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산책] 삶을 그러안는다는 것.. 양광모 '너의 슬픔에 입 맞춰준 적 있는가'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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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산책] 삶을 그러안는다는 것.. 양광모 '너의 슬픔에 입 맞춰준 적 있는가' 外

  • 손유지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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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슬픔에 입 맞춰준 적 있는가 

양광모 지음, 푸른길 펴냄


이 나라의 국경으로 가자/ 왼쪽 어깨로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오른쪽 어깨로는 햇볕이 내려앉는 곳// 전 생애가 비에 젖거나/ 빗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듯해도/ 생의 절반은 햇살인 것

- 「비 1」 부분


사는 기 왜 독한 술 같을 때가 있잔혀/ 그런 날엔 해장국 한 그릇 먹는 겨/ 뜨신 국물에 공기밥 텀벙 말아/ 후루룩 게 눈 감추듯 먹는 겨/ 그러면 뱃가죽 깊은 곳에서/ 장해, 장해, 소리가 들린다니께

- 「해장국」 부분 

 

일상의 언어로 삶을 그리는 양광모 시인. 그는 이번 시집에서 우리 일상에 산재해 있는 슬픔에 대해, 슬픔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에 주목한다. 


저자가 말하는 슬픔은 대체로 겨울, 밤, 어둠, 비의 이미지로 회상된다. 겨울을 맞이한 나무가 잎을 떨구고, 물이 강을 떠나 바다로 흘러들고, 매일 저녁 해가 지는 풍경에서 시인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자연의 흐름이 마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 같다고 생각한다. 


손바닥으로 막아 보려고 해도 손 틈새로 새어 들어와, ‘전 생애가 비에 젖거나/ 빗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듯‘ 느끼게 하는 순간들을 그렸다.


시인은 슬픔을 위로하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슬픔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너의 손과 발, 얼굴을 씻겨 주고/ 너의 차갑게 식어 버린 심장에/ 한 가닥 따스한 온기를 더해 주고 싶어’ 시인은 ‘이 세상 가장 큰 울음으로’ 울겠다고 말한다. 


슬픔만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러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슬픔을, ‘봄꽃 피는 기쁨보다/ 가을 낙엽 지는 슬픔을/ 슬금슬금 잘 잊어야 생이 단단해’진다고 일러 준다. 슬금슬금 잘 잊는다는 것은 슬픔을 억지로 지우거나 극복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상처 부위에 딱지가 잘 질 수 있도록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마음을 다독이고 보살펴도 괜찮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과정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 안의 약한 지점까지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어쩌면 이것이 시인이 바라는 ‘모든 순간을 사랑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너의 슬픔에 맞닿을 수 있을까. 그러한 고민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난 시편들을 이번 시집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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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  

김봄희 지음, 권소리 그림, 상상 펴냄


이 동시집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비 오는 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거나, 컵라면을 나눠 먹는 등 우리가 생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상황을 동시의 배경으로 삼는다. 특별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풍경을 동시의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더 쉽게 동시의 장면을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다.


저자의 동시는 조금도 복잡하거나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 힘을 들이지 않고 쓴 것 같은 편안함과 쉬움, 자연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짧은 작품이라도 시간, 장소, 인물, 사건이 적절히 구조화되어 있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가 맞춤하게 설정돼 있다. 깊은 바닥에 닿아 길어 올린 시에는 잡티가 없다. 


차고 맑은 첫 물처럼, 뜨겁고 고요한 촛불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맑히고 밝힌다. 마침내 우리는 동시와 서민성의 결합을 보여 주는, 모든 세대를 위한 동시집 한 권을 갖게 됐다. 


저자는 섬세하게 말을 고르고 다듬어 독자들에게 내놓는다. 마침표, 쉼표, 큰따옴표 같은 문장 부호들이 독특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동시들을 보면, 얼마나 오랜 시간 고민하며 동시를 썼는지 알 수 있다. 동시의 구조를 짜는 데도 많은 신경을 기울인다. 


동시의 배경이 되는 장소와 시간, 화자를 비롯한 인물, 벌어지는 사건을 적절히 구조화한다. 덕분에 독자들은 동시를 하나의 장면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고, 구체적 장면은 독자들이 동시를 직접 느껴 볼 수 있게 만든다. 


이 동시집이 보여 주는 장면들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우리가 생활하며 맞닥뜨리는 사건들을 소재로 삼기 때문에 독자들은 동시의 내용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생생한 동시들은 그 자체로 우리를 즐겁게 만든다.


동시의 등장인물들이 보여 주는 행동도 의미 깊게 다가온다. 텅 빈 국숫집에도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평범한 가족이 손님이 되어 줄을 서 주거나, 집이 없어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종이로 집을 만드는 아이들의 모습은 사회적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배려와 사랑의 가치를 알게 해 준다.


이 책은 다양한 은유와 상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말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섬세하게 말을 고르고 다듬어 독자들에게 내놓는다. 마침표, 쉼표, 큰따옴표 같은 문장 부호들이 독특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동시들을 보면, 시인이 얼마나 오랜 시간 고민하며 동시를 썼는지 알 수 있다.


독자들이 동시를 편안하게 즐기고 또 나름의 사유를 하길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잘 느껴지는 부분이다.


시인은 동시의 구조를 짜는 데도 많은 신경을 기울인다. 동시의 배경이 되는 장소와 시간, 화자를 비롯한 인물, 벌어지는 사건을 적절히 구조화한다. 


덕분에 독자들은 동시를 하나의 장면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고, 구체적 장면은 독자들이 동시를 직접 느껴 볼 수 있게 만든다. 김봄희 시인의 동시들은 어렵고 복잡한 설명을 하지 않으면서 독자들에게 직접 말하고자 하는 바를 체험으로 전달한다.


이 책에는 다양한 가족들이 등장한다. 중요한 것은 가족의 구성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와 힘이 되어준다는 점이다. 공부에 지친 화자의 기운을 번쩍 들게 해 주는 햄스터도, 오랜 시간 여행을 함께하며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여행 가방도 가족의 일부다.


동시집 속 가족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쌓인 기억으로 연결돼 있다. 아이에게 자신이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해 주는 엄마의 모습은, 언니 얘기를 시로 쓰게 되었다는 시인의 모습과 연결되며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아픈 할머니와 관련된 시들 역시 시간과 기억의 힘을 보여준다. 저자의 가족 이야기는 곧 우리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살아가는 이웃들에게도 가족을 대하듯 배려와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한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비를 막아 줄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