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산책] 공간·유물·시간 그리고 당신.. 이현주 '보고, 쉬고, 간직하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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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산책] 공간·유물·시간 그리고 당신.. 이현주 '보고, 쉬고, 간직하다' 外

  • 손유지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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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쉬고, 간직하다 - 박물관, 그 숨겨진 이야기 속으로 

이현주 지음, 아트레이크 펴냄


'박물관을 왜 ‘쉼’이 있는 공간이라고 하는가. 문화유산들이 전시돼 있는 공간인데 전시를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인가. 박물관인들은 괜찮다고 한다. 누구나 올 수 있는, 목적을 가지고 오지 않아도 되는 우리 모두의 공간이니까. 그러니까 쉬다 가시라. 전시 관람하는 곳 말고 쉬는 곳으로도 맘껏 사용하시라. 박물관에 와서 많이 보지 않고 마음에 드는 몇 개만 눈과 가슴에 품고 간들 어떠한가.'

 

견학이나 체험학습 등의 특별한 목적이나 특별기획전 관람 이외에 일상적인 산책이나 가족 나들이, 데이트 코스로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은 다양한 볼거리는 물론 휴식을 취하고 조용히 생각에 잠길 공간까지 세심하게 마련된 도심 속 느린 공간, ‘국립중앙박물관’의 진정한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누구든 그냥 가볍게 놀러오세요" 하며 건네는 다정한 손짓인 셈이다. 저자는 올해로 국립중앙박물관 근무 경력 33년 차에 이른다.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저자의 ‘이야기보따리’ 속에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공간, 특별히 자랑하고 싶은 것들, 관람객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일 등이 켜켜이 쌓여 왔다. 그 묵직한 보따리를 풀어 정리한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상설전시관 ‘역사의 길’ 제일 안쪽에 위풍당당하게 자리한 경천사 십층석탑, 2021년 공개 이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사유의 방’, 문화재를 복원하듯 마음을 치유하고 되살리자는 의미로 기획된 ‘마음복원소’ 등 이 책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관한 생생한 정보가 한가득이다.


또한 프랑스에 있던 외규장각 의궤를 국내로 가져오는 데 큰 역할을 한 박병선 박사와 평생 수집한 문화재를 선뜻 기증한 이홍근 선생, 2021년 2만여 점의 컬렉션을 기증한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 국립중앙박물관의 핵심인 ‘유물’ 목록을 한층 탄탄하게 채워 준 이들에 관한 이야기도 흐른다.


전시 유물들이 관람객을 맞이하기 전, 그 의미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학예사들의 고심과 노력,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문화재의 ‘종합병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보존과학부’ 등 박물관 이면의 이야기도 꽤 흥미롭다.


이 외에도 도심 속에서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흐름을 만끽할 수 있는 정원과 산책길, 나름의 특징을 자랑하는 전국 곳곳의 국립박물관에 관한 이야기까지 저자가 오랫동안 차곡차곡 모으고 사색해 온 내용을 담아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든다. 아마도 박물관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존중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 근무한 곳이니 매일 오가며 지나치는 것들에는 쉽사리 눈길이 가지 않을 법한데도, 저자는 매번 작은 변화 하나하나에도 시선이 머문다. 

 

나아가 봄이 되면 아예 박물관 정원으로 나가 그해 첫 매화꽃을 기다린다. 여름 무렵에는 거울 못 앞에 있는 청자정 근처에서 사진을 찍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보며 괜히 흐뭇해진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나날이 멋지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하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애정이 담뿍 담긴 이 책은 당장이라도 근처 박물관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만든다. 생활 공간 한편에 무심코 놓아두었다가 문득 눈에 띄면 그대로 집어 들고 박물관 나들이에 나서기에 좋은 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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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사라질 연골이라면 - 휴학하고 떠난 37일간의 나 혼자 전국 건축 배낭 여행기 

두망 지음, 오늘도간책당했다 펴냄


'행복한 순간도 너무 오랫동안 누리고 있으면 감흥이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종종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때 그 순간을 후다닥 빠져나오곤 한다. 늘 약간의 아쉬움이 다시 행복해지기 위한 전제조건이라 믿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짧지만 자주 행복해진다.'

 

창원에서 출발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 다시 창원까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졸업을 앞둔 건축학과 4학년 휴학생이 떠난 37일간의 전국 건축 배낭 여행 이야기다.


유명한 공간은 아니지만, 스스로 가보고 싶은 공간을 가기 위해 3시간 이상을 걷기도 하고, 5만원을 지불하고 택시를 타는 수고를 하면서 겪은 깨달음과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엮어낸 누가 봐도 비효율적이며 제멋대로인 여행이다. 

 

어딘가 많이 어설픈 초보 여행자의 전국 배낭 여행기를 읽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차며 훈수를 두면서도, 떠나고 싶어 무릎이 근질거리는 경험을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졸업을 앞두고 휴학한 건축학과 4학년이 떠난 전국 건축 배낭 여행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이 있는 자리를 떠나게 되면 자신이 설 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행을 싫어하게 됐다는 저자는 건강에 이상이 생겨 내린 휴학이라는 결정에도 쉽게 떠나지 못하다가 주변의 성화로 전국 건축 배낭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37일 동안, 39개의 도시를 넘나들며, 100여개의 공간을 방문하며 겪은 에피소드와 깨달음은 저자가 여행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시간 순으로 보여준다.


저자가 방문한 100여개의 공간은 대부분 국내에서 여행 명소로 유명한 곳이 아닌, 도심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는 작은 공간들이다. 대중들에게 다소 생소한 공간일 수 있으나 다양하고 색다른 공간과 장소들에 대한 언급이 독자들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자리를 비우고 장기간 떠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26살이 돼서야 첫 여행으로 전국 배낭 여행을 선택하고 다녀온 저자의 이야기는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고 있는 독자’와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망설이고 있는 독자’ 모두가 공감하기 좋은 이야기다. 


책 제목처럼 ‘어차피 사라질 연골’을 너무 아끼지 말고, 더 넓은 세상에서 더 즐거운 이야기를 경험하러 떠날 계획을 세워 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하게끔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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