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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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질문하는 책] 교수님의 주둥아리는 도무지 쉴 줄을 모른다
이지원 지음, 지콜론북 펴냄

<교수님의 주둥아리는 도무지 쉴 줄을 모른다>는 대학 시각디자인학과 교수의 비판과 풍자를 넘나드는 특유의 화법이 담긴 에세이다. 저자 이지원은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도시 생활에 대한 단상을 이야기한다. 업무 스위치를 끄고 일상 모드로 전환해도 저자는 자신도 모르게 디자이너 렌즈를 통해 세상을 읽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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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SNS상에 보이는 이미지에 얽매이는 현대인, 먹으려고 태어난 사람들처럼 유튜브와 브라운관을 가리지 않고 송출되는 먹방의 향연,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 보는 동네 간판이며 포스터, 프랜차이즈 카페의 평균을 지키는 서비스가 주는 편리함 등 일상 깊숙이 맞닿아 있는 소재부터 디자이너의 기본, 진로 고민 등 직업적 측면도 무겁지 않게 담았다.

 

'유행하는 신상을 알아보기간 어렵지 않다. 유명한 저가 브랜드 매장을 찾아가서 눈에 띄게 진열된 상품을 바구니에 담는다. 모델의 모습과 두꺼운 폰트의 글자를 인쇄한 광고 포스터, 마네킹이 입은 제품. 바로 그것이다. 단, 할인 폭이 큰 제품은 피할 것. 유행의 끝물일 가능성이 높다. 몇 가지 색이 다채롭게 진열된 셔츠가 눈에 들어온다. 그 제품이 이번 계절 유행이라고 매장 전체가 신나게 떠들고 있다. 길게 고민하지 않는다. 라지 사이즈, 서로 다른 색깔로 세 개 집어 들어 신속히 계산한다. 그 세 쌍둥이를 로테이션해서 두 계절을 범타 처리할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결과적으로 패션 패배자가 최신 유행 아이템을 챙겨입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트렌드를 따르고 싶은 유혹은 고사하고 애초에 관심이 1도 없는 패알못이 의도치 않게 거대 유행의 흐름에 합류하는 현상.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미필적 유행'이라 명명하기로 했다.'

 

'거대 자본은 말라 죽지 않기 위해 휴행을 낳는다. 거리의 수많은 사람은 각자 다른 사연으로 유행을 낳는다. 다양한 선택의 범주에 미필적 유행도 당당히 한자리 차지한다. 그러나 미필적 유행에는 엄연한 한계가 따른다. 모름지기 패션피플이라면 유행을 따르더라도 자신에게 특화된 코디로 그 안에서 개성을 연출할 터다. 우리 속 가축처럼 주는 그대로 받어먹어서는 한숨 나오게 밋밋한 스타일만 되새김질할 운명이다. 그래도 노력 없이 얻은 결과치고는 나쁘지 않잖아. 평타는 쳤으니 적어도 패션 테러로 눈총받는 사태는 모면한다. 뭘 더 바라겠는가.'

 

남들은 별소리 하지 않고 지나갈 법한 것일지라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디자이너의 눈에는 그것들이 눈꼴시거나 영 마뜩잖을 때가 있다. 포토샵 픽셀 하나하나 미세조정 하는 손길처럼, 평범한 풍경도 감각을 일깨워 세밀하게 관찰하고 사색하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말하지만 저자의 이야기에는 다수가 품는 속마음을 대변해주는 매력이 있다. 조용하게, 하지만 단호한 현자의 통찰력마저 느껴진다.

 

도무지 쉴 줄 모르는 저자의 중얼거림은 책에 수록된 일러스트레이터 심규태의 그림과 만나 즐거운 시너지를 발산한다. 디자인 분야 외의 독자도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평소 깨닫지 못한 새로운 일상성을 주고, 저자의 전문가적인 견지로 신뢰와 공감을 자아낸다. 

 

'삶은 지루함과의 싸움이다. 매일 바쁜 일상에 시달리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신선하고 화려한 사건이 '빵' 터지진 않나 내심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기대는 늘 외면당한다. 보통 사람의 생활은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의 그것처럼 그적이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일찌감치 심장마비로 돌연사했으리라. 통쾌한 경험이 가끔 있다 해도, 인생 전체로 보면 99% 시간은 평범한 일상으로 채워진다.'

 

'평범한 일상은 소중하다. 그것은 실체를 이루고 사유를 가능케 한다. 나라는 인간은 일상의 무던한 힘으로 조금씩 미끄러져 어디론가 나아간다. 하지만 두꺼운 회색구름처럼 막막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일상 속에 푹 담긴 중에도 마음 한구석은 마지막까지 오지 않을 어떤 극적인 순간을 동경한다. 그런 갈 곳 없는 기다림이 쌓여 잉여 정신력이 자라남녀 나는 또 부스럭대며 일어나 그것을 마모시킬 강력한 게임을 찾는다.' 

 

어쩌면 '교수님'다운 장황한 연설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세 줄 요약을 외치지 않게 되는 이유는 이런 말들이 보통의 꼰대 같지 않은 어른이 건네는 덤덤한 유대와 위로로 들리기 때문이다.


SNS 좀 하는 사람이라면, 정돈된 마감 없이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는 벽으로 꾸며진 뭇 공간들의 등장을 익히 알 듯 하다. 천편일률적인 유행이 어떨 때는 시각 공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저자는 우리 일상에서 은연중에 묘하게 신경 쓰이는 부분을 캐치해 가려웠던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저자는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AROUND(어라운드)>에 특유의 에피소드를 몇몇 단편으로 기고했다. 겉으로는 당찬 어른의 태도를 고수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집에 가고 싶다’를 되뇌는 흔한 현대인은 이 글들에 ‘좋아요’로 반응했다. 이후에도 저자는 몇 년간 차곡차곡 글을 쌓았다.

 

그래픽디자이너,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두 아이의 아빠, 유튜브에서 노는 게임 스트리머·본캐(제1캐릭터)와 부캐(제2, 제3의 캐릭터)의 구분이 모호한 요즘 시대에 저자도 다채로운 인격으로 활동하며 사회인으로서 본분을 다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단서는 결국 그 사람의 외모와 말, 행동, 냄새 정도인데, 그 중에 말은 인격을 내비치는 신호라는 면에서 가장 결정적이지 않을까 싶다. 말 몇 마디에 사랑에 빠지고, 말 몇 마디에 적이 된다. 외모에서 받은 인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하지만, 대화로 쌓이는 인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하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이다.'

 

'20대 때는 말투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하긴 무신경의 한계를 달리던 그 시절에 신경 쓰지 않은 게 어디 말투뿐일까. 어리니까, 모르니까, 멍청한 녀석이니까 그러면서 다들 너그럽게 이해해줬다. 하지만, 이제는 용납되지 않는다. 탈모 증상이 있는 중년 아저씨는 외형으로 남들의 호감을 살 가능성이 없다. 정우성처럼 잘생긴 얼굴도 아니고, 쓸데없이 덩치만 크다.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란 외출하기 전 향수 뿌리기, 그리고 평소 말을 가꾸는 일이다.'


저자는 이제 에세이스트로서 자리매김까지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평소 꺼내기 어려웠던 속마음을 필터링 없이 솔직하게 쓰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재미와 통쾌함을 선사한다. 

 

저자가 전하는 때로는 그저 유쾌하고, 때로는 제대로 저격당해 뼈 맞는 기분도 드는 이야기들은 실없는 농담으로 채워진 것 같지만 적확한 소리만 한다는 점이 결국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나도 몰랐던 가려운 곳이 이렇게 많았나, 놀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