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비건지향] 지구에 무해한 사람이 될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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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비건지향] 지구에 무해한 사람이 될테야

비건은 단지 채식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가죽, 털, 깃털 등이 사용된 옷이나, 동물성 재료와 성분이 들어간 물건을 소비하지 않고 동물을 이용하는 행위 등을 거부하는 것이다. 비건을 지향한다는 것은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비건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포용하고 결국에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혀 진실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본지는 비거니즘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들을 엄선해 소개한다. <편집자주>

[지데일리] 조각 난 빙하를 붙잡은 채 바다 위를 유영하는 북극곰이 등장하는 영상을 볼 때나, 우리나라 면적만 한 산림이 불길에 휩싸였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나라도 지구에 무해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을 다진 적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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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그러나’ 순간의 결심을 실천으로 옮기려다가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싶은 자책이 들기도 하고 과연 ‘무해함’의 기준을 어떻게, 어디까지 잡아야 할지 망설이다가 결국 굳은 다짐이 유야무야 사그라지는 경험도 해보았을 것이다.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과 편의에 기대고픈 마음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그 자리에 털썩 누워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 올리는 모습은 ‘인류세’에 대항하는 우리의 흔하고 다정한 발버둥과도 같다.


이러한 발버둥을 함께하고자 하는 또 다른 초보 제로 웨이스터들이 공감할 만한 제로 웨이스트‧비건 라이프를 다섯 가지 생활로 나눈 <비워도 허전하지 않습니다>(이소 지음, 문학수첩)의 저자도 열심히 이불 속에서 발을 구르던 사람 중 한 명인데, 짐 같은 물건이 꽉 들어찬 방을 보며 방을 ‘포맷’해 버리고 싶다는 충동과 책상 위를 굴러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내려다보며 불어난 뱃살 같은 갑갑함을 느껴 이불을 걷어찬, 영락없는 ‘초보’ 제로 웨이스터이다. 


이 책에는 플라스틱을 거절하지 못해 낭패감을 느끼거나 텀블러의 뚜껑 소리로 시위를 벌이는 ‘하찮고 소중한’ 제로 웨이스트와 비건의 순간들이 꾹꾹 눌러 담겨있다. 


뚝딱이는 생활과 발랄한 그림으로 채워진 그림일기를 읽다가 베이컨 없는 ‘베이컨 토마토 말이’를 먹는 장면을 만난다면 배실배실 웃음이 난다. 


또 친환경 물품을 잔뜩 구매해서 수북해진 장바구니를 바라보며 ‘나는 제로 웨이스트를 하려던 건데.’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을 만난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러다가도 엉겁결에 받게 됐던 플라스틱을 가게에 돌려주려고 온 동네를 순회하거나 스테이크의 뒷면에 묻어있는 아픔을 발견하는 시선에선 손을 번쩍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유치원생의 뒷모습처럼, 꽤나 듬직하고 기특한 자세도 마주하게 된다.


덮은 이불의 포근함이 너무 좋아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려는 찰나, ‘아!’ 하고 이불을 젖히고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그래도 양치는 하고 자야지.’라는, ‘나’와 내일을 등 돌리지 않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쥐었던 플라스틱 생수병을 다시 내려놓고, 포장 안 된 빵을 찾아 나서는 마음 역시 이와 같다. 다정하고 연약한 발버둥이 편의라는 포근함에 잠잠해지려거나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으로 기울 땐, 삐걱거려도 이어가려는 이소의 생활처럼 말 뒤에 ‘그래도’를 붙여보자. 


물론 제로 웨이스트는 번거롭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와 내일을 완전히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면, 헤진 스웨터처럼 기우뚱하고 포근하고 어설픈 이소의 기록들을 한번 만져보는 건 어떨까.


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거나, 다이어트 중 치킨을 마주치는 등등 왠지 실패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노력했던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듯한 아뜩한 실패는 초보 제로 웨이스터에게 더 자주, 더 맵게 찾아오곤 한다. 


서툴지만 소소한 노력을 모으던 저자는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비건을 결심하며 환경파괴와 고기로부터 멀어지려는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 작고 연약하게 느껴질 때, 어차피 지구는 망하리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끝까지 샴푸 없이 머리를 감고 ‘두유 라테’를 고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구를 위해 서로를 다독이는 마음들이 있었던 덕분이다. 


저자는 초식동물 같은 선한 외모를 가지고 탄소배출을 싹 다 없애버릴 것 같은 기세로 행진하는 사람들과 사용한 플라스틱을 인증하고 환경문제에 관한 경각심을 상기하는 ‘플라스틱 챌린지’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번거로움을 자처하는’ 손들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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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선거 당시 사용됐던 비닐 장갑의 아득한 높이와 정부 차원에서 시행한 규제의 위력을 보고는 ‘함께했으면 하는’ 손들 역시 발견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곳에서 각자 다른 모양으로 펼쳐진 손들을 모아 그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 함께해서 더 따스해진 체온을 느낀다. 


나아가 앞으로도 실수하고 또 실패하더라도 서로에게 전달되는 체온의 힘으로 다시 무해하길 원하는 마음을 지피면서, 지핀 불꽃으로 식어가는 의지와 노력을 덥히고자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무력하게 스러질 건가, 뭐라도 할 것인가. 갈림길에 서있는 우리에게 지구를 사랑하는 방향은 이쪽이라고 속삭이며, 당신의 손도 함께 포개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다정한 눈짓이 담긴 책이다.


‘비건’이라는 단어 뒤에는 ‘대단하다, 신기하다, 불편하겠다’ 등의 말들이 따라 붙는다. 아마 고기가 주는 기쁨이, 아는 맛의 힘이 머리보다 먼저 입속에 고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고기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대단하고,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가 신기하고, 어딜 가나 성분표시를 확인하는 모습이 불편하게 보여, 사람들은 비건을 대단하고 신기하고 또 불편하다고 생각한다. 


지구에 무해하고 싶다는 마음과 나의 한계를 허물고 싶다는 생각으로 비건을 결심한 저자 역시 처음 채식을 시작하기 전에는 비건을 이러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의 비건은 수행처럼 엄숙하지도, 시위처럼 요란하지도 않은 먹고 싶은 걸 참는 게 아니라 맘 편히 내가 원하는 걸 먹는 생활에 가깝다. 


처음 하는 비건인만큼 자주 뚝딱이고 허둥지둥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공장식 사육의 문제점 같은 무거운 문제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하진 못한다. 대신 고기가 주는 기쁨보다 고기를 만들기 위한 슬픔에 공감하며, 정확한 진찰 대신 조심스럽고 때론 빈틈 많은 자세로 아픈 지구의 이마 위로 손을 얹으려 한다. 


비건을 강요하거나 애써 설득하려는 대신, 무해하려는 마음과 실천을 그저 보여주는 저자의 비건 그림일기는 그리 대단하지도, 신기하지도, 딱히 불편해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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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다가 생각이 났어>(손수현·신승은 지음, 열린책들)의 저자 두 사람은 다세대 주택의 위아래 층에 모여 살면서 자주 밥을 나누어 먹는 친구 사이다. 


30대 여성, 영화감독, 프리랜서, 그리고 비건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서로가 서로에게 내밀어 준 ‘보이지 않는 손’ 덕분에 단계적 채식을 거쳐 비건을 지향하게 됐다. 


애초의 계획은 일상적이고 친근한 비건 음식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비건으로 먹고 사는 일에 대한 고찰은 여성이자 인간 동물, 프리랜서 창작자로 살아가는 일로 넓어지고 깊어졌다. 


단계적 채식을 시작으로 비건을 지향하기까지 6년에 걸친 두 사람의 삶과 고민이 번갈아 쓴 일기가 되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우선 먹는 일에 집중한다. 어떻게 하면 비건으로서 잘 먹고 살 수 있을지를 보여 준다. 


봄나물, 두부구이, 김밥, 감자볶음, 잡채, 수제비, 겉절이 등의 비건 음식을 통해 코로나 이후 얼어붙은 봄을 맞는 일, 세 고양이와 함께하는 고소한 일상, 맹맹한 싱어송라이터로 살아가는 동력, 개성 강한 친구들 이야기가 맛깔나게 펼쳐진다. 


다음은 사는 일이다. 비거니즘이 먹고 입고 바르는 일을 넘어서서 삶의 방식이자 철학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보여 준다. 


갑자기 생겨난 고양이 알레르기로 어쩔 수 없이 채식을 시작하게 된 사연, 오랜 정체기를 거쳐 비건 지향으로 나아간 계기, 공연한 다음 날 해촉 증명서를 쓰면서 삶과 정치의 동반적 관계를 확인하는 일, 공황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일상, 비건 메뉴가 부재하는 촬영 현장과 동물 학대를 방관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가 구체적인 경험담으로 그려진다. 


두 사람이 직접 맞닥뜨린 문제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체험기는 '비건을 지향하면 어떤 점이 좋나요?'라는 질문에 일상의 눈높이로 답변해 준다. 그러면서 일단 나를 위해서 시작해 보라고,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하면 된다고 손을 내밀어 준다.


손수현은 고양이 알레르기가 생긴 뒤 궁여지책으로 채식을 시작했다. 그는 순전히 이기심으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먹을 것이 바뀌니 생각이 바뀌고, 삶의 모습이 바뀌고, 결국 인생의 지향점이 바뀌더라고 말한다. 


동물이 생명임을 감각하자 나를 둘러싼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달라진 세계 안에서 동물권과 페미니즘으로 이어지는 가치의 연결 고리를 획득해 낸다.


손수현은 촬영 현장에서 만나는 밥차와 도시락, 회식과 송년회의 경험담으로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단백질 신화와 서울 중심의 인프라 속에서 개인에게만 전가되는 가치를 지키는 일이 비건을 언제까지나 <비건 지향>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 단단한 문제 제기는 그간 인권 문제,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그의 행보를 반영한다. 동물을 먹지 않는다고 하면 상추는 안 불쌍하냐는 식의 비약으로 튀어 버리는 현실에서 개인이 비건 지향을 지켜 나가는 일의 어려움을 드러내며 시스템 마련을 촉구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네가 도시락을 싸서 다니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허무맹랑한 소리다.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나도 매끼 밥해 먹기 귀찮고 힘든데, 새벽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직장인이 어떻게 매일 도시락을 싸겠는가. 각자의 선택을 스스로 책임지라는 말일 텐데, 그런 말들은 아주 치사하기 짝이 없다. 본인은 잘 짜인 시스템 안에서 충분한 선택을 누리며 살고 있음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결과이지, 결코 불합리한 과정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인식 개선과 시스템 마련을 촉구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오랜 고찰을 읽어 낼 수 있다. 더 공부하고 실천하고 싶은 4년 차 비건 손수현의 글은 '채식을 시작해 볼까?' 하는 독자들에게 일단 해보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전달할 것이다.


신승은은 동물권 단체 카라에서 일하며 학대당하는 동물들의 실태를 알게 됐다. 처음에는 페스코 베저테리언(생선과 우유, 달걀 허용)으로 지내다가 자신이 고기 대신 생선을 많이 먹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는 깨달음 뒤에 비건을 지향하게 됐다. 


그는 단계적 채식에서 비건으로 넘어가기까지 오랜 정체기를 거쳤다. 그리고 그 과정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공감을 넘어 용기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그 진심의 목소리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편견이나 혐오와 똑바로 마주하는 그의 노랫말과 닮았다.


그에게 비거니즘은 단지 먹는 것을 넘어서서 공황 장애와 더불어 살아가는 일,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일, 게으른 언어의 혐오를 털어 내는 일로 확장됐다. 


입안에서 춤추는 후추의 맛을 알게 해주었고, 죽이는 것보다 사양하는 법을 익히게 해줬으며, 무엇보다 구원이 아닌 연대에 이르는 길을 내줬다. 


구어체로 툭툭 던지는 듯한 신승은의 문장은 솔직하고 친근하게 벽을 허문다. 여러 번 넘어지고 헤매면서 쌓아 온 신념과 '비건 페미니스트 콩쥐'로 살고 싶은 바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의 글에서 독자들은 '계속'할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긴긴 겨울을 거쳐 어김없이 새봄이 찾아왔다. 그사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올봄에는 채식에 도전해 볼까. 막연하던 생각이 실체감을 얻게 된 건 팬데믹과 기후 위기의 영향일 것이다.


인간의 보양을 위해 평생 우리에 갇혀 지내다가 오직 살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 곰들의 소식이 또 들려온다. 맥주나 와인의 '침전물을 거르기 위하여 바닷물이 아닌 술 위에 둥둥 떠 있게 된 누군가의 공기 주머니를 떠올리면 내 숨이 차오른다'. 수억 년을 살아온 투구게가 백신 개발에 이용되면서 멸종 위기에 놓였다는 경고에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하지만 신승은의 말대로 이 생각의 과정에 우울한 죄책감만 꾹꾹 찬 것은 아닐 것이다. 안다는 것, 공감한다는 것, 그리하여 내 삶의 일부가 된다는 것, 실패하고 넘어지더라도 계속해 본다는 것, 이따금 주변을 둘러보면서 혼자가 아니라 같이 걷고 있음을 확인한다는 것, 즉 비건으로 사는 일은 손수현의 표현에 의하면 '선풍기 줄에 걸려 넘어지는 일, 게으른 세상에서 발을 걸어 주는 일'이니까.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썰고 볶고 무치며 반짝이는 것들을 만들어 나가는 창작자들의 첫발에 함께하는 건 삶에 대한 용기를 충전하고 북돋는 일이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빠삭한 두부구이가, 위로의 감자볶음이, 밀가룻빛 미래를 꿈꾸는 수제비가 떠오를 것이다. 마침 새롭게 출발하기에 좋은 계절, '봄을 부르는 나물 밥상'으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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