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산책] 도시 한복판 공간의 힘.. 정은혜 '지리를 알면 보이는 것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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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산책] 도시 한복판 공간의 힘.. 정은혜 '지리를 알면 보이는 것들' 外

  • 손유지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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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를 알면 보이는 것들 - 공간은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짓는가 

정은혜 지음, 보누스 펴냄

 

흔히 지리는 공간을 다루는 학문, 역사는 시간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둘을 분리한 채 공간과 시간을 해석할 수는 없다. 시간은 곧 ‘공간의 변화량’이기 때문이다. 

 

공간의 변화란 그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누적과 같다. 즉 공간을 둘러싼 다양한 사건을 해석할 때 비로소 우리는 ‘현상을 이해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통찰의 가장 기초가 되는 지식이 지리학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리에서 관심을 가지는 대상은 땅, 바다, 대륙, 산, 강, 하늘 같은 자연뿐만이 아니다. 인간이 생활하고 살아가는 모든 공간과 그 공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현상들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현대 지리학이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도로들이 퍼져나가는 파리의 방사형 도시구조, 계획적인 도시 설계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최초의 현대 도시 브라질리아, 시대의 요구에 따라 공간의 모습이 계속해서 바뀌어 온 청계천과 광화문 광장 등 지리학의 진정한 실용성은 공간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데 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넓고 복잡하다. 우리가 정치, 외교, 환경, 경제, 사회 등 그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고 탐구하든 그 뒤에는 반드시 지리적 맥락이 존재한다. 

 

기본적인 지리 지식을 갖추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내 주변 지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더욱 깊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특히 우리는 ‘지리’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지도, 고고학, 풍수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리는 이런 낡고 전통적인 통념을 아득히 넘어서는 ‘공간의 과학’이다. 

 

모든 사람은 공간 속에서 살아가며, 공간을 배제한 삶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것은 곧 인간을 탐구하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은 공간을 어떻게 바꾸고, 공간은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가?’라는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대답하고자 하는 학문이 바로 인문지리학이다.

 

지리적 호기심은 사소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일례로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 보면 ‘왜 고가 도로 옆에는 늘 공장이 자리 잡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곤 한다. 실제로 고가 도로 아래에는 대부분 크고 작은 공장과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때 지리 지식을 갖추고 있다면 원료 산지와 시장의 관계를 보여주는 입지의 원리, 집적경제로 인한 경제적 상호의존성 등 그 공간의 존재 이유를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고, 나아가 이 지리 현상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규정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공간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이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고,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으며, 미래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단서다. 

 

작게는 내가 사는 집, 동네 골목, 공원부터 크게는 나라, 대륙, 세계까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공간’을 지리적으로 관찰하고 이해를 넓혀갈수록 내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것들이 이유 없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경관을 텍스트(text)화한다는 말이 있다. 주변에서 지나치는 모든 경관은 절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관을 통해 특정 의미를 전달하려는 저자가 있으며, 저자가 경관에 새겨놓은 의미를 소비하는 독자가 존재한다. 

 

저자는 경관을 조성해 특정 가치나 신념을 전달하고자 한다. 그 경관을 바라보는 독자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경관에 내포된 가치나 신념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글과 마찬가지로 경관의 의미가 모든 독자에게 동일하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같은 장소를 보더라도 독자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징을 내포한 대표적인 경관의 예시로 백악관이 위치한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을 들 수 있다. 내셔널 몰은 푸른 잔디로 채워진 대형 공원이다. 여기에는 링컨기념관과 워싱턴 기념비, 국회의사당이 정확히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이 설계는 철저하게 의도된 것으로 대통령인 링컨, 워싱턴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사당을 같은 선상에 배치하여 위대한 업적을 쌓은 전직 대통령과 미국 국민이 서로 평등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백악관은 이 주요 라인과 다소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이는 백악관이 군림하는 권위자의 공간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의 공간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지리학을 공부하는 목적 중 하나는 이러한 경관의 숨은 의미를 읽고 해석하는 것이다. 모든 공간에는 숨겨진 의미와 가치가 있다. 공간에 담긴 본질을 이해하는 순간 더 나은 삶을 위한 소중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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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력 수업 - 아날로그 문화에 관한 섬세한 시각 

박진배 지음, 효형출판 펴냄

 

"도시의 시각적 풍요로움을 온전히 즐기는 데는 골목만 한 공간이 없다. 핵심은 불규칙성이다. 폭도 넓지 않고 들쭉날쭉하지만 닫힌 공간과 열린 공간의 대비가 있다. 결코 단조롭지 않은 풍경이 이어진다. 미적 관능주의를 추구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공간미식가’ 박진배. ‘문화의 용광로’ 뉴욕에서 디자이너들을 가르치는 그가 공간이 지닌 힘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힘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즐길 수 있는지를 일러 준다. 

 

디자인, 건축, 영화, 공연 등에서 체득한 풍부한 지식과 교양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에세이인 이 책에는 18가지 스토리가 담겨 있다. 

 

이야기들은 저자가 세계 곳곳의 의미 있는 공간을 탐구하고 거기서 얻은 경험과 콘텐츠를 수집, 정리해 쓴 것이다. 공간을 찬찬히 관찰하고 슬며시 찾아오는 것들을 내면화하여 얻은 생각들이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공간이 지닌 힘, ‘공간력’이다. 공간의 본질에는 사람, 즉 공간미를 창출한 디자이너와 찾아드는 사용자가 자리한다. 

 

여기에 문화 예술의 층위가 쌓이고 디자인이 더해지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생긴다. 저자는 ‘공간력’의 핵심은 아날로그적 가치, 이를테면 타인에 대한 존중과 여유로운 마음가짐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예의범절과 에티켓을 우선 꼽는다.


레슨1 ‘공간을 탐미하는 법’은 말 그대로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을 길러 준다. 뒷골목을 음미하는 산책법 ‘플라뇌르’, 마을의 은유를 담은 호텔 속 공간들, 20세기 초 금주령 시대에 탄생한 ‘스피크이지’ 바 등이 지닌 의미를 풀어낸다. 

 

레슨2 ‘품격 있는 디자인을 위하여’에서는 예술적 영감이 깃든 공간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무심히 버려지는 틈새 시간을 살려 줄 엘리베이터 내부 디자인, 아날로그 경험이 돋보이는 상업공간,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미술관으로 만든 ‘뮤우지우우움’의 사례 등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스며든 공간이 등장한다.


이 책의 핵심은 바로 레슨3이라 할 수 있는데, ‘존중할 때 얻는 것들’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장은 특정 사례를 콕 집지 않는다. 종이책이 지닌 가치, 빈티지의 아름다움, 패션 에티켓, 공연 문화를 존중하는 도시 등의 이야기를 통해 문명과 함께 켜켜이 쌓여 온 아날로그 문화에 관해 친절히 풀어낸다. 

 

여기서 저자는 문화 예술적 가치를 써 내려간 사람을 존중할 때 비로소 공간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더 높은 심미안을 지니게 된다고 말한다.


세 번에 걸친 레슨은 디지털 홍수에 떠밀려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는 무엇이고 돌아봐야 할 감성과 아날로그적 심성이 무엇인지 심도 있게 제시한다. 

 

아울러 공간을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깊은 통찰을 선사한다. 더 나아가 공간을 탐미하는 법과, 품격 있는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타인과 공간을 대하는 에티켓과 배려심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결국 18가지 스토리는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공통적으로 태도와 에티켓에 관한 은유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독자들의 ‘오늘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길잡이다. 

 

저자는 말한다. 가치 있고 풍성한 삶의 핵심은 흔히 말하는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이 아니라, 사려 깊은 행동과 격조 있는 태도 즉 ‘스타일 인 라이프(Style in Life)’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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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너머 도시 - 이슬람이 만난 문명, 문명이 만난 도시 

김수완 지음, 쑬딴스북 펴냄

 

문명의 발전과 함께 진화해온 인류는 도시를 이루며 사회, 제도, 문화, 경제, 정치를, 그리고 예술과 종교를 발전시켰다. 

 

특히 인류 역사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문명이라는 걸출한 고대문명이 탄생하고, 유럽 르네상스의 기초를 제공한 중세 이슬람 문명이 화려하게 꽃을 피운 중동·이슬람 지역의 중요성과 가치는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서양 문명의 그림자에 묻혀 찬란함과 깊이가 퇴색되었지만,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도시를 형성하며 문화를 발전시켜 오는 과정에서 중동·이슬람 지역의 도시들은 시간과 공간의 유기체로 생성되고 발전했다.


역사 속에서 새로운 문화와 생각의 시작은 위기와 다름에서 출발했다. 위기와 다름은 때로는 갈등과 충돌을 일으키지만, 융합과 화합이라는 과정을 통해 기존의 차원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과 세계를 창조한다. 중동 지역과 이슬람은 갈등과 충돌이라는 프레임으로 늘 서양 문명과 서구 세계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과 도시 문화의 발전 과정에서 바라본 이슬람 도시는 동서양의 문화가 교류되면서 새로운 문화와 생각을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그리고 지금, 이슬람 도시들은 종교적 공간을 뛰어넘어 최첨단 도시로 향하고 있다.


중동학 박사로 중동·이슬람 전략과 중동지역학을 강의하고 있는 김수완 교수는 종교적 공간으로서의 이슬람과 이슬람이 만든 도시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이슬람 도시들이 생성된 역사적 배경과 그 안에서 그 도시들이 이룬 문명을 만나고, 그 도시들이 어떻게 새로운 문명을 열었는지 살펴본다. 아울러 종교적 공간을 뛰어넘어 최첨단 도시로 발전하는 이슬람 도시들과 마주한다.

 

책은 먼저 인류와 만나는 이슬람 도시들을 소개한다.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고 세계 거대 종교들이 탄생한 곳, 그 선상에 도시와 문화가 서로 사상을 주고받으며 철학과 과학, 언어와 종교를 발전시킨 곳, 5000년 전에 동방과 서방의 가교역할을 한 도시들이 발달했고 거대 제국들이 등장하고 사라진 곳, 그곳이 바로 중동 지역이다. 그리고 그곳에 역사와 만나는 도시 다마스쿠스, 카이로, 예루살렘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와 사상을 통해 지혜는 인간이 앎에 이르는 최고의 단계로 정의되었다. 이슬람 문명은 중세 황금기에 문학과 예술, 종교를 통해 꽃피운 찬란한 지혜의 탑을 쌓았다. 

 

천일야화의 고향 바그다드, 순교자의 땅, 마슈하드 루미의 영성이 깃든 콘야를 살펴보면 우리는 이슬람 도시들이 어떻게 문학과 지혜의 탑을 쌓았는지 이해한다.


이어 종교라는 추상적 세계를 예술과 문화로 표현하고, 이를 발전시켰으며, 나아가 독창적인 예술과 문화로 인류 역사를 장식한 이스탄불, 이스파한, 아그라. 이곳이 어떻게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예술과 문화로 승화했는지, 종교가 어떻게 예술과 문화를 성숙하게 하는지 현장을 만난다.


중동 지역은 동서양 간의 무역 중계지로서 예로부터 수학과 과학, 천문학, 화학 등 다양한 학문이 발달했다. 

 

그리스, 이집트, 인도, 중국 등 다양한 문명에 노출되었던 중동 출신 학자들의 지식이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갈릴레오 같은 과학자가 배출되는 배경을 만들어주었다. 이런 흔적은 사마르칸트, 코르도바, 바그다드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과학기술 혁명은 인류의 미래를 창조할 것이며, 인류가 과거 1만 년 동안 경험했던 변화보다 더 큰 변화가 엄청난 폭발력으로 수십 년 안에 펼쳐질 전망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 선 이슬람 도시 두바이, 네옴시티, 쿠알라룸푸르를 들여다보면 종교를 넘어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이슬람 도시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