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산업은 어떻게 금융의 성장동력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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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산업은 어떻게 금융의 성장동력이 되었나

[질문하는 책] 레이디 크레딧

김주희 지음, 현실문화 펴냄


10년 전 성매매 경제 규모는 같은 해 영화 산업의 다섯 배를 훌쩍 뛰어 넘는다는 통계가 나온 적이 있다. 각종 신·변종 업소들이 주택가와 골목까지 스며들었고 온라인 성매매는 추산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여성 빈곤, 공권력과의 유착, 지역개발 등, 성매매를 둘러싼 현실은 하나같이 첨예하지만 언론의 선정적 보도에 가려 제대로 조명조차 받지 못해왔던 게 사실이다.


지난 2004년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됐음에도 비슷한 시기에 성매매는 오히려 기업화하며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레이디 크레딧: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는 오늘날 성매매 산업이 작동하는 방식과 성경제의 자본축적이 이뤄지는 과정을 분석하며, 한국 사회 자체가 사실상 성매매를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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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문제는 ‘지하경제’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공적 경제와 긴밀히 연동된 문제여서 이를 제대로 이해할 때 비로소 성매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이 책은 금융화를 통해 거대한 산업으로 변모한 오늘날의 성매매를 정치경제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에서 성매매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갈망하는 독자들에게 실마리를 준다.


저자 김주희는 성매매 경험이 있는 20대부터 70대까지의 여성 15명을 심층면접해 생애 경험, 이들을 둘러싼 돈의 흐름, 관련된 인간관계를 살폈다. 아울러 성매매 여성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들 10명을 추가로 인터뷰해 산업의 구조를 더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여기에는 구매자 남성을 비롯해 사채업자, 부동산업자, 강남 룸살롱에서 여성들을 관리하는 ‘멤버팀장’, 반성매매 활동가, 사채 문제 전문가 등이 포함된다. 

 

이 외에 성매매 산업 구성원들이 정보 공유 및 친목 도모 목적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업소 알선 사이트, 유흥업소 구인구직 사이트 등 온라인 현장도 두루 참여관찰하며 성산업 생태계를 면밀히 살폈다.


중요한 것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성매매를 둘러싼 돈의 흐름을 밝히는 것이다. 저자는 ‘신용의 민주화’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오늘날 성매매 산업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보고, 무분별한 대출이 초래한 2011년 저축은행 사태와 성매매 산업의 연관성을 분석한다. 이를 위해 모 저축은행과 지역 신용협동조합이 판매한 유흥업소 특화대출 상품을 조사하고, 해당 상품과 관련된 공판을 직접 참관하고 판결문도 확보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신자유주의 금융화야말로 오늘날의 성매매 산업을 작동시키는 원동력이며, 성매매 여성들이야말로 금융화의 말단에서 착취·수탈되는 이들임을 증명한다. 가해자 처벌에만 의지해서는 성매매 문제 해결이 불가능함이 자명해진 현 시점에서 성매매에 대한 정치경제적 분석을 시도한 이 책은 성매매 문제 해결을 갈망하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책은 우선 진보적 여성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 성과와 한계를 살피고, 새로운 이론적 프레임으로 ‘부채 관계’와 ‘여성 몸의 담보화’를 제안한다. 이어 ‘부채 관계’라는 개념을 통해 부채가 실제 성매매에서 어떻게 이용되며, 부채를 중심으로 성산업 내 인적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본격적으로 살펴본다. 차용증 채권의 순환을 통해 성매매 여성들의 몸 이동이 이뤄지는 과정과 이들을 성매매에 참여하게 만드는 힘이 구성되는 방식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시중 은행에서 ‘유흥업소 특화대출’ 상품이 만들어진 과정을 중점적으로 살피면서 성매매 산업의 생태계가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확인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의 금융산업이 대출을 확대하고 여성 몸을 담보화함으로써 대형화·위계화된 성매매 업소의 출현이 가능해졌다는 통찰은 의미심장하다. 

 

아울러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어떻게 여성들을 ‘합리적인 채무자’로 만들어내는지 분석한다. 돈을 벌어 자유를 획득하려는 여성들 스스로의 의지와 담보물 역할을 요구하는 자본의 명령이 함께 작용해 형성되는 주체성을 “‘자유로운’ ‘파산 불가능한’ 주체”라고 명명하고, 그 메커니즘과 대안을 설명한다.

 

저자는 진보적 여성운동이 구매자, 알선자, 판매자에 성별을 부여하고 성매매를 ‘가해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의 문제로 규정한 것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 또한 명확하다고 분석한다. ‘사악한 포주’와 ‘비도덕적인 성구매자’라는 인식은 성매매를 범죄화하는 성과를 낳았지만, 성매매의 원인을 경제가 아닌 도덕에서만 찾으려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성매매 문제는 몇몇 비도덕적인 개인과 지하경제의 문제로 축소되고, 사실상 성매매에 동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사회는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시장경제의 공간으로 의미화됐다. 이에 성차별적 자본주의를 등에 업은 성매매 산업은 몇몇 포주와 성구매자가 체포되는 와중에도 점점 더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2000년대 중반 무렵부터 시작된 성매매 업소의 대형화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고 국가에 의해 성매매가 범죄화된 시점에 소위 ‘기업형 성매매’ 업소가 성행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성매매의 경제적 요인, 특히 신자유주의 금융화로 인한 성매매 산업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모순이 발생했다고 꼬집는다.


2000년대는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고 대형 성매매 업소가 등장한 해이자 신용카드, 저축은행으로 상징되는 ‘부채 경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저자는 기존에 노동자에게 잉여노동을 부과해 수익을 얻던 자본이 한계에 부딪치자 화폐 자체를 수익처로 삼게 됐고, 이것이 신자유주의적 움직임과 연계되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무차별적 대출이 이뤄지는 ‘부채 경제’가 등장하게 됐다고 분석한다.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대출은 곧 대출의 부실화로 이어졌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저축은행과 지역 신용협동조합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지는 대형 성매매 업소에 투자를 시작했다. 특히 유사한 규모의 대출 채권을 묶어 상품으로 거래하는 금융기법인 '풀링pooling'은 대형 성매매 업소의 등장을 더욱 가속화했다. 

 

성매매 업주들은 여성들의 차용증을 모아 담보로 제출하고 막대한 돈을 대출받아 대형 업소를 차릴 수 있게 됐고, 여성들의 몸은 금융회사의 대출 채권으로 거래되기에 이르렀다.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성매매 산업의 공모를 보지 못한 채 개인 가해자만 벌하고자 한 노력은 결국 진짜 가해자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진짜 가해자는 성매매에 투자하는 금융회사, 캐피탈업체와 이를 방관하는 한국 사회였다.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화에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금융화의 과정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금융기법이 성매매 산업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금융회사가 여성들의 차용증을 비슷한 액수끼리 묶어 담보로 받거나 대출 채권으로 거래하기 시작하자 성매매 업주들은 대출을 받기 위해서라도 비슷한 액수의 빚을 가진 다수의 여성들을 한 업소에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과거 ‘악덕 포주’의 소규모 자영업에 가까웠던 성매매는 이제 다수의 여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 기업 형태로 바뀌었다. 이뿐 아니라 ‘사이즈’(성매매 산업에서 ‘사이즈’는 빚 액수와 외모를 지칭하는 데 모두 사용)별로 여성들이 집결되면서 성매매 산업은 최상급부터 중·하급까지 위계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위계화된 업소는 위계화된 가격과 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지고, 구매자 남성은 더욱 손쉽게 '합리적인 소비 실천'으로서 성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결과적으로 최상급부터 하급까지 모든 성매매 업소가 세분화된 남성 욕망을 충족시키며 고루 수익을 얻고 있다. 성매매가 범죄화된 지 15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성매매 산업은 금융화의 흐름을 이용해 오히려 고도화되고 세분화된 것이다. 

 

이제 성매매는 과거와 달리 ‘악덕 포주’와 ‘비도덕적인 성구매자’와의 대면 관계에서가 아니라 '비대면적·비인격적 부채 관계'로 유지되는 산업이다.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회사, 업소의 ‘급’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는 ‘영업팀장’, 여성들을 관리하는 ‘멤버팀장’과 ‘룸살롱 에이전시’ 등 성매매 산업의 구성원은 날로 다양해지고 그 모습을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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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화는 성매매 여성들의 경제관과 내면까지 바꿔놓았다. 흔히 성판매는 포주가 부과한 부채 때문에 강제로 이뤄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저자는 성매매에서 부채가 그보다 더 복잡하게 작용함을 강조하면서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생계가 어려운데도 업소에 자주 결근을 하던 여성에게 안부를 묻자, 작년에 찍은 일수만 3000만 원이 넘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는 그 여성이 마음만 먹으면 그만큼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으며 부채를 마치 수입처럼 인식한다는 걸 보여준다. 부채 경제의 시대에 부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곧 그만큼의 ‘신용’을 얻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오늘날에 부채와 신용은 명확히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성매매 여성들은 강압적인 포주로부터 선불금을 얻는 대신 직접 캐피탈업체나 대부업체를 이용해 ‘자유롭게’ 대출받고 스스로 부채를 조절한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자유롭게 자신의 재무 상태를 조절하는 존재로 바뀐다.


신자유주의 금융화는 채무 상환을 도덕의 문제로 규정하며 개인에게만 책임을 떠넘긴다. 오직 개인이 알아서 자신의 채무를 갚아야 하는 이 시대에는 여성들이 학자금을 상환하기 위해 성매매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경제 논리가 도덕이 된 시대에 아무런 자산도 없는 젊은 여성들은 오직 자신의 몸을 담보로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참여해 부채를 갚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발적 참여는 무차별적 대출로 유지되는 부채 경제가 여성들에게 ‘강제한’ 참여와 다름없다. 부채 발행으로 유지되는 경제를 자신의 몸으로 떠받치고 있는 여성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아무런 제한 없이 대출을 제공해 자본가와 금융회사가 수익을 얻는 약탈적 대출의 대표적인 희생자다.


이런 현실은 성매매 문제를 둘러싼 두 가지 여성주의적 입장 모두 한계가 있음을 드러낸다. 그동안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주요 운동은 부채를 해결해 성매매 여성을 ‘탈성매매 여성’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룩한 나름의 성과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나, 이 관점은 성매매 경제와 합법적 경제를 분리하는 오류를 가지며 “이 시대 자본축적 방식이 여성들의 매춘화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다. 또 여성들을 성노동자로 인식하며 탈규제의 해법만을 내놓는 관점 역시 여성의 몸을 담보로 확대재생산하는 부채 경제의 동인을 간과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등에 업고 빠르게 변화하는 성매매 산업의 현황을 볼 때, 이제 성매매는 정치경제적 구조의 문제로 분석돼야 한다. 이러한 분석이 이뤄질 때 비로소 우리는 성매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여성의 몸을 자원 삼아 작동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 책은 촘촘한 현장관찰과 심층면접을 바탕으로 성매매 산업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생생히 살리면서도 그들을 지배하는 ‘돈의 흐름’을 거시적으로 분석해내는 균형감이 특히 두드러진다. 

 

특히 활동가 출신 연구자라는 다소 독특한 이력을 지닌 저자는 티켓다방, 기지촌 등 현장과 연구실을 오가며 여성의 몸과 역할을 자원 삼아 작동하는 자본주의 정치경제 시스템에 대해 연구해왔다. 현장 활동가로서 가지게 된 문제의식이 연구자의 고민과 분석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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