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세상 위에 펼친 넓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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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세상 위에 펼친 넓은 마음

[그림책의 마음] 눈이 내리는 여름
권정생 지음, 고정순 그림, 단비 펴냄

<눈이 내리는 여름>은 1970년 기독교 교육 6월호에 발표됐던 작품이다. 권정생 작가가 경북 안동 조탑리에 있는 작은 예배당 문간방에 살 때 쓴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그는 새벽마다 종을 치는 종지기 아저씨였고, 교회 아이들을 가르치는 주일학교 선생님이었으며, 어린이를 위해 동화를 열심히 썼던 작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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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다시 읽어도 그 감동은 여전하다. 늘 약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생각하며 동화를 썼고, 같은 모습으로 살아갔던 작가 권정생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다. 마치 권정생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세상을 따뜻하게 재현한 듯한 고정순 작가의 그림은 작품에 먹먹한 감동을 더한다.

 

이 그림책은 한여름에 내리는 눈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에 처한 아이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위로하며 역경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다. 아홉 명의 아이들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오로지 곁의 친구들과 손을 잡고 그 어려움을 이겨 나간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을 삼키고 있는 지금의 현실도 겹쳐 읽혀지는 작품이다. 

 

생각지도 못한 역경을 눈이 내리는 여름이라는 역설을 통해 보여 주고 있는데 그럴 때일수록 곁의 사람을 믿고, 의지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도 조금씩 이겨 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권정생 작가의 작품 속에는 늘 어린이, 이웃, 장애인, 노인, 거지 등 힘없고 약한 주인공들이 나온다. 책은 독특하게도 한여름에 눈이 내리는 풍경으로 시작한다.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시원하게 멱을 감고 있던 5학년 아이 아홉 명은 그저 어리둥절한다. 그 혼란 속에서 아이들이 힘을 합쳐 자신들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이들은 집으로 가는 길 위에서 농사를 망칠까 근심스러워 하는 농부, 엄마를 애타게 찾는 송아지, 다리를 다쳐 절뚝이는 강아지 흰둥이, 마흔 살도 넘었지만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 거지 탑이를 만난다.

 

아이들은 이 존재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함께 근심스러워 한다. 죽지 않았는지 걱정하고, 힘껏 껴안아준다. 춥다고 말하는 탑이 아주머니에게는 둥글게 선 자신들 한가운데로 들어오라고 한다. 누더기 옷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지만 아주머니를 힘껏 싸안고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간다. 

 

고정순 작가는 이 장면을 칠흑 같은 어둠으로 표현했다. 그 속에서 아이들과 탑이 아주머니의 실루엣만 간신히 보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이지만 아홉 명의 아이들이 냄새 나고 머리마저 헝클어진 탑이 아주머니를 둥글게 감싸고 있다. 

 

이는 권정생 작가의 이 작품이 태어나고도 한참 뒤에 태어난 고정순 작가가 작품을 통해 교감하는 순간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그것을 보듬을 사랑만 있으면 이겨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두 작가 모두가 전해준다.


<작은 사람, 권정생>의 저자 이기영은 이 작품이 복숭아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자는 강아지 흰둥이와 앉은뱅이 탑이 아주머니의 꿈 이야기라고 말한다. 뜨거운 여름에도 추울 수밖에 없는 탑이 아주머니와 다리를 다친 흰둥이는 마음이 몹시 추운 존재들이라고 말이다.

 

작가 권정생은 꿈속에서나마 자신들의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에 주목한다. 여전히 세차게 퍼붓는 눈 속에서 걸음도 제대로 못 걸으면서도 아이들은 손을 붙잡고 걷는다. 

 

특히 조금만 기다리면 밝아질 것이고 그때까지 손을 놓치지 말자고 기다려 보자는 아이의 말은 끝날 것 같지 않은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희망과 같다. 결국 작가는 아이들이 세상의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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