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산책] 연결의 쓸모.. 유지혜 '우정 도둑'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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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산책] 연결의 쓸모.. 유지혜 '우정 도둑' 外

  • 손유지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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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도둑 - 삶의 궤도를 넓혀준 글, 고독, 연결의 기록 

유지혜 지음, 놀(다산북스) 펴냄


유지혜는 메일링 구독 서비스 ‘유지혜 페이퍼’를 시즌15까지 운영하며 스스로 자신을 알린 92년생 젊은 작가다. 사진 한 장, 글 한 줄로도 또래 여성들의 공감을 자극하며 전폭적 지지를 받아왔다. 

 

이십대 초반 유럽과 뉴욕을 여행하며 첫 책을 쓴 그녀가 보여준 여행은 삶의 환희에 가까웠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여행 작가를 넘어 본격적인 에세이스트로 발돋움한 <쉬운 천국>과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는 유지혜의 감수성이 무엇과도 비슷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우정은 비단 사람뿐 아니라 보다 넓은 세계와의 연결을 뜻한다. 한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세우는 걸 도와준 고집스러운 서재 꾸리기, 가난 때문에 스무 번이 넘게 이사했다는 사실이 상상되지 않을 만큼 밝게 웃어 보였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명랑한 진지함, 혼자 있음을 견디지 못해 연인과 꼭 붙어 지내던 저자가 성장을 위한 고속도로를 홀로 달리기까지 필요했던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자기 자신을 배우고 그 자산으로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려 움트고 있는 저자가 서로 연결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한 이야기다. 한 사람이 소중한 것들의 범위를 넓히고 공존을 배우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결핍된 것은 자기 바깥에서 찾을 수밖에 없고, 저자는 그때마다 어떤 것을 열렬히 흠모했다. 그러고 나면 훌쩍 자라 있곤 했다. 스스로를 ‘대충 좋아하는 법은 모르는 사람’으로 명명하는 그는 마음이 가는 곳으로 몸을 옮기며 살아왔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했다. 

 

비행기를 타고 열네 시간을 날아간 유럽에서 친구에게만 귀 기울였고, 다시 만나지 않을 이와의 대화에서 강렬한 깨달음을 얻었다. 매일 태엽을 감아야 하는 골동품 시계 상인을 만나 시간의 의미를 배우고, 명품의 로고를 숨기는 파리지앵을 보고 진정한 스타일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서로의 기억 속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지만, 저자는 확신한다. 우정으로 세상은 가느다랗게 연결되는 법이라고. ‘나’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었을 때, 삶은 다가오지 않았다. ‘내 인생이 이래서는 안 되는데. 내가 너무 가여워.’ 나를 잊고 세계로 관심을 돌리니 행복이 있었다. ‘저 나무는 멋져. 이 노래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 저자는 다시 세계와 연결되기로 결심한다.

 

전작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에서 사랑을 예찬하던 저자는 한결 미지근하고 선선해진 온도로 우정을 말한다. 우정은 사랑보다 오래가며, 때때로 영원하다. 우정은 투명한 사랑에 가깝다. 일순간 가치가 폭락하는 사랑과 달리 차근차근 가치가 쌓인다.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때로 부재한 시간을 인정하는 관계, 훌쩍 자라서 다시 나타났을 때 흔흔한 웃음으로 맞이하는 관계. 바람이 통하는 사이, 그 선선함은 영원을 뜻했다. 이에 저자는 훔치기에는 사랑보다 우정이 낫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조금이라도 괜찮은 사람이라면, 우정에서 배운 덕이다. 매번 새롭게 연결되는 그 마음 덕분에 인생은 새로워진다는 것을 전한다.


저자는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먼저 자신과 연결되어야 했다. 어린 시절엔 돈을 모아 옷을 하나씩 사보고 실패하면서 자신을 표현해 갔다. 이제는 누가 “딱 네 옷이야!”라고 말해주지 않아도 어떤 옷이 어울릴지 안다. 옷을 알아서가 아니라 자신을 알아서 가능한 일이다. 

 

책과 글쓰기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내면을 충만하게 했다. 자기 삶의 가능성에만 관심을 둘 뿐 타인을 진정으로 궁금해하는 법을 모르던 저자는 자신의 삶이 수백 년 전 낯선 언어로 쓰인 소설에 그대로 나타나 있음을 목격하고 놀라워한다. 인생은 이토록 가지각색으로 다르면서도 비슷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비슷한 상처를 공감할 수 있다.

 

저자는 세상을 향해 건너가는 다리가 되어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십대를 여행으로 보낸 그는 언어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 그 삶을 편견 없이 흡수한다. 뉴욕에서 자살로 어머니를 잃은 친구를 사귀었을 때, 저자는 그 땅의 사람들에게 배운 위로를 건넸다. 

 

“안아줄까?” 그렇게 나이를 먹을수록 이해할 수 있는 슬픔이 많아진다. 섣불리 그 마음 안다고 말하지는 않으면서 치유와 회복을 응원할 줄 알게 된다. 나아갈 힘은 언제나 영혼이 맞닿는 대화에서 왔다. 저자는 누구보다 절실히 관계의 힘을 믿는다. 좌절해 본 적이라곤 없는 아이처럼.

 

자신을 알 만큼 알게 되고 균형을 찾은 삼십대의 이야기도 볼 수 있다. 독일에서 만난 또래 P와는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여성으로서 서른 살 남짓 살아오며 그린 궤적이 비슷했던 덕분이다. 

 

친하지 않아도, 심지어 모르는 사이라 해도 사람들은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베를린에서 그 연대를 매일매일 목격한다.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채식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난민을 자기 집에 재워줄 수 있다는 문구를 써서 기차역에 마중 나가는 베를린 사람들. 

 

‘너’와 ‘나’의 구별을 까먹을 때,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충만해질까. 갈 길이 요원하지만,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연결되는 것이라고 거듭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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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웃자 별이 빛나기 시작했다 - 노래하는 도신 스님의 첫 산문집 

도신 지음, 담앤북스 펴냄

 

웃을 때 반짝이던 별이

웃음을 멈추자

빛을 내지 않았다


별이 다시 빛을 내기 시작한 건

내가 다시 웃을 때였다

- 〈별〉 중에서

 

‘노래하는 스님’으로 널리 알려진 도신 스님의 첫 산문집이다. 스님이 가진 섬세한 시선으로, 일상의 소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작은 깨달음을 전한다. 꾸밈없고 순수한 매력이 돋보이는 도신 스님처럼 스님의 글도 따뜻하고 아름답다.


불교에서는 ‘나’라는 존재를 강조한다. 나라는 주체가 있기에 원하는 것도 생기고 행복을 느끼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세상 만물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웃어야 비로소 별도 빛나는 것처럼 말이다.


어두운 터널을 끝도 없이 걸어가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터널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터널이 가장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빠져나오지 못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도신 스님 역시 오랫동안 터널 속에 갇혀 있다 간신히 빠져나온 경험이 있었다. 터널 밖으로 나온 뒤 뒤늦게 배운 것이 바로 '웃음'이었다. 긴 시간 동안 웃는 것을 익히고 닦았고, 드디어 진정으로 웃을 수 있게 되자, 나무들이 춤을 추었다. 그리고 별들도 빛을 내기 시작했다. 어두운 터널에서 나오고 나서야 깨닫게 된 진리였다.


도신 스님은 ‘노래하는 스님’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중생의 아픔이 다하는 날까지 노래를 멈추지 않겠다’는 원력을 세울 정도로 노래에 진심인 스님다. 월간 〈우리시〉와 계간 〈서정시학〉에서 신인상을 받은 후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웃는 연습>이라는 시집이 출간되기도 했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신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다정하고 따뜻한 스님이라서 그런지, 스님의 시와 글도 참 다정하고 따뜻하다.


매일매일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 피로를 느끼지만, 도신 스님은 이러한 우리의 매일이 기적임을 짚어준다. 우리 존재 자체가 기적이고, 오늘이 기적이고, 오늘이 쌓인 매일매일이 기적이다.


도신 스님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중에서 특히 '무상'의 관점을 추천한다. 이 세상 어떤 존재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모두 한 번쯤은 고민했을 법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들을 유발하는 존재들도 결국엔 다 사라진다. 

 

고민들도 다 사라진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여러 잡념들도 곧 사라질 것이다. 내 마음이 괴로울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아침에 뜨는 태양, 밤에 빛나는 별들은 당신을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당신이 웃어야 별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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