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이 어디 있느냐는 ‘무지’한 질문을 향한 당찬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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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이 어디 있느냐는 ‘무지’한 질문을 향한 당찬 답변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지금도 확산되고 있지만, 페미니즘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파생한 말이다.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알들 모를듯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한 페미니즘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페미니즘은 하나의 총체적인 사상의 형식과 체계로 묶을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실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페미니즘을 달고 어느 순간부터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지데일리는 페미니즘의 이해를 돕는 책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편집자의 페미노트] 
 
지금으로부터 4년여 전인 2016년 5월 우리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며칠 후, 추모를 넘어선 담론의 장이 서울 신촌 거리 한복판에서 열렸다. <거리에 선 페미니즘>은 담담하면서도 절절했던 그 8시간의 기록이다.

대독을 포함해 40여 명의 자유발언자들은 성추행, 성폭력 경험부터 외모로 인한 압박과 옷차림에 대한 검열, 대중교통에서 겪는 문제, 여전히 가족 내에서 존재하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 등을 힘겹게 고백하며, 여전히 두렵고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다.

여성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지 않는 사회의 실상에 대해,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산다는 것,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페미니즘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성들은 성폭력의 피해자로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를 오랫동안 고심해왔다. 필리버스터 참여자 중 반은 우연히 지나던 행인이었고, 나머지 반은 미리 발언을 신청한 이들이었다. 그들의 직군은 프리랜서, 회사원, 정치인, 학자, 연예인 등으로 다양했다.

발언자 중에는 남성도 있었다. 책 속에는 실명을 밝힌 발언자들도 있지만 실명이 아닌 닉네임을 사용한 경우도 있다. 이는 발언자들이 스스로 불리기를 원하는 이름을 정한 것으로, 자기 정체성과 자신의 의사를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해제를 통해 “광장에서 마이크를 잡은 여성들은 여성의 일상적 삶에 침투되어 있던 두려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고, 그 두려움이 오직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는 깨달음에 대해 증언했다. 성차별이 어디 있냐는 ‘무지’한 질문 앞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증언들이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고 말한다. 

책은 남성 중심 사회의 핵심적 정서가 여성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는 것임을 강조한다. 여성의 취향, 경험, 고통, 말을 사사롭게 취급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또한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장소가 자주 주어지지 않는 현실을 꼬집으며, 여성들의 경험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기 어려운 것은 말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고, 경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경험에 쉽게 낙인찍으려 하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책에 담긴 이야기들을 경청하다 보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 폭력의 실상에 점차로 눈뜨게 되고, 나아가 ‘살아남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 이르게 된다. 

여성 폭력 근절을 위해, 그 중단을 향하는 길에 책은 말한다. “이제 여성은 성폭력의 생존자일 뿐 아니라 성정치를 주도해갈 직접행동주의자로 거리에 서 있다. 모든 이가 이들의 발화를 청취하고, 읽고, 배워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책은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항상 낯설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 시작하는 변화의 이야기를 함께 써나갈 것을 주문한다. 아울러 여성의 말하기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믿음과 함께 이야기의 장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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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김현영 <거리에 선 페미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