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산책] 꿋꿋하게 싹을 틔우는 마음.. 임승남 '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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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산책] 꿋꿋하게 싹을 틔우는 마음.. 임승남 '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 外

  • 손유지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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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 - 나의 생존과 운명, 배움에 관한 기록 

임승남 지음, 다산책방 펴냄


‘지금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싫을 정도로 고통이 심하다면, 그것은 올바른 인간에 대한 갈망과 열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고통 또한 아주 귀하다. 고통이 지나가고 나면 몸과 마음이 한층 성숙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인간답게 사는 도전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도전하는 정신이야말로 본능대로 살아가는 야수와 다른,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니겠는가.’


저자의 생은 거칠고도 낯선 단어들로 조합돼 있다. “고아, 지하도, 앵벌이, 감방, 그리고 출판사.” 그러나 거기에는 의미가 불분명하거나 뜻을 알 수 없을 만한 단어는 포함돼 있지 않다. 

 

다만 그 단어들에 내포돼 있는 시대와 역사의 사건들을 두루 염두에 둔다면, 그의 생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하나의 이야기임이 분명해진다.


임승남은 한국전쟁의 여파로 네다섯 살 때 고아가 됐다. 한창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에 가족은 물론 사회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했다. 


소년원과 교도소를 드나드는 ‘전과 7범’이었던 그는 교도소에서 만난 한 권의 책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180도 바꾸게 된다. 이 책에는 남대문 지하도에서 근근이 생을 영위하던 어린 시절부터 돌베개 출판사 대표직을 역임한 뒤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까지, 인간 임승남의 모든 생이 온전히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한 개인의 생이라 쉽게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암울한 질곡으로 점철될 뻔한 그의 생은 고통스러웠던 시대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극한 상황에 놓이면 끝도 없이 추락하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은 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함에 있고, 사회는 그런 개인을 포용하고 구제하는 안전장치가 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저자는 자신의 온 생애를 통해 몸소 깨달았다. 


역사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로 쓰라린 어둠 속 유령처럼 자라야 했던 나약한 한 인간이 이제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한 굴지의 어른이 되어 우리 앞에 섰다.


역사성과 현실성, 현장감이 살아 숨 쉬는 이야기, 암울하고 야만적인 시대 속에서 타올라 “숨 쉬는 불씨를 간직한 숯처럼”(문경민) 우리 곁에 놓인 인간 임승남의 삶의 기록은 “우리에게 새로운 내일을 향해 서슴없이 한 발짝 내딛을 용기”(이해찬)를 선물한다.


전쟁은 도시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대부분의 산업 시설이 파괴됐고, 거리마다 실업자가 흘러넘쳐 그야말로 “깡통 한 개, 종이 한 장이 아쉬운 시대”였다. 


그 폐허에는 예전의 기억들이 조각난 파편으로만 남아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임승남”이란 사실만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렇게 불렸다는 흐릿한 감각에 의존한 기억일 뿐이었다. 


정처 없이 걷다가 남대문 지하도에까지 흘러들어 간 그는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시작했다. 고향이나 이름, 나이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이름 대신 ‘꼬마’나 ‘이쁜이’로 불리며 앵벌이를 하거나 담배꽁초를 주워 팔아 생계를 이어 나가다가 끝내 도둑질에까지 손을 뻗고 만다. 


그렇게 전과자가 된 그는 폭행과 폭언이 일상인 교도소 안에서 한 권의 책을 만난다. 그 책이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까지 뒤바꿔 놓을 줄은 미처 알 수 없었다.


1960년대 후반, 의정부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임승남은 문득 <새 마음의 샘터>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소크라테스나 괴테 같은 대문호들이 남긴 명언을 간단하게 정리해 엮은 그 책은 구겨지고 주름진 그의 삶을 곧추세우는 새 기준으로 작용했다. 


본능처럼 매사에 주먹부터 휘두르던 그가 ‘참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매일같이 되새기며 화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분노가 치밀 땐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며 기어코 참아냈다.


사회의 구석진 곳에서 어릴 때부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세상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만 가득해졌을 뿐, 좋아하는 것도 없었고 딱히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새 마음의 샘터>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지하며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다. 죄책감은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이전에는 단순하게 느껴졌던 일들이 괴롭고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많은 생각들이 생겨나고, 욕망이 피어났다. 그래서 그는 연필을 잡았다. 이름 쓰는 법부터 익힌 뒤 닥치는 대로 책을 집어 읽기 시작했다. 


마치 피를 갈듯, 그간 익혀온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 채우는 고단한 훈련이었다. 결핵으로 피를 토하면서도 악착같이 한자를 익히고 한글을 연습했다. 영단어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임승남이라는 평범한 세 글자에 새로운 뜻, 새로운 철자를 새겨 넣었다. 林承男, Lim Seong Nam. 스스로 다시 지은 이름이었다.


1970년대 어느 날. 교도소에 여느 잡범들과는 어딘가 달라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 고려대 사학과생이라는 그는, 유신헌법 현수막을 불태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정 형’이었다. 


바둑을 두며 점차 가까워진 둘은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의 이면으로 내쳐진 서로의 삶을 들여다본다. 정 형을 만난 것은 어찌 보면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 


그는 출소 후에도 저자가 교도소 내 인쇄 공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서신을 써주었고, 그것을 계기로 문맹반에 들어가 글쓰기도 배울 수 있었다. 취직자리가 생겼다며 만기 출소한 저자를 신생 출판사로 데려간 것도 정 형이었다. 그렇게 1976년 가을, 임승남은 월급 3만 원의 영업 사원이 되었다.


첫 사회생활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새 마음으로 마주한 세상은 그러나 충격적이었다. 임승남은 자신과 같은 부랑자들의 불행이, 개인의 사정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의 문제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에 빠진다. 


세상은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었다. 농성을 하던 앳된 노동자가 강제로 진압당해 목숨을 잃고, 전태일이라는 청년은 개선되지 않는 노동법에 개탄하여 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했다. 


대통령이 사망했다. 광주 서점에서 반품되어 올라오는 책 서너 권에는 총알 자국이 나 있었다. 자신도 노동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평민사에서 함께 일했던 이해찬을 찾아갔다.


오랜 기간 지켜본 결과 고민을 털어놓기 가장 적합한 상대라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그런데 이해찬은 그에게 당시 설립한 돌베개 출판사의 영업 일을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독재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돌베개 출판사는 올바른 민주주의 성립을 위해 이른바 ‘불온서적’을 출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창립자인 이해찬이 체포된 이후 저자는 출판사를 정식으로 인수해 <전태일 평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을 출간했다.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는 책, 사회의 실상을 드러내는 책, 인문사회 분야에서 반드시 필요한 책을 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어깨를 무겁게 했다. 그리고 1989년 8월 3일, 저자는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됐다. 


전과 7범의 이력으로 대전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한 뒤 13년 만이었다. 1981년부터 돌베개 출판사 대표직을 역임한 그는 1993년 사직의 길을 밟았다. 그로부터 다시 20여 년이 흘렀다. 


자신의 이름 석 자도 쓸 줄 몰랐던 한 인간이 수천 번의 실패를 넘고 또 넘어서서 이 자리에 섰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승리’라는 성공 신화가 아니다. 


“내가 우연히 만난 한 권의 책을 통해 인생을 바꾸었듯이 독자들의 인생도 바뀔 것이라 믿고 싶다”는 그는, 방향을 잃고 휘청대는 청춘에게 세상 속으로 과감하게 뛰어들 줄 아는 심장의 격렬한 열기를 전하고자 한다.

 

임승남은 ‘본능의 삶’을 종결한 뒤 ‘인간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고, 변화를 향해 온몸을 내던졌다. 그렇기에 이 책은 처절하고 치열한 생존기로도 읽힌다. 자칫 무모한 도전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모하기 때문에 오히려 삶은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한다. 


살아 있는 이야기, 절실함으로 타오르는 이야기, 생이 요동치는 이야기. 임승남만이 전할 수 있는 격동적이고 묵직한 비망록이다. ‘이토록 평범한 이름’ 속에 담긴, 거대한 불꽃으로 발화할 변화의 씨앗이 우리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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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무죄다 - 검사 이성윤의 검(檢) 날수록 화(花)내는 이야기 

이성윤 지음, 아마존의나비 펴냄


‘나는 이렇게 벽에 붙어 힘겹게 살지만 너도 힘을 냈으면 해. 세상은 더디 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나처럼 조금씩 나아가는 거야.’


아내와 함께 꽃을 찾고 즐긴 덕에 검사(檢事) 남편은 <꽃은 무죄다>를 쓰고 독자들과 만날 수 있게 됐다. 부부에게 있어 꽃은 존재 자체로서의 의미를 뛰어 넘었다. 


눈 밝은 남편은 아내를 위해 꽃을 찾고, 아내는 그 꽃을 화폭에 담고, 남편은 꽃을 통해 고요하게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세상을 바라본다. 지은이에게 꽃은 젊은 시절 아내에게 떠넘겼던 삶의 무게에 미안함을 전하는 사랑의 전도체이자, 세상의 생태를 관찰하는 매개체이다.


오염된 세상에서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만 하는 사람들은 지은이가 보기에 속이 텅 비어 실속이 없다는 뜻을 지닌 꽃 ‘박새’와 다르지 않다. 권력에 취한 자와 그 하수인의 성정을 하나로 뭉쳐 놓은 듯한 독초 박새를 보며 ‘꽃개’ 이성윤은 ‘화(火)내지 않는다. 대신 ’화(花)’낼 태세를 가다듬는다.


추사가 유배되어 지내던 제주 거처에는 언제나 바닷바람이 세차게 몰아 닥쳤다. 아내와 내가 찾았던 그날도 몸을 가누기 힘든 바람이 당시 추사의 삶을 돌아보라는 듯 매섭게 날아들었다. 그 바람을 맞으며 나는 여리여리 흔들리면서도 모진 시련을 견뎌 핀 수선화를 고요히 마주해 그 인내를 되새겼다.


지은이는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 ‘꽃을 가꾸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부를 이심이체(二心二體)라 말하는 것도 같은 뜻이다.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말은 획일성과 폭력성을 공공연하게 드러낸다. 


동체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편 가르기와 차별보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꽃 피기를 기다리는 자세는 ‘꽃을 가꾸는 마음으로 사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험한 탄생 과정과 성장을 거친 후에야 얼음 뚫고 꽃 피우는 복수초(福壽草)의 절정을 기다리는 마음가짐이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복수초는 유치하게 권력의 칼날을 휘두르며 복수(復讐)하는 자들보다 한 수 위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복수초는 복과 장수를 비는 꽃이라는 뜻처럼 각양각색의 존재를 이해하고 서로의 복과 장수를 바라는 넓은 마음을 갖추게 하는 꽃이다. 그러므로 ‘꽃을 가꾸는 마음으로 사는 것’은 꽃의 특성을 이해하고 내 삶의 본보기로 삼는 것이다.


빈말이라도 당신이 “천 배 만 배 예쁘지”라며 아내와 함께 하는 ‘꽃개’의 삶을 즐긴다. 그러나 ‘꽃이 사람이고, 사람이 꽃’인 세상은 볼 수 없다. 서양민들레가 토종 민들레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했듯, 사람 사는 곳 역시 비슷하다. 


오염된 산성 토양에서 토종 민들레가 자랄 수 없듯, 타락한 사회는 본분을 지킨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그럼에도 토종 민들레가 멸종되지 않고 산야의 양지에 고고하게 피어나듯, 사명감 높은 검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은이가 타협하지 않고 본질의 품성을 꿋꿋하게 유지하며 살아가는 토종 민들레를 사랑하는 이유이다.


검사 이성윤, 그는 무도한 윤석열의 법무검찰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 자신이 책임자로 재직했던 서울중앙지검에 출두당하는 모욕을 겪으면서도 그는 권력에 굴하지 않는다. 역천(逆天)의 무도(無道)함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그 믿음의 뿌리는 야생화에 있다. 


그는 비록 몸이 통째로 뜯겨 나갔어도 삶의 흔적을 남기며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담쟁이와 줄기가 꺾여도 기어이 꽃을 피우는 개망초처럼 순리를 따르는 평화 세상을 향해 조금씩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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