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책] 꼭꼭 숨어라 디자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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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질문하는 책] 꼭꼭 숨어라 디자인이 보인다

산업 혁명 이후 정착된 대량 생산 체제는 사용자에게 일괄적으로 만들어진 기성품에 적응할 것을 요구했다. 효율성과 편리함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사용자를 배제하는 것과 함께 극심한 환경 파괴를 낳았다.


태도가 결여된 디자인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손실은 생각보다 크다. 비슷하게 생긴 약병 때문에 약을 잘못 복용하는 사례가 많고,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아파트는 이웃 간의 소통을 단절하여 개인 소외를 낳았으며,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일회용 컵은 지구촌 곳곳에서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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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이는 아이디어나 기술이라기보다는 태도의 문제다. 인간과 사회, 그리고 환경을 배려하는 디자인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나간다. 

 

미국의 사회적 기업 언차티드 플레이는 무엇이든 공처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행위에서 착안해 축구공 전구인 ‘싸켓’을 개발했다. 낮에 축구공으로 가지고 놀면 내부 메커니즘이 작동해 전기가 생성돼 밤에는 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영국의 스타트업인 컵클럽은 다회용 컵 테이크아웃 시스템을 구축해 일회용 컵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이들 모두 인간적이고 우호적이며 생태적인 태도로 제품과 세상의 관계를 회복하는 다양한 디자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했지만, 인간과 환경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못했고 급기야 개인과 사회, 환경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실에서 디자인에 필요한 태도를 되살리기 위해 ‘인간적인’, ‘우호적인’, ‘생태적인’으로 향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슈퍼노멀 디자인, 실버 디자인, 도시재생 디자인, 에코 디자인, 제로 디자인 등이 대표적이다.


실버 디자인의 한 예인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들 수 있다. 인건비를 줄일 수 있으며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경제적이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전자 기기 사용에 거부감이 없는 젊은층에 한정된 이야기이며, 상대적으로 기기 작동이 서툰 노년층은 키오스크 앞에서 두려움마저 느끼곤 한다. 특히 키오스크는 노인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전락시킨다. 

 

이와 달리 디자인 스튜디오 란차베키아+와이의 가구는 노인의 자립을 돕는다. ‘아순타 의자’는 앞으로 기울어질 뿐만 아니라 발판을 갖춰 노인이 혼자서도 쉽게 일어설 수 있도록 하고, ‘투게더 케인’은 지팡이에 수납 공간을 더해 노인의 활동 범위를 넓힌다.


사막화가 극심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물을 얻기 위해 무거운 물통을 이고 매일 수 킬로미터를 걸어야 한다. ‘굴리는 물통’은 이들을 물을 긷는 노동에서 해방한 적정 기술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지형이 거칠어도 힘들이지 않고 밀고 당길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물통을 배낭으로 지고 걸을 수도 있다. 우물을 파는 것에 비하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 수도 있으나, 직면한 현실에서 많은 이들의 삶을 도울 수 있는 우호적인 디자인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지난 2016년 기준 98.2킬로그램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오는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50퍼센트 감축하겠다는 환경부의 정책에 따라 일부 프랜차이즈는 종이 빨대를 도입했으나, 특유의 향과 내구성의 문제 때문에 크게 호응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미국의 스타트업인 롤리웨어가 개발한 ‘먹을 수 있는 빨대’는 이러한 현상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유기농 사탕수수와 해조류인 한천 등 식재료를 주재료로 함으로써 100퍼센트 자연 분해되며 내구성 또한 뛰어나다. 생태적인 태도로 문제를 해결한 에코 디자인이자 제로 디자인이다.


바야흐로 21세기의 디자이너들은 일상과 사회, 환경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 ‘배려하는 디자인’을 통해 사람과 사회, 환경이 공존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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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일경 '배려하는 디자인'(미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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