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산책] 역사와 생태를 잇다.. 진나이 히데노부 '물의 도시 도쿄'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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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산책] 역사와 생태를 잇다.. 진나이 히데노부 '물의 도시 도쿄' 外

  • 이은진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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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 도쿄

진나이 히데노부 지음, 안천 옮김, 효형출판 펴냄


‘쇼와시대 초기의 모던 도쿄에서는 서구 도시 공간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물가에 등장한 여러 건축물이 서로 그 맥락을 고려하여 지어졌고, 상관관계 속에서 무리를 이루어 물의 공간축 또는 시가지를 형성했다. 베네치아의 대운하와 상통하는 건물군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모던 도쿄가 물가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는데, 이와도 부합한다.’


도쿄는 역동적이고 3차원적인 물의 도시다. 울퉁불퉁한 대지의 형상이 빚은 변화무쌍한 자연 조건 덕에 풍부한 ‘물 공간’을 지닌다. 


수많은 신화와 역사를 품은 스미다강, 모던 도쿄의 주 무대가 펼쳐졌던 니혼바시강은 오늘도 현대 도쿄를 유유히 흐른다. 시타마치(下町)로 통칭되는 저지대, 구릉지와 가파른 땅으로 이뤄진 야마노테(山手)는 근대 도쿄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다. 


인위적으로 물길을 바꿔 왕의 거주지 주변을 감싸고 도는 내호(內濠)와 외호(外濠) 등 물의 공간은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진 치수 미학의 백미다. 간다강이 흐르는 현재의 오차노미즈 계곡도 그 자취의 하나다.


에도성을 둘러싼 해자와 용수(湧水)로 채워진 연못이 있는 다이묘 저택들, 샘물을 따라 늘어선 신사나 조몬시대 유적지까지. 도심을 벗어나 언덕 너머 펼쳐진 교외의 풍경도 같은 리듬을 탄다. 서쪽으로 펼쳐진 세타가야, 무사시노와 다마의 언덕과 습지 역시 풍부한 물을 품고 있다.


‘물의 도시 도쿄’의 기존 개념은 도심의 저지대와 야마노테 사이를 흐르는 대표적인 큰 강에 한정돼 있었다. 저자는 이 개념에서 벗어나 서쪽의 무사시노 대지로, 다마(多摩)의 용천수 등으로 시선을 확장한다. 전통적인 프레임으로 보아 온 도쿄론에서 한층 외연을 넓힌 것이다.


저자는 ‘물의 서사’를 품은 신화적이고 풍속사적인 에도 문화를 끄집어내며 근대 도쿄를 정리한다. 에도시대는 물론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문헌과 그림 그리고 구전되어 오는 옛 기억들을 들춰내면서 지질학적 해석을 더해 물가 문화를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다채로운 도쿄의 물 공간은 도시의 변천과 시대에 따라 다른 양태와 문화로 다가온다. 그래서 저자는 지역별로 세분화해 톺아본다. 전반부(1~4장)에서는 ‘물의 도시론’의 주역인 스미다강, 니혼바시강, 고토(江東, 스미다강 동쪽 지역), 베이 에어리어(도쿄만 일대)를 역사의 궤적과 도시 문명 비교 차원에서 해석한다. 


도쿄만이 지닌 세속적이며 때론 탐미적인 유흥 문화를 물가에 온전히 드러낸 사례도 대중문화사 차원에서 언급한다. 대표적인 물가 공간에서 대대로 요정을 운영해 온 지인과의 일화 등, 성(聖)과 속(俗)이 함께하는 공간에서 펼쳐지던 흥미로운 뒷이야기도 솔직 담백하게 들려준다. 


후반부(5~9장)에서는 ‘왕의 거주지’(5장) ‘야마노테’(6장), 스기나미와 나리무네(7장), 외곽 지역인 무사시노와 다마(8, 9장)를 거닐며 저자 자신의 원풍경과 겹쳐지는 새로운 물의 도시 이미지를 제시한다.


한편 저자는 1980년대 말 이탈리아에서 처음 나온 개념인 ‘테리토리오(’영역‘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를 강조한다. 이는 전원(田園)이 지닌 문화와 그 풍경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역사와 생태를 잇는 작업이 필요함을 주장한 것이다. 시종일관 ‘자연과 공존하는 삶’이 깃든 에도·도쿄의 물가를 돌아보며 저자는 사라져 가는 물 공간과 특유의 장소성이 지닌 문화를 아쉬워한다.


지금 도쿄는 스카이라인이 바뀔 정도로 구도심 여러 곳에서 리노베이션이 한창이다. 오랜만에 도쿄를 찾는 이들은 달라진 모습에 눈을 의심할 정도다. 어제와 달라진 오늘의 도쿄에서 내일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도쿄의 참모습은 여전히 크고 작은 강과 하천이 언덕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과 그 속에서 공존하는 삶’에 있을 것이다.


도쿄를 찾는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도심을 한 바퀴 도는 순환선, 야마노테선을 탄다. 이 순환선을 타다 보면 언덕과 평지가 교차하는 서쪽 지역과 금융, 상업지구가 발달한 동쪽의 매축 지역을 두루 경험할 수 있다. 


서쪽의 구릉이 뻗어 있는 야마노테와 동쪽의 강들이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시타마치 저지대를 쉽게 구분할 것이다. 이 또한 에도시대의 도시 구획과 전통을 이어받아 근대 문명의 개화로 연결한 결과다. 


강 이름이 들어간 간다, 니혼바시, 시나가와 등의 역 이름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물의 도시 도쿄’는 지하철을 타면서부터 서막이 열린다.


일본 최고의 건축사학자라 불리는 저자의 반평생 탐구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물의 도시라는 관점에서 에도·도쿄를 조명한다. 저자는 물길을 바꾸고, 바다를 메워 드넓은 대지를 조성하고, 환경의 대변혁을 통해 근현대 도쿄로 탈바꿈해 간 역사(役事)의 자취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준다.


저자의 시선은 과거를 돌아보면서도 늘 미래지향적이다. 옛 문화를 되짚고 흔적을 좇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 신화와 지역 문화를 아우르는 물가의 장소성을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톺아본다. 


그리고 메트로폴리스가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물 공간의 현대적 쓰임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제안한다. 집필 의도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많은 사람이 각자의 사연으로 도쿄를 찾고 맛보며, 느끼고 알고 싶어 한다. 이 책은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신비한 공간인 도쿄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자연과의 공존이 깃든 도쿄다움의 정수(精髓)를 일러준다. 아울러 도쿄 탐구를 통해 주변의 ‘물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도시의 ‘물 공간’에 관한 포괄적인 탐구와 대중적 관심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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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물리찾기 1 

청유재 사람들 지음, 북스힐 펴냄


‘왜 국물이 넘치나요? 물을 담은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불을 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봅시다. 가스가 연소하면서 나오는 열이 냄비의 밑바닥을 통해 전도(傳導, 통하여 전달된다는 뜻, conduction)의 형식으로 물에 전달되어 물의 온도가 높아집니다. 따뜻해진 물은 밀도가 낮아서 위로 올라가고 대신 위쪽에 있던 찬물이 아래로 내려오는 대류(對流, 상대방 쪽으로 흐른다는 뜻, convection)가 일어납니다. 물을 끓이면서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온 가족이 물리학을 전공하게 됐다. 그래서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일에 심지어는 영화를 보면서까지도‘정말 저게 가능해?’라는 질문을 던지는 까칠한 가족이 됐다. 어떤 질문에 대하여 곧바로 답하기 전에 질문이 제대로 되었는지부터 따지는 것이다.


이 책은 네 식구가 따로 또는 함께 부엌일을 하다가 떠오른 생각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자료를 찾아 보완하고 검증하여 완성됐다. 


파전을 공중으로 던져 뒤집는 순간, 팔꿈치를 중심으로 하는 프라이팬의 회전운동, 파전의 관성모멘트, 질량중심의 운동 등 여러 작용에 관한 수다가 이어지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 책이, 엉뚱한 질문들로부터 과학적 사고(思考)가 시작되는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엌에서 물리 찾기’라고 하면 언뜻 낯설게 느껴진다. 요리를 과학과 연결하라고 하면 대부분 생물학이나 화학을 먼저 머리에 떠올린다. 이는 초등학교부터 과학 수업에서 배운 포도당의 광합성이나 녹말의 소화가 주로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쌀이나 감자, 식물의 광합성 작용으로 만들어진 포도당이 녹말로 어떻게 저장되는지, 그리고 혀의 어느 부분에서 단맛을 느끼는지, 단맛을 내는 설탕과 포도당의 화학식과 그 구조를 배우면서 자연스레 화학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부엌에서 일어나는 일은 생물학적, 화학적 과정보다 물리학적 과정이 많다. 물체의 운동이나 전자기장을 복잡한 수식을 이용해서 다루는 딱딱한 물리학이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는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현대의 부엌에서 사용하는 모든 조리 기구는 물리학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리에 가장 중요한 전기를 각 가정에 공급할 수 있는 것은 패러데이의 법칙 덕분이고, 음식물을 간단히 데워주는 전자레인지는 레이더 기술을 이용한 것이고, 음식이 달라붙지 않는 프라이팬은 NASA에서 우주선에 우주 먼지가 달라붙지 않게 하도록 개발한 코팅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이처럼 부엌의 조리기구와 요리 과정은 물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책은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조리법이나 부엌에서 주의해야 할 일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 대신 칼로 썰고, 물을 부어 밀가루를 반죽하고, 불로 요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물리적인 일이 일어나는지, 그 원리를 살펴본다.


이 책을 통해 “칼날이 날카로워야 잘 잘리는 건 왜일까요?”,“모닥불을 피우면 연기는 왜 내가 있는 쪽으로 올까요?”,“왜 노른자는 노란색이지요?”,“물방울은 어떻게 동그랗게 뭉치나요?”같은 엉뚱한 질문들로부터 과학적 사고(思考)를 확장해나가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