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EEKinBOOK] 방법은 있다, 부디 의미충만한 삶을 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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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EEKinBOOK] 방법은 있다, 부디 의미충만한 삶을 사시라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프랑크 마르텔라 지음, 성원 옮김, 어크로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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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데일리] "나는 생존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난 살고 싶다." - 영화 '노예 12년' 중 솔로몬 노섭의 말

 

누구에게나 삶은 힘겹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을뿐더러 욕망을 충족시킨다 해도 절박한 철학적 질문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희망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인 숱한 고난과 죽음을 포함한 세계에서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은 결국 고통을 겪고 소멸하는데,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결국 삶은 '인간은 왜 의미를 추구하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해 프랑크 마르텔라는 그것이 성찰하는 인류의 특성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을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능력인 ‘성찰’은 미래의 계획을 세우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게 해주며, 과거와의 관계 속에서 삶의 유의미함을 더욱 강화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성찰 능력으로 인해 인간은 동물처럼 본능적인 목표에 안주하지 못한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을 하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무슨 의미가 있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지?’라고 자문하게 된다. 이 ‘왜’라는 의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변이 필요하므로 우리의 행위에 정당한 이유나 목적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탐구는 고대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일까. 아니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살던 세상은 초자연적인 영, 악마, 마법이 지배하는 곳이었고 우주는 신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 

 

당연히 모든 생명체가 신이 내려준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했으므로, 인생의 의미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겨우 200여 년 전에야 등장한 서구 사상의 역사적 산물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걸까. 프랑크 마르텔라는 그 이유를 근대적 세계관의 탄생과 연결 짓는다. 

 

17세기 이후 과학적 세계관이 퍼져나가면서 인간을 비롯한 우주 전체에는 자명한 목적성이 있다는 오래된 생각이 도전을 받게 됐다. 더 이상 인간이 세계에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되자 그것을 되찾는 일이 중요해졌고, 한때 우리에게 있었던 것(존재의 목적)을 묘사하기 위한 새로운 표현이 발명됐다. 그것은 바로 ‘인생의 의미’라는 표현이다. 

 

19세기 작가 토머스 칼라일이 <의상철학>에서 처음으로 이 표현을 사용한 이후 랠프 왈도 에머슨, 새뮤얼 베케트, 톨스토이, 쇼펜하우어 등 많은 지식인이 ‘인생의 의미’라는 문제에 천착했다. 특히 독일 낭만주의는 이러한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유럽에 합리적 세계관이 확산되는 것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낭만주의는 인간이 종교적 세계관을 벗어나면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내면에서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무’ 대신 ‘심장’을 따르라고, 현재의 부족한 상황에 안주하지 말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으라고 요구하며 그것을 찾으면 인생이 더 명료해지고 유의미해질 것이라고 사람들을 독려했다. 

 

프랑크 마르텔라는 이처럼 과학적 세계관의 등장에 낭만주의적 견해가 더해지면서 사람들이 실존적 위기를 겪게 됐고, 오늘날 우리가 의미의 부재에 마음을 뺏기게 됐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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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에는 행복해야 한다고 자꾸 일깨우는 메시지들이 너무 많아서 행복이라는 목표를 포기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텔레비전을 켜보라. 특히 광고시간대에. 거기에는 행복을 패키지 상품으로 파는 건강하고 아름답고 미소 짓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런 거짓 예언자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헛된 희망 때문에 인생에서 좋은 것들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행복은 감정에 불과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자체로 진정한 가치가 있는게 아니라, 가치 있는 무언가를 손에 넣었을 때 딸려오는 사은품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행복의 추구는 어떻게 우리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부족하다.'


‘인생의 의미’가 만들어진 개념이라면, 우리는 영영 무의미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프랑크 마르텔라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인생의 의미’와 ‘인생 안에서의 의미’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라고 할 때 사람들은 대개 어떤 보편적인 의미, 인생 일반에 적용되는 의미를 찾는다. 외부에서 인생에 부여된 목표, 위에 있는 신이나 우주로부터 주어진 어떤 것이라고 여긴다. 반대로 ‘인생 안에서의 의미’는 인생이 의미 있다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어떤 보편적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느낌을 안겨주는 무언가를 찾아내거나 창조하는, 즉 경험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생 안에서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프랑크 마르텔라는 자기결정이론이 말하는 기본적인 심리적 욕구인 ‘자율성, 유능감, 관계 맺음’이 인생 안에서의 의미를 찾게 해줄 도구라고 조언한다. 

 

'인생 안에서의 유의미함에 대한 많은 철학적 문제는 "위로부터"의 관점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인생을 멀리서 심판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난 뒤 인생 위에서 어떤 의미를 논리적으로 연역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심판자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당신이 자신이 인생 안에서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의미들을 이미 놓쳐버린 것이다. 의미는 삶의 밖에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일어난다. 의미를 경험하는 것은 온기나 공감을 경험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자기 바깥에서 바라보기보다는 이미 자기 삶의 일부인 의미 있는 경험들 속에서, 그리고 그것들을 탐색함으로써 의미에 대한 검토를 시작할 수 있다. 관심의 초점을 인생 안에서 의미-인생이 의미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경험들'로 옮기면 당신은 곧 합리적 근거가 있든 없든 당신에게 의미 있다는 기분을 선사하는 많은 관계, 경험, 감정들이 이미 당신의 인생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율성은 자신의 선호대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 유능감은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갖고 자신이 하는 일에 솜씨가 있으며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리라 믿는 것, 관계 맺음은 다른 사람과 연결돼 있다는 기분을 뜻한다.

 

프랑크 마르텔라는 여기에 ‘선의’를 더할 것을 주장한다. 선의는 다른 사람의 삶, 사회, 또는 세상 일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는 욕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율성, 유능감, 관계 맺음, 선의’는 인생 안에서의 의미를 발견하게 해주고 우리를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어줄 중요한 도구들이다.


무엇보다 프랑크 마르텔라는 인생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이야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생을 어떤 프로젝트처럼 접근할 때 인생의 가치는 그 프로젝트의 성패에 좌우된다. 

 

아울러 그 결과가 먼 미래에만 실현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도달할지 못할지 알 수 없는 그 지점에 이르는 과정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지루한 노역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최악의 경우, 그 과정이 힘들지 않으면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여겨지기도 한다.

 

반면 이야기는 경쟁이 아니라 그저 펼쳐지는 것이다. 음악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그것을 빨리 연주해서 끝에 도달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일어나는 일들에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삶에서 접하는 것, 경험하는 것, 목격하는 것, 표현하는 것을 완전히 독창적으로 구성한 이야기가 나의 인생이고 그러므로 그 순간순간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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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함은 내면에서 승인된 활동, 우리가 자기 안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을 할 자유가 있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는다. 사랑을 한다.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창작을 한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웃고, 달리고, 기어오르고, 폴짝 뛰어오른다. 우리는 신이 나서 어떤 활동에 몰두한다. 때로는 어떤 활동이나 자기표현 방식에 너무 끌린 나머지 빨리 시작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표현하고 실현할 자유가, 즐거운 일을 할 자유가 있다. 진정성이란 인생 경로가 자신이 정한 방향과 선택에 따라 흘러간다는 기분이다. 그리고 이는 인생 안에서 의미를 느끼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의미는 연결에 대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이 지닌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자신과의 연결 역시 똑같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그저 빈껍데기일 뿐이다. 자신이 선택한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신이 선택한 활동을 한다는 것에는 중요한 의미의 근원이 숨어 있다.'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은  우리가 외부에서 강요된 인생의 의미를 쫓지 말고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 더 의미 있는 인생에 이르도록 도와준다.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진화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좋은 것들의 양과 질을 늘리고 반대되는 것들을 줄이며 사는 것뿐이다. 그래야만 삶을 유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표류하고 있다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면,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 본질을 이해하고자 애쓴다면, 그리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우치길 원한다면, 책에서 제시한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의미충만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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