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을 살리는 식물의 선한 영향력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픈 몸’을 살리는 식물의 선한 영향력

[GSEEK in BOOK] 식물의 세계 - 80가지 식물에 담긴 사람과 자연 이야기
조너선 드로리 지음, 루실 클레르 그림, 조은영 옮김, 시공사 펴냄

[지데일리] 4억 년 전 지구상에 처음 등장한 식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를 거듭하면서 번성하고 있다. 

 

식물의 몸은 기본적으로 양분을 만드는 기관인 뿌리, 줄기, 잎과 번식을 담당하는 기관인 꽃, 열매로 구분할 수 있는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식물은 이들 기관을 이용해 끊임없이 활동하고 번식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긴 시간을 함께해 온 식물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식믈.jpg


<식물의 세계>는 재미난 글과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사랑을 받은 <나무의 세계>의 뒤를 잇는 책이다. 전작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나무들, 그리고 풀과 꽃까지 소재를 넓혀 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토마토, 감자, 망고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식물들은 더 많아졌고, 맨드레이크나 스페인이끼 등 외형만으로 호기심을 유발하는 낯선 식물들도 선보인다. 그럼에도 이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식물들이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영국의 식물학자 조너선 드로리의 글과 일러스트레이터 루실 클레르의 그림은 완벽한 파트너다. 저자가 살고 있는 영국에서부터 중동과 아프리카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까지 떠나는 식물 여행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식물의 특징뿐 아니라 그것에 얽힌 인간사를 함께 표현한 그림들 덕분이다. 


처음 뿌리내린 곳에 반드시 적응하기 위해, 끝까지 살아남아 자신의 종을 퍼뜨리기 위해 한평생을 바치는 식물의 투쟁은 놀랍고 신비롭다. 그 모습은 흡사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는 듯해 애잔함마저 느끼게 한다. 


각자 고유한 생존 방식으로 용감하게 삶을 헤쳐나가는 식물의 모습에서 위로와 지혜를 얻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무심히 지나치며 눈여겨보지 않았던 솔방울 하나하나까지 소중하고 의미 있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인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지구상에 존재해 온 식물의 세계를 마주하면 우리의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말조차 경솔하게 느껴질 터다. 우리는 모두 생태계의 일원일 뿐이기 때문이다.


식물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각양각색의 생존 방식이 인간과 많이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식물, 동물, 곰팡이까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그중  어느 하나라도 위협을 받게 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즉 우리의 미래는 건강한 생태계에 달려 있지만,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책은 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식물이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각자 어떤 사연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 줌으로써 우리 옆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이 모두 특별한 존재임을 각인시킨다.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민들레에는 줄기와 뿌리에 끈적한 하얀색 유액이 들어 있는데, 이는 고무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의 고무 공급이 늘어나면서 민들레 고무의 인기는 떨어졌으나 최근 들어 무분별한 산림 파괴 대신 비교적 친환경적인 민들레 고무가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사람과 닮은 형상으로 판타지 영화들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신비로운 식물 맨드레이크는 실제로 고통을 망각하게 하고 잠을 불러오는 독성 물질을 지니고 있다. 

 

고대부터 치료제로도, 부적으로도 사용되었지만, 동시에 마귀의 도구라고도 불렸다. 1431년 프랑스에서 잔 다르크에게 주어진 마녀 혐의는 그녀가 맨드레이크 뿌리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주장으로 힘을 얻기도 했다.


이 외에 아프리카 앙골라의 자갈투성이 지형에 사는 기이한 모습의 웰위치아, 훈련받은 원숭이가 수확하는 코코넛,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여행 필수품으로 꼽은 육두구 등 인간 문명이 존재했을 때부터 식물과 맺어 온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루실 클레르의 그림은 더욱 화려하고 정교해졌다. 전작에서 나무들의 정확한 외양과 그 안에 담긴 스토리를 전달했다면, 이번에는 꽃과 열매, 씨앗의 모양뿐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까지 담아내어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식물의 특징과 사연을 짐작할 수 있다.

 

[크기변환]g.jpg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기생 식물인 크리스마스나무가 어떻게 땅속 전화선을 끊고 다니는지, 말벌을 꼭 닮은 난초인 해머오키드가 어떻게 수컷 벌을 속여 번식하는지, 맥주 원료인 호프의 꽃을 따기 위해 어떤 고생스러운 방법을 동원했는지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페이지 가득 담긴 일러스트마다 식물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차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다채롭고 재미나고 기이하기까지 한 식물 이야기를 읽고 나면 저자가 계속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음을 알게 된다. 세상 모든 식물은 자신만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 다양한 식물이 존재할수록 환경을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밀, 쌀, 옥수수처럼 전 세계적으로 단일 경작되는 작물은 대부분 근친 교배가 이뤄져 유전자 조성이 같기 때문에 동일한 해충이나 질병에 똑같이 취약하다. 이러한 작물을 키우기 위한 비료를 생산할 때 쓰이는 화석 연료의 양도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이렇게 경작된 작물들의 대부분을 가축에게 먹이고, 다시 그 가축을 인간이 먹는 비효율적인 과정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고기 소비를 줄이고 다양한 식물을 먹기 시작한다면 생물 다양성이 증가하고, 질병에 대한 저항성이나 유용한 유전자를 가진 야생종들을 보호할 수 있다. 우리가 주위의 식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식물의 뿌리부터 줄기, 이파리, 꽃, 열매, 씨앗은 모두 수천 년간 환경에 적응한 결과물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개량한 작물들은 환경 파괴의 원인이 되고 있다. 책은 다양한 식물들의 존재를 알리고 생태계의 한 일원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