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플라스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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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플라스틱이었습니다"

마스크 쓰레기, 미세 플라스틱으로 분해돼 결국 해양생물 뱃속으로
버려진 마스크로 만들어진 소파, 플라스틱 줄이기 예술적 해법 제시

  • 이종은 sailing25@naver.com
  • 등록 202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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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데일리] 플라스틱 오염의 실태를 고발한 매체 사진이나 기사를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이를 볼 때는 심각하지만 돌아서면 다시 플라스틱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부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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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우리의 감각은 무뎌지기 마련이며, 플라스틱은 대체불가능한 현실이라며 현실을 잊곤 된다. 개인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집단 전체에 대한 위험이라면 사람들은 그 문제의 심각성과 책임의식을 덜 느끼고 근거 없이 낙관하기도 하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사실은 잘 모르고, 심각한 줄은 알아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제인 플라스틱 오염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유럽에서는 버려진 마스크로 제작된 소파가 등장에 눈길을 끈다. 
 
한국디자인진흥원 디자인 리포트에 따르면 이탈리아 디자이너 토비아 참보티는 최근 사람들이 쓰고 버린 1회용 마스크를 충전재 삼아 소파를 만들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배출되는 많은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일환이었다.

코로나19에서 이름을 가져온 '카우치-19(Couch-19)'는 참보티의 고향 마을인 이탈리아 북부 페르지네 발수가나 시민들이 모은 마스크들로 만들어졌다.

여러 하늘색 마스크를 투명한 PVC가 감싸고 있는 모습은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을 연상시킨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이래 전 세계적으로 매월 버려지는 마스크는 1290억 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에 소파를 채운 1만여 장의 마스크는 이 중 지극히 작은 부분임을 생각하게끔 해준다.

전체 마스크 쓰레기의 75%는 매립지로 향하거나 수로에 떠다니다가 약 450년에 걸쳐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되며, 결국 해양 생물들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참보티는 지속가능한 대안이 있고 모두가 그 중요성을 알면서도 편하고 저렴하다는 이유로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는 유행병적 현상을 체감하고 있다면서, 쓰레기로 인식되는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번 작품을 기획했다.
 
그가 내놓은 최종 디자인은 마치 해리 누리에프의 발렌시아가 소파를 연상시킨다는 평이다. 이 소파에서는 발렌시아가 상표의 낡고 버려진 옷들이 투명 비닐지를 채우고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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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아 참보티가 1회용 마스크로 만든 소파 '카우치-19(Couch-19)' ⓒ한국디자인진흥원



하지만 참보티는 작품 제작을 위해 페이스북을 통해 길거리에 버려진 마스크나 자신이 매일 사용하는 마스크를 모아 줄 자원봉사자를 찾았다.

코로나19 입자가 마스크에서 생존하는 기간은 약 7일이나, 참보티는 바이러스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기 위해 수집된 마스크를 한 달 동안 비닝봉지에 밀봉보관, 오존 스프레이를 통해 살균처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스크로 꽉 채워져 있는 4개의 모듈형 PVC 유닛은 일반 소파나 긴 침대의자 형태 등 다양한 형태로 조합해 만들 수 있다. 사용된 투명하고 깨끗한 PVC는 100% 재활용을 할 수 있다. 

현재 많은 환경운동가가 플라스틱 오염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재활용의 효용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연간 4억 톤에 달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배출되지만, 실질적인 재활용률은 9%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아울러 플라스틱의 대부분은 화석연료로 만들어 지는 만큼, 재활용 여부를 떠나 추출이나 정제 과정에서 상당한 탄소배출이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상당수 디자이너는 공기청정 기능이나 음향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체인과 태슬을 달아 액세서리와 같은 매력을 부여하는 등 재사용가능한 마스크를 개선시키는 데로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플라스틱 문제는 한순간에 해결할 수도 없고, 한 가지 답으로 풀 수도 없는 실정이다. 모두의 삶 속에서 지속적이고 꾸준하게 행동하며 길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예술가들은 플라스틱 아트를 통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환경운동가들은 그들의 의제로, 정치인은 정책적인 해결책으로, 기업가는 플라스틱을 줄이는 생산과정의 해법으로 이 문제에 동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