담소 - 누구에게나 상담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이원이 지음, 믹스커피 펴냄

 

오랜 시간 상담소에서 내담자와 상담하며 사람들의 마음건강 증진에 기여해온 저자는 상담일에 대해 내담자와 ‘함께 걷는 일’이라고 소개한다. 아울러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글로써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우리네 인생에서 어떤 아픔이라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정답 같은 것은 없다. 그렇게 아프기까지 수없이 많은 상처와 좌절이 켜켜이 쌓여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어떻게 몇 번, 몇 달 만에 아무것도 없었던 일처럼 만들 수 있겠는가. 

 

다만 상처가 이해되고, 나 자신이 좀 더 이해될 때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상담이라는 치료과정에서 새로운 희망을 얻고 한 발짝, 두 발짝 내딛는 것이다.


지독하게 고독하기도, 고통스럽기도 한 여정을 상담사는 내담자와 함께 걷는다. 그렇게 살아내고 인고한 시간이 자신의 아픔에 대한 정답이 된다. 괴로운 현실에 몸부림치는 내담자에게, 읽는 이에게 저자는 상담 전문가이자 친근한 ‘언니’나 ‘누나’로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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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사는 게 힘들까? -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동양북스(동양문고) 펴냄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멀쩡하고 사회생활도 무난하게 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 그런데 병원에 가면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면서 주변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어려워하는 사람, 언어적·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취약해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소외감과 불안감 같은 불안장애를 느끼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회피형 인간’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오카다 다카시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그레이존’ 인간 유형이라고 설명한다. ‘그레이존(gray zone)’은 말 그대로 경계 영역에 해당된다는 뜻으로 자폐증이나 ADHD, 아스퍼거, HSP 등 발달장애와 비슷한 증세가 있지만 장애라고 진단 내리기는 힘든 사람들을 말한다.


그레이존의 유형은 매우 폭넓다. 성인 ADHD 증세를 겪거나, 항상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성공했으면서도 마음이 뻥 뚫린 것처럼 공허함이 강하거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거나, 조그마한 소리에도 움찔움찔 놀라거나, 운동신경이 너무 둔해서 사선으로 걷는다거나 하는 등등 다양한 증세가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사람들, 딱히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너무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 나이가 들수록 적응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사람들의 속마음과 인간관계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코로나19로 사회성과 관계력이 퇴화하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받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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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의 도시 

최도은 지음, 소원나무 펴냄

 

이 책은 혐오와 상처, 슬픔과 불안이 가득한 세계에서 온전한 ‘나’로 살아가고 오롯이 ‘나’를 지켜 내기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그동안 만나지 못한 이야기일 수도, 혹은 오랜 시간 지나온 세계의 기억일 수도 있다.

 

저자는 때론 뜨거운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때론 따끔한 경고를 보내기도 한다. 그 담담한 시선을 한 컷 한 컷 따라가다 보면 잠시 생각을 멈출 수도, 오래 감정을 누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림 속에 다양한 이야기를 숨겨 놓았다. 풀과 나무가 지르는 비명에 방관한 적, 무심코 던진 말에 괴물이 되어 버린 적, 속으로 묻고 묻었던 증오와 험담이 자신도 모르게 쏟아져 나온 적, 이게 다 너 때문이라며 이유를 찾고 탓을 얹은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모두가 깊이 공감할 내용들이다.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딘가에 전시된 모형처럼 책 속에 박제돼야 할 이야기가 아니다. 한 컷 한 컷 찬찬히 쫓다 보면 책장을 덮는 순간 어느새 그 그림이 맘속 깊이 크나큰 울림으로 옮겨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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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세미나 - 체제 이행기의 사유와 성찰 

김규항 지음, 김영사 펴냄 

 

기업가 정신, 노동자의 상상력과 자율성, 혁신과 공정의 강조 그리고 인공지능의 등장과 같은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인류는 생산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처럼 보인다. 

 

다른 한편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침체, 노동 불안정성, 생태기후 위기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현상만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작동방식을 살필 때다.


<예수전>, <B급 좌파>의 비판적 지식인인 저자는 특유의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자본주의의 생성, 발전, 쇠퇴의 메커니즘을 밝히고, 오늘날 역사 속의 한 생산양식으로서 자본주의가 늙고 노쇠했음을 드러낸다. 

 

노쇠한 체제 위기와 새로운 질서 탄생 사이, 이행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에 대한 사유와 성찰을 담았다. 특히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와 전혀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노동자 계급 내 계층 격차를 중요하게 본다. 대다수 노동자가 비슷한 처지였던 19세기 자본주의와 고도로 발달한 현재의 자본주의는 다르기 때문이다. 

 

거스를 수 없이 강력한 자본주의 체제를 살아온 우리가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겨온 생각과 행동을 의심하고 질문을 던져보도록 돕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최신의 자본론. 유토피아는 없지만 최소한의 사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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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 예술의 시대 - 챗GPT가 말하고 DALL·E가 그리는,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 

김대식 김도형 이완 김혜연 김태용 DALL·E2 지음, 동아시아 펴냄

 

인공지능을 위시한 이 시대 가장 첨예한 신기술에 항상 주목해 왔던 뇌과학자 김대식이 이번에는 생성AI를 활용한 AI 그림의 가능성에 눈을 돌렸다. 더불어 네 명의 예술가가 여기에 동참했다. 

 

영화감독 김태용, 그래픽 디자이너 김도형, 현대예술가 이완, 무용가 김혜연이다. 한 명의 인공지능 전문가와 각기 다른 전문 분야의 예술가 네 명의 만남은 다소 모험적인 질문으로 시작됐다. 예술가들이 AI와 협업해 그림을 ‘생성’한다면 어떤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예술가의 상상력은 ‘일반인’의 그것과 얼마나 다를까.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순수한 흥미로부터 시작했던 프로젝트는 작업을 거듭하는 동안 점차 예술가들의 창작욕을 각자의 방식대로 자극해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AI그림을 시도한 적이 없었던 영화감독 김태용은 작업을 진행하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며 소회를 밝힌다. 

 

그가 시도한 작업은 ‘달리’를 통해 실제로 한 편의 영화를 찍기에 앞서 으레 하는 것과 같은 컨셉아트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평소에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시였다고 하는 이성복 시인의 〈남해 금산〉을 소재로 삼았다.


〈남해 금산〉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게 될까. 어디가 로케 장소로 어울리고, 누구를 주인공으로 삼으면 좋을까. ‘달리’를 통해서 수만 년 전의 고대유적이 묻힌 사막과,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이상’의 여주인공, 그리고 한국어로 쓰인 한 편의 시가 한 편의 영화로 거듭났다. 

 

김태용 감독은 이 오롯한 과정을 거치며,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온갖 것들이 이 작업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실감했다. 치열한 고민과 격렬한 토론, 다소 잔인한 취사선택까지. 이에 그들은 질문한다. AI를 통한 ‘생성’이 ‘창작’이 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