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포레스트]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천 가지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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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포레스트]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천 가지 표정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건강한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이가 늘고 있다. 우리가 망가뜨려온 것과 자연이 주는 회복의 힘 사이에서 고민하며, 도시에서 무해한 일상을 탐구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본지는 편하고 익숙해서 누려온 것이 가진 함정, 우리가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 등 차곡차곡 쌓아온 친환경 경험들을 기록하고 ‘그린라이프 길잡이’로 활용할 만한 책을 연이어 소개한다. 지구를 소중히 여기는 건 곧 나를 돌보는 일이기에, 기꺼이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들을 띄운다. - 편집자주

[지데일리] 누구나 꿈꾸는 자신만의 비밀정원 하나쯤 있을 터다. 마당에 마련한 아기자기한 정원은 아니더라도 일하는 책상에, 침대 머리맡에 작은 화분 하나라도 두고 돌보며 위안을 얻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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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은 날이면 정원이나 공원에는 자연을 그리워하며 모여든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이 자연을 탐하며 곁에 두려 정원이나 공원을 만들고 가꾸는 이유는 단순히 쉼뿐만이 아닐 것이다. 상처받은 이에게는 위로를 주고, 문학이나 예술을 하는 이에게는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인류는 산업화, 도시화로 생활양식에 큰 변화를 겪으면서도 늘 곁에 크고 작은 정원을 두고 가꿔왔다. 자연을 향한 회귀본능은 그 어떤 풍요와 편리로도 대신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 할 수 있다.


인류가 곁에 두고 가꾸어 온 정원은 자연을 비롯해 역사, 문화 예술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의 재능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때문에 나라마다 장소마다 정원의 디자인, 도입요소 등은 각양각색이다. 


<정원을 거닐며 삶을 배우며>의 저자 송태갑은 자연을 벗어나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며, 꽃으로, 단풍으로, 열매로 끊임없이 기쁨을 주는 정원의 매력과 그곳을 가꾸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책은 천 가지 표정을 한 정원이 주는 기쁨과 가르침, 영감을 예찬한다. 남도의 경관과 정원을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세계의 정원을 둘러보며 삶을 풀어가는 실마리를 찾는다. 


'어떤 나라나 지역을 알기 위해서는 자연을 찾아 떠나기도 하고, 전통이 서려 있는 것으로 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세 가지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곳이 바로 정원이 아닌가 싶다. 정원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시간의 흔적을 접할 수도 있다. 게다가 역사 속의 인물 혹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두루 만나볼 수 있다. 정원은 천 가지 표정을 하고 있어서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게다가 기분 좋은 향기를 뿜어내고 맛있는 과일을 제고하기도 하며 자연의 섭리를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정원은 이웃사람들과 소통을 위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꽃으로, 단풍으로, 열매로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어 준다.'

 

우선 저자는 미국의 아미시에서 낙원을 꿈꾸는 사람들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소개하며 정원여행을 시작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자연 정원,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인공 정원 등 미국, 유럽, 아시아에 걸쳐 아름다운 정원을 이야기한다.


영국에서는 영국적인 풍경과 전통을 간직한 대표적인 정원과 공원을 소개한다. 가장 살고 싶은 마을 1위로 꼽힐 만큼 전원풍경이 아름다운 버턴 온 더 워터는 연일 넘치는 관광객들로 생기가 넘친다. 마을을 구하는 것은 정책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전통과 자연, 사람들의 감성을 배려하며 조화를 이뤄가는 것임을 이 작은 시골 마을이 증명한다. 


영국의 자랑이자 정원도시의 상징인 리치먼드 파크와 영국 최고의 시크릿 가든인 버스콧 파크, 셰익스피어가 예술적 영감을 받은 스트래퍼드 어폰 에이본에서는 시민들이 창의적이고 존엄한 삶을 누리게 하는 공간의 힘이 무엇인지 강조한다. 

 

이어 사람들의 정원 사랑으로 완성돼 가는 명품정원 위즐리 가든에서는 일상을 윤택하게 하는 정원을 향한 관심과 노력을 이야기한다. 쉼과 느림의 미학이 흐르는 꽃섬 마이나우와 독일의 정원문화를 엿볼 수 있는 클라인가르텐에서는 크고 작은 정원과 텃밭을 일구며 안식과 치유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소개한다.

 

'독일의 숲은 주로 인공으로 조성한 까닭에 어디를 가나 벌목이나 관리를 위한 차량이 드나들 수 있도록 임도林道가 잘 개설되어 있다. 이 길을 따라 산책, 승마, 조깅 등을 하거나 휴양과 각종 레크리에이션을 즐기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말하자면 영국인들이 정원이나 공원에서 하는 모든 활동을 독일인들은 숲에서 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숲이 주는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인지 도시에도 공원보다는 도시림을 주로 조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독일만의 독특한 정원문화가 따로 있다. 바로 '작은 정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클라인가르텐(Kleine Garten)이다. 그렇다고 쌈지정원이나 손바닥정원처럼 장소에 국한하지 않고 작은 빈터만 있으면 조성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클라인가르텐은 마치 산업단지처럼 부지를 조성하고 이를 구획하여 분양하는 방식인데, 이를 분향받은 사람들은 각자 취향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의 정원을 가꾼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금각사와 은각사의 전통 정원이 눈길을 끈다. 도시재생으로 활력을 되찾은 구로카베, 고집스럽게 마을 정원을 지켜내고 있는 츠마고,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져 정원마을로 거듭난 시라카와고, 한 사업가의 안목으로 탄생한 랜드마크 아다치 미술관을 둘러본다. 


정원도시를 꿈꾸는 싱가포르에서는 정원문화를 선도하는 보타닉 가든, 상상이 현실이 된 미래정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를 둘러보며 자연과 과학, 예술이 융합해 발휘하는 잠재력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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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거닐며 삶을 배우며

송태갑 지음, 미세움 펴냄

 


정원 하면 빠질 수 없는 프랑스에서도 정원과 공원을 둘러본다. 고흐가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던 오베르 쉬르 우와즈에서는 정원이 줬던 흥미와 위로, 삶의 활력을 전한다. 모네 예술의 원천이자 창작 실험실인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에서는 모네의 작품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펼쳐진 풍경과 클로드 모네의 정원 사랑을 이야기한다. 


꽃의 나라, 네덜란드 쾨켄호프의 튤립 가든에는 튤립이 전하는 봄소식이 가득하다. 거품 경제를 대변하게 된 튤립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롭다. 


기업가의 삶의 철학이 정원문화를 꽃피운 미국의 롱우드 가든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해 본다. 골든게이트 파크, 피롤리 가든, 댈러스 매키니, 댈러스 식물원을 둘러보며 오아시스와 같이 도심의 숨과 활력을 불어넣는 공간을 소개한다. 


아울러 알함브라나 베르사유, 금각사, 은각사와 같은 유명한 관광지의 정원도 다루었는데, 정원의 나무, 풀 한 포기에 스며든 시간을 들려준다.

 

'정원은 흔히 종합예술이라고 일컫는다. 그도 그럴 것이 조경가를 비롯하여 건축가, 조각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합작하여 만들어낼 뿐 아니라, 식물이라는 과학적 요소, 조각이나 장식품 등의 예술적 요소, 토목이나 건축 등의 공학적 요소 등이 융복합적으로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종합적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베르샤유 궁정이 주목을 받는 이유도 그런 요소들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결정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저 궁전건물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면 박물관이나 기념관을 구경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광활하게 펼쳐진 정원을 감상하다 보면 한번쯤 살아 보고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궁정을 통해 왜 자연을 관리해야 하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느낄 수 있다. 우리의 도시를 떠올려 보자.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수없이 많은 자연과 전통자원들은 어떤 상태인가? 자연도 예술도 끊임없이 갈고 닦을 때 빛이 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지혜를 모아 마치 한 사람이 설계한 것처럼 걸작을 만들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완성도는 모든 것이 어떤 형태로 어디에 위치하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균형과 조화의 극치미를 연출하고 있는 베르사유 궁정을 보면서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저자는 정원이 제공하는 정서적 안정감과 미적 감각, 창의적 원천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한다. 또 그 지역과 지역민들의 삶에 미치는 정원의 힘에 주목하며 우리의 삶터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숲을 채우고 있는 꽃나무를 보며 삶을 살아가는 바람직한 태도를 배우고 관용도 배우며 다음해를 맞이하기 위해 긴 겨울을 견디는 기다림도 배운다고 말한다. 


저자의 시선은 푸르고 열매 맺는 꽃나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원과 공원을 가꾸는 이들의 이야기, 그것이 삶터에 미치는 영향, 시간의 흔적에까지 닿아 있다. 


책은 왜 사람이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자연을 갈구하고 그리워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혜안이라 할 수 있다. ‘정원’이라는 소우주에서 인간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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